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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니와 알렉산더 Feb 13. 2024

대중예술가의 사회적 지위과 계급천장 (1)

On Cultural Politics

테일러 스위프트와 2024 미국 대선


예술과 미국 정치에 관심이 많은 사람으로서 어느 팝스타가 이번 미국 대통령 선거의 주요 변수가 되었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다. 그 팝스타는 테일러 스위프트다. 폭스뉴스(Fox News)를 비롯한 친(親) 트럼프 매체들과 트럼프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바이든 대통령이 연임을 위해 테일러 스위프트와 그의 남자친구인 풋볼선수 트래비스 켈시를 정략적으로 활용할 것이라는 음모론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도 테일러 스위프트의 정치적 영향력을 두려워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어제(2월 12일) 자신이 만든 소셜미디어인 트루스소셜에 스위프트가 바이든 대통령을 지지하는 것은 '의리를 저버리는(disloyal) 행위라고 경고했다. 영국 가디언(The Guardian)의 카터 셔먼(Carter Sherman) 기자는 지난 8일 "테일러 스위프트가 정말 2024 대통령 선거를 바꿀 수 있을까?(Could Taylor Swift Really Swing 2024 Presidential Election)" 제하의 기사에서 "오늘날, 그녀의 말이 미국 민주주의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다"고 적었다. 팝스타의 지지 선언이 미국 대통령 선거의 중요한 독립변수가 되었다는 사실은 문화적 권력이 현대사회의 주요 권력으로 승격되었다는 근거라고, 나는 해석한다.


BTS와 외교관 여권


문화적 권력의 세계적 강화는 분명 예술가의 사회적 지위 향상에 기여했을 것이다. 예술가의 사회적 지위는 현재 전례 없이 높으며, 지금도 꾸준히 상승 일로를 걷고 있다. 3년 전, 방탄소년단이 외교관 여권을 받은 사건이 그러한 현상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여권에는 세 종류가 있다. 파란 일반여권, 회색 관용여권과 빨간 외교관 여권. 빨간 여권은 공항에서 소지품 검사를 받지 않고 경범죄에 대해서 면책 특권이 부여되는 여권이다. 이 여권의 소지자에게는 특혜가 주어지는 것인데, 그 자동 발급 대상은 우리나라에서 손으로 꼽을 정도다. 전·현직 대통령, 국회의장,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국무총리 등이 자동 발급 대상이다. 양당의 국회의원들이 초당적 입법을 하는 경우가 몇 없는데, 그들은 이 여권을 받기 위해서 이념의 차이를 뛰어넘어 법안을 발의해왔다. 2015년에는 새누리당 안홍준 의원이 외교관 여권 발급 대상에 국회의원을 추가하는 여권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2021년, 이번에는 더불어민주당 출신 무소속 김홍걸 의원이 같은 내용의 법안을 대표발의했고,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들이 대거 공동 발의에 참여했다. 국회의원들이 그토록 받기를 염원하는 그 여권을, 7인조 아이돌 그룹의 멤버들이 받은 것이다. 2021년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유엔 총회 참석차 미국을 방문할 때 BTS가 대통령 특별사절로서 동행했는데, 방미 일정에서 사용하라는 취지였다. 대중문화 종사자에게 대통령 특별사절 자격이 주어진 것도, 그들에게 외교관 여권이 발급된 것도 모두 놀라운 일이었기에 기억에 남는다.


연예인, 누보리치에서 블루 블러드로


우리나라의 대중문화가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구가하면서 유명한 연예인들은 세계시장에서 활동하며 막대한 재산을 쌓는다. 어떤 가수들은 신곡을 미국의 유명 토크쇼에서 발표하고 파리에서 열리는 패션쇼에 참석하며 9만 석 규모의 런던 웸블리(Wembley Stadium)에서 공연을 한다. 어떤 배우는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고 어떤 배우는 에미상(Emmy Awards) 남우주연상을 받는다. 그들은 할리우드 배우들과 팝스타들과 친분을 쌓는다. 이렇듯 한국 대중문화의 세계화와 세계적인 수준의 상업적 성취는 연예인 집단의 사회적 지위 또는 계층을 상승하게 하는 제1의 원인이 되었다. 그들은 더이상 '딴따라'가 아닌 것이다.


요즈음 고관대작이나 부호의 자녀들이 연예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 예를 많이 아는데, 몇 개만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이번 총선에서 7선에 도전하는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의 아들은 배우 고윤 씨다. 윤석열 정부 '실세 중 실세'로 평가를 받는 국민의힘 장제원 의원의 외아들은 래퍼 노엘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정무수석비서관을 지낸 4선의 최재성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아들은 싱어송라이터 최낙타다. 며칠 전에는 YG  프로듀서 출신 테디의 기획사인 '더블랙레이블'이 올해 상반기에 론칭하는 걸그룹에 신세계 이명희 회장의 외손녀가 합류한다는 이야기로 - 기획사에서 사실 여부를 확인해주지 않아 아직 사실 여부는 모른다 - 인터넷이 떠들썩하기도 했다. 물론, 이런 현상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과거에도 정치인이나 부유층의 자녀가 연예인으로 활동했다. 내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이런 현상이 최근 들어 분명하게 강화되었다는 것이다.  


연예인이라는 직업은 세습되기도 한다. 이 역시 새로운 현상은 아니지만, 최근에는 예전보다 그러한 예를 쉽게 찾을 수 있다. 현재 아이돌 시장의 중심은 4세대 아이돌이다. 4세대 걸그룹 스테이씨(STAYC)의 멤버 시은의 아버지는 80년대 인기가수인 박남정 씨이며, 역시 4세대 걸그룹인 키스오브라이프(KISS OF LIFE)의 멤버 벨의 아버지는 90년대 인기가수 심신이다. SM에서 론칭한 4세대 보이그룹 라이즈(RIIZE)의 멤버 앤톤의 아버지는 90년대 인기가수인 윤상 씨이다. 80년대와 90년대에 활약한 유명 연예인 자녀들이 최근 연이어 데뷔하고 있다. 그러한 연예인은 연예인의 자녀로 데뷔 전부터 인터넷 커뮤니티와 매체에서 비중있게 다루어진다.


요즈음 데뷔하는 연예인들을 보면 꼭 고관대작이나 대부호 같은 최상류층이 아니더라도 상류층 또는 부유층의 자녀들이 많이 보인다. '금수저'라는 상징자본이 대중에게 강한 소구력을 지닌다. 내가 한국사회를 관찰한 바에 따르면, 탈산업화시대에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는데 계층 갈등은 심화되지 않는 양상이다. 오히려 대중은 상류층을 동경한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는다.


과거 연예인들 중에는 연예인으로서의 수입을 통해 세대 내에서 부자가 되는 누보리치(nouveau riche, 신흥 부자)가 많았다면, 최근에는 연예인이라는 직군이 블루 블러드(blue blood, 세습 귀족)의 직군이 되어가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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