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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수 Sep 20. 2024

나의 세상을 그림에 담다

그림 속 세상은 오롯이 내가 만든 세상이다

        

몇 해 전, 한 미술 대전에서 캔버스에 그린 유화 작품(30호)으로 입상을 했다. 갤러리에 전시된 작품은 일반인들이 관람할 수 있었다. 나와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여러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그림이라며 호평했다는 말을 지인으로부터 전해 들었다. 작품을 소장하고 싶다고 판매 문의를 해온 분도 있었지만 특별한 의미가 있는 작품이라 정중히 거절하였다.      

제주도를 배경으로 그린 그림이다. 저 멀리 푸른 바다와 소담스러운 집이 보인다. 새파란 하늘에 흰 뭉게구름이 풍선처럼 둥실둥실 떠 있다. 드넓은 초원에 파란 원피스를 입은 여자아이가 서있다. 아이는 산들바람과 햇살을 맞으며 어미 말과 새끼망아지를 지켜보고 있다. 그림 속 망아지는 어미 말의 그늘에 숨어 얼굴만 내어놓고 관광객들을 응시하고 있다. 얼핏 보면 매우 평온한 풍경이지만 잘 들여다보면 그림 속에는 그리움과 죄책감이 가득하다. 


소녀 옆에는 어머니로 보이는 여성의 그림자만 덩그러니 놓여있다. 그림자는 태양 아래 혼자 존재할 수 없다. 형체를 통해 실재한다. 그렇게 생겨난 그림자 끝에 작가의 사인과 작은 할미꽃 한 송이가 그려져 있다.     

작품 옆에 작가 노트를 붙일 수 있었다면 이렇게 쓰고 싶었다.     

 [제목 : 그리움 (부제: 엄마의 그림자)     

땡볕 가운데 서 있는 날에도

어미 말은 망아지에게 그늘을 내어준다.

불혹이 넘은 나이에도

땡볕을 막아줄 엄마의 그늘이 사무치게 그리운 날,

엄마의 그림자 속으로 스며들고 싶은 그런 날이 있다.]     

그림 속 어린아이는 나의 딸이자 곧 나 자신이기도 했다. 어미 말이 만들어준 그늘에 숨은 망아지도 나의 딸이자 곧 나 자신이기도 하다. 어미 말이 한여름 제주의 뜨거운 땡볕을 고스란히 받으면서 자신의 그림자를 새끼에게 내어준다. 내 어머니도 그렇게 견디기 힘든 땡볕을 막아주는 사랑으로 나를 보듬어 주었다. 병상에 누워계시기 전까지는 말이다.     

열 자식 한 부모 못 모신다고 병들고 우리 형제도 쇠약해지신 어머니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 그 죄책감을 꽃 한 송이에 고스란히 담아 놓았다. 어린 소녀 옆에는 함께 서있을 어머니 대신 차가운 그림자만 홀로 남았다.      

한여름 태양이 이글거리고서야 지나간 봄이 따숩고 편안했음을 깨닫는다. 어머니의 사랑이 얼마나 깊고 넓었는지 어머니의 그늘이 병상 위에서 깊어져서야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너무 늦어버렸다. 보답할 기회를 놓친 어리석은 자식은 그렇게 그림 속에 후회의 눈물과 그리움을 담았다.     

병상에서 점점 쇠약해지는 엄마를 마주한 후로는 그림 소재는 부모님이 주신 사랑,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 인간의 숙명과 같은 것이 되었다. 특히 아이를 주제로 한 그림을 많이 그렸다. 나의 두 자녀를 모델로 한 그림 속 아이는 ‘또 다른 나’이기도 하고 세상의 모든 아이를 상징하기도 한다.      

나에게 하얀 캔버스는 세상 모든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담을 수도 있고, 부모님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 그리고 늦어버린 효에 대한 죄송함을 담아낼 수도 있는 공간이다. 


넉넉지 않은 살림에도 자식한테 헌신을 마다하지 않던 어머니의 정성스러운 보살핌으로 나는 마음이 충만한 삶을 살았다. 그 사랑은 무엇으로도 갚을 수 없는 빚으로 남았다. 그림 속 세상에서나마 그 위대한 헌신에 감사함을 표현해보려 한다. 현실에서 갚을 수 없었던 빚을 염치없게도 그림으로 대신해본다.      

지난날을 그리워하며 때로는 비통해하고 홀로 자책하는 그림.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고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하는 나의 그림은 오롯이 내가 만든 세상이자 또 하나의 케렌시아가 되었다.     

(이 글을 퇴고하는 동안 2024년 5월 17일에 하늘로 떠나신 내 어머니(故 한원영 마리아)에게 이 글과 그림을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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