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대화창에 나만 남아 있다
헤어진 후에도 한동안, 나는 카톡방을 지우지 못했다.
이별 뒤 며칠, 몇 주, 그리고 몇 달이 흘렀지만 그 대화창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처음엔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였다.
그 다음엔, 애써 잊은 척하며 모른 척 넘겼다.
하지만 결국엔, 지우지 못하는 진짜 이유를 나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누군가는 이별과 동시에 연락처를 지우고, 대화방을 정리하고, 사진도 삭제하며 관계를 단호하게 정리한다.
아마 그게 더 현명하고 건강한 방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무언가를 지운다는 건, 그만큼 마음이 정리되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감정이 어느 정도 가라앉았고, 더는 흔들리지 않는다는 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 그 방은 단순한 메시지 공간이 아니었다.
그 방을 지우는 순간, 우리가 나눴던 모든 말과 웃음, 다퉜던 감정과 고백, 그리고 끝내 꺼내지 못한 마음들까지 모두 '없던 일'로 만들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아직, 그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지운다고 해서 그 사람이 잊히는 것도 아니고, 남겨둔다고 해서 다시 돌아올 것도 없다는 걸 잘 안다.
하지만 그 방엔, 내가 감당하지 못한 감정들이 조용히 가라앉아 있었다.
쉽게 정리할 수 없는 마음의 파편들이 그 안에 남아 있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습관처럼 그 방을 열었다.
답장이 올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 안에는 여전히 ‘우리가 존재했던 증거’들이 남아 있었다.
그 방을 열 때마다 마음이 아프면서도, 이상하게 안심이 됐다.
잊지 않아도 괜찮다고, 그 기억이 아직 내 안에 머물러 있다고.
나는 끝났다는 걸 아직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채, 그녀와 나의 마지막 흔적을 붙잡고 있었다.
카톡방 하나를 지우는 데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몰랐다.
그 작은 화면 속에, 이렇게 많은 감정이 담겨 있을 줄도 몰랐다.
그녀는 이미 그 방을 나갔을 것이다.
함께 웃으며 찍었던 사진을 프로필에 걸었던 그녀는 이제 기본 배경으로 바꿔놓았다.
그녀에게는 더 이상 사진도, 이름도, 대화도 남아 있지 않은 걸까.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 방 안에 남아 있었다.
말이 없어진 공간, 반응이 사라진 화면.
오직 나만이 그곳을 열고 닫으며, 시간을 되짚고 있었다.
처음엔 혹시 다시 연락이 올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그 기대는 생각보다 빨리 사라졌고, 이제는 그 안에 남아 있는 말들의 조각들이 나를 붙잡고 있다.
“밥 먹었어?”
“잘 자.”
“보고 싶다.”
그 평범했던 말들이, 이제는 다시는 들을 수 없는 문장이 되었다는 사실이 나를 유난히 슬프게 했다.
지우지 못한 건 미련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안에 남아 있는 시간들 때문이었다.
그 방에는 ‘사랑’이라는 단어보다 더 많은 감정들이 있었다.
서운함, 사소한 다툼, 엇갈린 오해, 그리고 끝내 이해하지 못한 마음들까지.
그런 감정들이 문장 단위로 차곡차곡 쌓여 있었고, 나는 그것들을 하나하나 다시 읽으며
그 사람을, 그리고 그때의 나를 계속 만나고 있었다.
지우면 그 시간들까지 사라질까 봐, 나는 두려웠다.
남아 있어야만 했고, 남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어딘가에서 위로받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대화방은 더 이상 대화가 오가지 않는 곳이었지만,
내 마음속에서는 여전히 끝나지 않은 이야기가 흐르고 있었다.
카톡방을 지운다는 건 그녀를 놓는 일이라기보다, 그 감정 속에 머물러 있던 나 자신을 놓아주는 일이라는 걸
조금은 알 것 같다.
어쩌면 언젠가, 아주 평온한 어느 날 나는 그 방을 조용히 닫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때는 아마 조금 덜 아프게, 조금 더 단단한 마음으로 그 방을 지울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 순간이 오면, 그건 끝이 아니라— 내가 나를 다시 사랑하기 시작했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