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창문을 조금 내리면, 여름밤의 바람이 늦은 시간의 온도를 한 겹 벗겨 낸다.
낮 동안 달궈졌던 아스팔트는 아직 따뜻하고, 그 위를 미끄러지듯 달리는 차 안은 이상하게도 조용하다.
음악을 틀지 않아도 괜찮은 밤.
헤드라이트가 만들어내는 짧은 원 안에서만 세상이 움직이고, 그 밖은 마치 오래된 숲처럼 깊다.
나무 대신 가로등이 줄지어 서 있고, 잎사귀 대신 빛의 조각들이 흔들린다.
이런 밤이면 이유 없는 아련함이 찾아온다.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마음과는 조금 다르다.
이름을 부를 대상도, 돌아갈 약속도 없다. 그저 지나온 시간들이 먼지처럼 떠올라, 숨을 들이쉴 때마다 기억의 냄새가 섞인다.
어릴 적 베란다에서 맡던 비 온 뒤의 흙냄새, 친구들과 뛰어다니다가 집으로 돌아오던 골목의 온도, 어느 여름방학의 끝자락에서 느꼈던 막연한 불안. 편의점에서 사 먹던 차가운 캔 음료의 금속 맛, 손바닥에 남던 자판기 버튼의 미지근함까지. 사랑이라 부르기엔 너무 넓고, 추억이라 부르기엔 아직 생생한 것들이다.
가끔은 이런 생각도 든다. 혹시 내가 ‘사랑의 기억’이라고 오해해 온 감정이, 사실은 ‘시간의 기억’이 아니었을까.
누군가와의 장면이 아니라, 그 장면이 놓여 있던 계절과 공기, 그때의 내가 품었던 속도와 방향.
그래서 나는 특정한 얼굴을 떠올리지 못해도 충분히 아련할 수 있다.
마음이 그리워하는 건 사람보다 ‘나를 지나가게 했던 순간들’일지도 모른다.
신호에 잠시 멈추면, 하늘이 더 선명해진다.
도시의 불빛 사이로도 별은 제 일을 하고 있고, 둥근 달은 ‘지금’이라는 표지판처럼 떠 있다.
그 달을 바라보면 이상하게 안도한다.
내 안에도 누군가의 빛이 남아 있는 것 같아서. 떠나보낸 계절과, 그 계절을 함께 통과한 나 자신이 서로를 비추는 것 같아서.
라디오에서 우연히 흘러나오는 느린 멜로디 하나만으로도, 마음은 금세 다른 시간대로 이동한다.
낯선 노래가 오히려 더 안전하다. 누구의 이야기인지 모르니, 내 마음은 마음대로 그 빈칸을 채울 수 있으니까.
아련함은 종종 질문으로 변한다. “그때의 나는 어디로 갔을까?” “왜 지금의 나는 그 시간을 다시 들여다볼까?” 하지만 답은 언제나 흐릿하다.
안개가 내려앉은 길처럼, 선명함을 요구할수록 더 멀어진다.
어쩌면 이 감정은 잃어버린 사랑의 그림자가 아니라, 살아온 날들 전체가 보내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잘 버텼다고, 아직도 마음이 움직일 수 있다고. 별들이 어두운 밤을 지나며 더 또렷해지듯, 나도 지나온 어둠 덕분에 어떤 빛을 갖게 되었을 거라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바람이 조금 더 차가워진다. 나는 그 차가움이 좋다.
끝을 알리는 기척이 있어야 다음이 온다는 걸 아니까.
라이트가 꺼지고 문을 닫는 순간, 밤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겠지만, 오늘의 아련함은 어딘가에 남아 내일의 나를 조용히 밀어 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가끔, 아무 이유 없이도 이런 여름밤에 운전을 한다.
지나온 과거를 미워하지 않기 위해, 그리고 아직 오지 않은 계절을 맞이할 용기를 조금씩 예열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