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밤, 창문을 조금 내린다
바람은 늦게 도착한 편지처럼
조심스럽게 내 목덜미를 스친다
가로등은 한 줄씩
길 위에 시간을 내려놓고
나는 그 위를 천천히 밟는다
라디오를 켜지 않아도
대시는 희미하게 빛나고
어떤 노래는 이미 공기 속에 있다
아이스커피의 찬 기운이
컵 벽을 타고 내려와
손가락 사이에 작은 강을 만든다
나는 누구를 그리워하는 게 아니다
다만, 지나간 나를
잠깐 불러 앉히는 중이다
신호에 멈춘 순간
도시는 숨을 고르고
하늘은 더 가까워진다
달은 너무 둥글어서
말 대신 고개를 끄덕이는 얼굴
“그래, 여기까지 왔구나”
별들은 멀리서도
각자의 일을 계속하는데
그 꾸준함이 나를 안심시킨다
어쩌면 아련함은
사랑의 잔향이 아니라
시간이 남긴 체온일지도
떠난 계절들이
내 안에서 조용히 뒤척이며
한 번 더 걸어 보라고 말한다
나는 길을 따라가며
나를 잃지 않기 위해
조금씩 속도를 낮춘다
도착이 목적이 아니란 걸
이 밤은 알고 있다
그래서 더 부드럽게 흐른다
창문 밖, 나무 그림자들 사이로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
내 마음도 그 뒤를 따른다
나는
비어 있는 옆자리의 온도를
조용히 덮어 둔다
창밖으로 흘러가는 불빛들 사이
숨 한 번 깊게 삼키고
조금 더 천천히 몰아
도착은 뒤로 미루고
이 밤이 끝까지 다 말할 때까지
그저 길을 따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