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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

입안에 물 머금기

by 조은주

딸의 친구 이야기이다. 여자 둘이 사는 집인데 바퀴벌레가 나왔다고 한다. 둘 다 벌레를 잡지 못해 서로 미루다가 고민 끝에 만원을 주고 '당근'에 잡아줄 사람을 올렸다고 한다. 바로 연락이 왔다고 한다. 30분 만에 도착하였고 바퀴벌레를 잡은 다음 알을 깠는지 확인까지 해주었다고 한다.

빠른 도착과 사후(?)관리까지 전문적으로 바퀴벌레를 잡는 사람인가 싶을 정도였다고 한다. 나는 얘기를 듣고 호기심에 '당근'을 들어가 보았다. 중고거래 사이트로만 알고 있었는데 동네생활이라는 카테고리로 들어가 보니 운동할 사람을 찾기도 하고, 이사를 왔다며 병원이나 미용실을 묻기도 하고, 유기견을 데려왔는데 씻기는 샴푸를 무엇을 써야 하는지, 동네에 화재가 났다는 소식도, 길거리 댕댕이 배변처리에 논쟁을 벌이기도 하였다. 정말로 다양한 사연들과 그에 대한 댓글들이 긍정과 부정으로 나뉘어 올려지고 있었다. 심지어 헤어진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대신 걸어줄 사람도 구한다는 글도 있었다. 여러 가지 내용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나는 사람들이 소통하지 않는다고 큰 오해를 하고 있었다. 내가 SNS를 잘 활용하지 않아 몰랐던 것이다. 곳곳에서 사람들은 나름의 소통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소통은 자신을 적당한 선에서 숨기면서 자신의 애환, 궁금증, 난처함, 가까운 사람들에게 말 못 할 고민 등을 얘기하고 있었다. 연령, 성별, 성격, 직업을 초월한 소통의 창구였다. 핵심적인 문장으로 내용이 전달되면 상대방이 핵심적인 답변을 제시한다. 그 답변에서 해결을 얻기도 하고 여러 생각들을 종합하기도 한다. 물론 그 대답에서 상처가 되는 말들도 있지만, 언제든 단절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우리는 소통의 문제를 많이 겪는다. 바로 옆에서 사는 가족마저도 서로 소통이 안 되고 답답함이 쌓여 불신의 벽이 쌓이는 사례를 많이 보게 된다. 그리고 그 불신은 가까웠기 때문에 더 큰 거리두기로 다가온다.


사람들은 소통을 할 때 핵심만을 얘기하지 않는다. 시시콜콜한 얘기도 하고 싶어 하고, 진지한 대화로 상대방이 함께 공감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도 있다. 하지만 세상은 많은 이야기를 들어줄 만큼 사람들의 마음이 여유롭지가 않다. 마음이 여유롭지 않은 상태에서의 대화는 오해와 왜곡이 있을 수 있다. 그 오해와 왜곡은 주고받을 때마다 커다란 불신으로 자리 잡는다. 불신이 자리 잡은 상태에서의 진실된 대화는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또 대화하려고 한다. 악순환의 반복이다.


어떤 아내가 스님에게 가서 남편과의 불화를 하소연했다고 한다. 무슨 말만 하면 화를 내고 자신의 얘기를 귀담아 들어주지 않는다고 하였다. 스님은 그 아내에게 한 가지 당부를 하였다. 집에 돌아가서 일주일 동안 남편이 집에 있을 때 아내에게 입안에 물을 머금고 있으라고 하였다. 물을 삼키지 말고 입에 꼭 머금고 있으라고. 아내는 스님의 말대로 집에 돌아가서 남편이 있으면 입에 물을 머금고 있었다고 한다. 물을 삼키지도 못하고 머금고 있으려니 당연히 입을 벌릴 수 없었다. 그러자 자연스레 말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렇게 일주일 동안 남편 앞에서 말을 하지 않자 그 후로는 남편이 먼저 말을 걸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아내는 깨달은 것이다. 자신의 말이 불통의 도구가 되어 남편이 자신에게 등을 돌렸다는 것을 안 것이다.

그러자 일주일 뒤부터 아내는 자신의 입에 물이 있는 것처럼 말을 적게 하고 조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남편과의 관계도 회복되었다고 한다.


불통의 원인이 우리의 성의 없는 말의 태도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우리는 얼마든지 불통을 해결할 수 있다. 말뽐새부터 시작하여 말의 내용과 말의 양조절, 적절한 말 끊기를 의식적으로 연습해야 한다. 그러한 연습이 반복된다면 우리는 서로 마주 앉아 두런두런 마음의 얘기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나도 이제부터 가족들이 집에 있으면 입에 물을 머금고 있어야겠다. 효과는 바로 나타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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