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노부부
※임산부 배려석 1을 읽지 않았다면 먼저 읽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당고개행 4호선 지하철이었다. 토요일 오전이라 사람이 붐비지는 않았다.
또 내가 자리를 잡은 곳은 임산부 배려석 앞이었다. 이번엔 양끝 임산부 배려석에 60대쯤 되어 보이는 여성들이 앉아 있었다. 60대면 노약자석에 가기에는 애매한 나이이다. 대신 임산부 배려석에는 어찌어찌 비벼볼 수 있다. 내가 서 있는 임산부 배려석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여성은 눈을 치켜뜨며 나를 쳐다보았다. 자신이 앉은자리가 편하지는 않았나 보다. 여성은 세 정거장이 지나고 내리려 일어났다. 그런데 자신의 예상과는 달리 내가 바로 그 자리에 앉지 않았다. 그 여성은 자신이 앉은자리를 쳐다보며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앉아줘야 자신의 행동이 합리화되는데 시나리오대로 안된 것이다. 그러고는 다음 사람들이 탔다. 이번에는 70대 초반 정도 되어 보이는 노부부이다. 남성은 그렇다 치더라도 여성은 꼿꼿이 서 있는 나를 쳐다보고는 앉지를 않았다. 약간 어찌해야 하냐는 액션을 취했다. 앉지는 못하고 부부는 기둥에 의지하며 힘들게 서 계셨다. 그러던 중 70대 다른 여성 한분이 비집고 들어와 낼름 앉아버렸다.(물론 이번엔 임산부는 확실히 아니다)
그래도 노부부와 나는 임산부 배려석에 앉지 않고 잘 견딘 것이다. 왠지 동지가 된 느낌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부부 중 여성분과 나는 다른 자리가 나서 그쪽에 앉게 되었다. 다행히 이번에는 40분을 서서 가지는 않았다.
이번 지하철 임산부 배려석 사건은 내가 본보기가 된 것이 아니라 노부부가 나의 본보기가 되셨다.
그분들께 '비공식적 규범'을 지켜주신 것에 존중을 표한다.
단지 안타깝게도 육체적 우월성을 가지고 태어난 부부의 남성분은 무거운 짐을 들고 계속 서서 가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