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계단 한 계단 천천히
올라오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기 지루하여 계단을 이용해 보기로 하였다. 나에게는 계단을 내려가는 방법이 있다. 무릎에 무리가 가지 않게 하는 방법으로 흉해 보이기는 하나 다리를 약간 벌려서 내려가기, 아니면 양 옆으로 번갈아 가며 비스듬히 내려가기가 있다. 그리고 걸어서 내려가기보다는 운동의 효과로 폴짝폴짝 뛰면서 내려가면 모든 살들이 요동치며 살 빼기의 효과를 보기도 한다.
19층에서 계단을 이용해 내려가기란 지루한 면이 있다. 지루함을 이겨내는 방법으로는 층을 확인하지 않고 내려가는 것이다. 내가 어디쯤 내려왔는지 궁금해서 층을 확인하면 "아직도 여기네"라는 실망감이 든다. 왠지 내려갈 일이 까마득하다. 하지만 층을 확인하지 않으면 "많이 내려왔겠지"라는 기대감에 그리 힘들지 않다.
그런데 그러한 심리는 올라갈 때도 마찬가지이다. 계단을 올라가다 보면 숨이 턱까지 차오를 때가 있다. 그때 몇 층인지를 확인하는 순간 실망감과 함께 옆에 보이는 엘리베이터는 유혹일 수밖에 없다. 옆길로 새기에는 아직은 이른 것 같고, 계속 올라가자니 몸은 힘들고, 심리학에서 말하는 양가감정이 확~~ 올라온다. 그럴 때 우리는 계단을 끝까지 올라오면 뿌듯함이 생기고 결국 엘리베이터를 타게 되면 끝까지 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우리의 인생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에 계단 내려가기를 나는 다르게 해 보았다. 내 스타일대로 내 스텝에 맞춰 중간중간 몇 층인지 확인하면서 내려왔다. 그러고 나니 층마다 비가 들치지 않게 창문은 닫혔는지, 대문 앞에 놓인 물건으로 어떤 사람이 살고 있는지 주변을 관찰하면서 내려오게 되었다. 그리고 다음에도 해 볼만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 생각에 더하여 다음에 계단 내려오기는 주어진 숙제를 하려고 한다.
그 숙제는 '인생의 삶을 천천히 내려놓기'이다. 인생의 중반에 접어들어 내려오기를 시작한 나는 나의 인생을 반성과 성찰, 그리고 주변을 살피며 내려오려고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종착지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며 한걸음 한걸음 내려온 종착지는 평안할 거란 상상이 든다.
베이비부머 1세대(705만 명)에 더하여 2세대(954만 명)까지 엄청난 숫자의 은퇴자들이 있다. 단순한 고령의 인구가 늘어나는 측면뿐 아니라 시대를 치열하게 살았던 은퇴자들이 넘쳐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남자와 여자 모두가 같다. 은퇴자들은 화려하게 살아왔던 인생의 내리막길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남자는 치열하게 달려왔던 직장을 벗어난 삶을 적응하기 힘들 것이며, 여자는 가정과 직장에 매달려 자신을 희생하며 살아온 인생에 허무함을 느낄 것이다.
베이비부머 2세대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나 또한 인생의 퇴로에 서 있는 느낌이다. 주어진 타이틀이 명예롭기보다는 내려가기를 시작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여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누구는 내려가기를 하기보다 옥상으로 다시 올라가기를 하라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욕심이다. 내려가기를 하면서 때로는 필요에 따라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여 조금 올라가 볼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려가기를 시작한 이상 우리는 천천히 조심하며 내려가야 한다. 급하게 내려가다 보면 다칠 수도, 화가 날 수도 있다. 그러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생각에 좌절하게 된다. 우리가 천천히 내려가기를 하다 보면 중간에 조그만 의자가 있어 쉴 수도 있을 것이며, 때로는 정다운 이웃을 만나 우리의 소소한 일상을 나눌 수도 있을 것이다.
매스컴에서 인구의 고령화와 1700만 명 가까운 베이비부머들로 인해 고민이라고 얘기한다. 쏟아지는 우려와 사회적 손실을 떠들어 대며 50대 이상의 장년층이 사회의 골칫덩어리인 양 표현될 때 나도 모르게 씁쓸함을 느낀다. 어쩌면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그 세대들은 내려가기를 하다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힘들어 쓰러지기도 한다. 천천히 내 속도에 맞춰 한발 한발 내려가는 것과 등 떠밀려 내려가는 것은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파트 계단을 운동삼아 내려갈 때는 층을 확인하지 않아야 힘들지 않게 내려갈 수 있다. 그러나 인생의 계단 내려가기는 한 층 한 층 확인하고 싶다. 확인하면서 층마다 숨을 고르기도 하고, 노래 한곡 부르기도 하면서 나의 존재를 확인하고 마지막에 도달하고 싶은 것이다.
1층에 도달했을 때의 안도감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특권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