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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랑이와 쥬랑이

엄마와 나

by 조은주

오랑이는 20년전 한 동물원에서 재주를 부리던 오랑우탄이었다. 동물을 도구로 쇼를 하게 하는 것이 논란이 되어 쇼는 없어지고, 오랑이와 딸 쥬랑이는 좁고 열악한 컨테이너 안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그러나 컨테이너는 자유롭게 나무를 타고 생활해야 하는 오랑우탄에게는 치명적이었다. 오랑우탄에게는 매달리고 디디며 움직여야 할 나무나 조형물이 필요하다. 오랑이는 아무것도 없는 좁은 흙바닥에서 활동을 정상적으로 하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골절된 오른쪽 다리가 그대로 굳어버렸다. 다리를 못 쓰게 된 것이다.


오랑이에게는 9살인 딸 쥬랑이가 있다. 두 모녀의 얘기가 전해지면서 사천의 동물원에서 수억을 들여 오랑우탄에게 맞는 환경을 조성하여 이들을 데려왔다. 처음에는 낯선 환경에 당황하였으나, 쥬랑이가 어리다 보니 먼저 환경을 받아들인다. 3층으로 조성된 두 모녀의 공간에서 쥬랑이는 바다를 보게 된다. 쥬랑이는 한참을 바라보다가 1층에서 식사를 마치고 어두운 구석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는 오랑이에게 와서 손을 잡아 끈다. 다리가 굳어 움직이기 힘든 오랑이의 등을 떠밀고 자신은 앞서 가고, 다시 올라오지 않는 오랑이의 등을 떠밀고 같이 가자고 바쁘게 움직인다. 쥬랑이는 3층에서 보았던 넓은 바다를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TV '동물농장'의 한 장면



고령이며 치매를 앓고 계시는 엄마에게 부산여행을 가자고 했다. 어디를 가자고 하면 귀찮다고 거부하시는 엄마에게 수십 번을 반복적으로 얘기했다. 3분이 지나면 잊어버리고 또 얘기하면 잊어버리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고 얘기했다. 왜냐하면 혹시나 엄마가 기억할까 해서였다. 본인의 동의를 받고 싶기도 했다. 정말로 엄마는 가기 싫으신데 내가 자꾸 엄마를 귀찮게 하는 것은 아닌가 싶어서였다. 쥬랑이가 아픈 오랑이의 손을 잡고 등을 떠밀어 함께 새로운 공간을 즐기고 구경하자고 한 것처럼 나도 엄마의 손을 잡고 등을 떠밀고 싶었다.


엄마가 모든 것이 귀찮다고 하여 나는 나름 계획을 세웠다. 옷도 번거롭지 않게 통으로 된 원피스를 여러 벌 사서 한 번에 갈아입을 수 있게 하였고, 잘 걷지를 못하는 엄마를 태울 휠체어도 준비했다. 출발하는 날도 문 밖을 나서지 않으려는 엄마를 이모가 기다리고 있다고 설득하여 밖으로 발을 디디게끔 하였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엄마와 부산여행을 떠났다. 부산은 엄마의 고향이다. 어린시절 자라셨고, 결혼을 하여 우리를 낳고 한동안 부산에서 키우셨다. 외할머니와 외삼촌들이 부산에 계시기에 나도 어릴적 외삼촌댁에 가서 방학을 지낸 적이 있다. 부산의 해수욕장에서 해수욕을 즐기고 외할머니의 사랑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엄마에게 부산은 외할머니의 위대함과 8남매의 첫째딸이었던 엄마 동생들의 얘기로 가득한 곳이다.

여행을 하면서도 어디를 가는지 호텔에서도 여기가 어디인지 수도 없이 물어보셨지만, 그래도 엄마는 "이곳이 부산이다"라고 인지시켜 드리면 "나의 고향 부산" 이라는 말씀을 반복적으로 하셨다.

어릴적 부산에 살 때 아나고, 상어고기, 빨간고기(맛이 기가 막힘), 추어탕, 복국을 먹었고, 해운대 백사장이 지금처럼 좁지 않고 넓었다고 하시고 아파트와 빌딩이 이렇게 많지 않았으며 외할머니가 천리교에 돈을 많이 갔다 바쳤다는 둥, 서더리매운탕에는 비린내 제거를 위해 방아를 넣는다는 둥 외삼촌들과 이모들과의 회포자리에서 엄마는 치매걸린 노인이 아니었다.

마지막날 해운대가 보이는 카페에서 해운대를 바라보며 브런치를 드시던 엄마가 "원도 한도 없이 내 고향 바다를 보는구나" 라는 말씀을 하신다. 그 순간은 엄마를 모시고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오늘 저녁 서울에 가면 엄마는 부산을 갔다왔는지도 다 잊어버릴 것이다.

비가 내리는 상황인데 사진 촬영을 위해 선글라스를 착용함. 사진을 찍어주신 분이 속으로 웃었을 것임.


우리의 추억이 엄마의 기억에는 없겠지만, 마음 깊숙한 곳에는 아련하게 남아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혹시라도 문득 기억이 돌아온다면 혼자 미소 짓지 않으실까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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