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선배

평창동 아줌마

by 조은주

나의 엄마에겐 사랑하는 선배가 있다. 엄마가 그분을 너무 좋아하시고 존경하셔서 어쩔 때는 나에게도 그런 선배가 있었으면 할 정도였다. 수십 년을 넘게 알고 지내셨으니, 긴 세월을 생각해서라도 특별한 인연이라 여겨진다. 혈연이 아닌 관계에서 인간적 사랑을 변함없이 이어가고 마음에 담을 수 있다는 것은 신이 주신 소중한 혜택이다.


나는 그분을 '평창동 아줌마'라 불렀다. 그분은 엄마의 학교 선배이시다. 내가 중학교 시절 아줌마가 평창동에 사실 때 엄마와 함께 아줌마 집에 간 적이 있다. 2층으로 된 커다란 집에는 우리에게 다과를 가져다 주는 허리가 굽은 할머니가 계셨다. 처음에는 아줌마의 친정어머니인 줄 알았다. 그 할머니는 말씀도 없이 다과를 두고 조용히 부엌쪽에 붙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분이 궁금했다. 친절하게 대해주시는 아줌마도 좋았지만, 할머니가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쪽방으로 들어가시는 것을 보고 아줌마의 어머니는 아닌 듯 보였기 때문이다. 엄마에게 들어보니, 갈곳 없는 분을 잠시 집에 머물게 한 것이 세월이 지나 저렇게 연세가 많이 드셨다는 것이다. 아마도 남의 집에 살게 되면서 집안일을 돌봐주기 시작한 것이 긴 시간이 흐른 것 같다.

무슨 사연인지 세세한 내용은 알 수 없으나, 아줌마가 할머니를 대하는 모습이나 할머니의 표정에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수직적 관계는 없었다. 단지 나는 저렇게 나이가 드셨는데 구석진 부엌방에 계시냐고 엄마에게 의문을 제기했으나, 할머니가 그곳이 편하다고 거기서 생활하기를 원하셨다고 한다. 평창동 집을 나서면서 엄마는 평창동 아줌마가 인정이 많고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분이라고 하셨다. 그 할머니도 진작에 내보낼 수 있었으나, 본인이 머물기를 원했고 돌봐줄 가족이 없어 아줌마가 그분의 마지막을 책임지실 거라 하였다.


한번은 엄마의 학교동기가 평창동아줌마에게 돈을 빌린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러곤 돈을 갚지도 않고 종적을 감추었다고 한다. 세월이 한참 지나 갑자기 나타나서는 자신이 사정이 있으니 자신을 아줌마의 집 주소로 옮길 수 있냐고 했다 한다. 다른 동창들에게도 부탁하였으나, 거절당해 마지막으로 아줌마에게 부탁을 한 것이다. 아줌마는 예전에 빌렸던 돈을 갚으라는 얘기도 하지 않고 그렇게 하라고 했다. 주변의 모두가 괘씸하다고 만류했지만, 아줌마는 궁지에 몰린 사람을 외면할 수는 없다고 하셨단다. 그것은 아줌마가 어떤 분이라는걸 여실히 알 수 있는 일화이다.


엄마는 아줌마를 사랑하셨다. 유독 엄마를 잘 챙겨주신 이유도 있지만, 엄마는 아줌마가 주변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고, 신앙심이 깊으며, 절대 다른 사람을 비방하지 않는 분이기에 더욱 존경한다고 했다.



4년 전 아줌마가 집안에서 거동이 불편하실 때 엄마를 모시고 아줌마댁에 간 적이 있다. 나는 차에서 기다리려 했으나 내가 밖에 있다는 사실을 안 아줌마는 나를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연세가 많으셔서 허리를 잘 쓸 수가 없어 아줌마는 거의 와상환자였다. 안방에는 병원침상이 있었고 24시간 상주하는 간병인이 있었다. 거실에서 내가 기다리는동안 엄마는 방에서 아줌마랑 대화를 나누고 계셨다. 나는 거실을 둘러보았다. 책들이 많았다. 엄마 말로는 평창동에서 이사(가세가 기우심)를 하며 책을 많이 버리신 거라고 했다. 아줌마는 누워서 책을 읽으신다. 엄마가 가면 읽었던 책의 내용을 얘기하신다고 한다. 물론 엄마도 책을 좋아하신다. 특히 일본소설을 좋아하신다. 두분 다 일제강점기를 겪었기에 일본어 독서가 가능하여 일본소설을 즐기신다.

이번에 읽으신 책은 몽골에 관련된 책이란다. 비록 걷지 못하셔서 여행을 갈 수는 없지만 책을 통해 아직도 세상을 배우신다. 나이 90세 와상환자이신 분이 책을 통해 87세의 후배와 쉴새없이 재미있게 대화를 나누시는 것이다. 나오는 길에 아줌마는 도우미분을 통해 냉장고에 있는 식재료를 다 퍼주실 기세였다. 우리가 거부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다 내어주셨을 것이다.



현재 나의 엄마는 치매이시다. 엄마가 아프지 않으실 때는 택시를 타고라도 아줌마를 뵈러 가셨다. 그분이 엄마에게 주는 삶의 의미는 가족과는 또 다른 무엇이 있었다. 다른 사람과의 길고도 끈끈한 세월과 신뢰, 의리 그리고 서로가 공유하는 평안함은 그 어떠한 것보다도 소중하고 값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런 분이 엄마곁에 계셔서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가끔 엄마에게 평창동 아줌마가 보고 싶지 않냐고 물어본다. 보고싶다고 하시지만, 자신은 갈 수가 없다고 하신다. 나는 엄마에게 모셔다 드릴테니 가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엄마는 돌아가셨을 거라고 하신다. (치매 증상으로 전화를 하시거나 가려는 의지가 없으심)


2년 전 아버지를 하늘나라로 보내드리고 나서 집에 돌아와 내가 슬프지 않냐고 물었을 때, 엄마는 하늘나라에서 곧 만나면 된다고 괜찮다고 하셨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엄마는 "곧 하늘나라에서 언니를 만날 수 있는데 뭐하러 가" 라고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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