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과 왼손만 남는다면

주어진 삶에 순응하기

by 조은주

동네 서점 구석에 중고서적이 관리가 안 된 채 무더기로 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쌓여 있는 더미에서 이해인수녀님의 수필집을 찾았다. 낡은 책들 사이에서 보물을 발견한 느낌이었다. 오래된 책이었지만 이해인 수녀님의 글은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주는 책이기에 망설임 없이 구입했다. 왠지 새 책을 사기보다 중고책 더미에서 책을 찾는 것이 묘미처럼 느껴졌다.


책의 내용 중에 이해인 수녀님 소녀 팬의 이야기가 있었다. 그 소녀는 불의의 사고로 눈과 왼손만 쓸 수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8년을 누워서 지내다가 결국은 두 달 시한부선고를 받게 되었다. 소녀는 하늘나라로 가기 전에 김수환추기경님과 이해인수녀님을 만나고 싶어 했다고 한다. 그러한 소식을 듣고 이해인수녀님은 그 소녀를 만나 인연을 이어갔다고 한다. 만나고 싶어 하던 수녀님을 만나고, 소녀는 2달이 아닌 2년 후에 하늘나라로 떠났다고 한다. 어린 소녀가 10년이라는 시간을 눈과 왼손만을 가지고 삶을 포기하지 않고 살았다는 것이 상상이 안된다. 그런 상황에서도 수녀님의 글을 읽고 희망을 가졌다는 것도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나이가 들어 노안증상이 오고, 손도 저리기에 만약에 나도 눈과 왼손만 기능이 남는다면 어떻게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그리고 신체적 장애로 인해 정신적 장애까지 겪는다면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물음을 던져본다.


아마도 우리는 모두 후천적 장애인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사회에서 적응하고 성장하면서 누구나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 결핍을 가지게 된다. 특히 사회적 결핍은 나 자신이 느끼는 사회 안에서의 나의 위치에 대한 불만과 불안감이다. 그것은 경제적인 것일 수도 있고, 사회적 명예일 수도 있고, 내가 원하지 않는 위계적 지위일 수도 있다.


사회에서 우리는 출생부터 다르게 태어난다. 다른 부모와 형제, 즉 각기 다른 가족을 가지고 태어난다. 속어로 금수저, 흙수저라는 표현을 쓴다. 즉, 유전자가 다르다는 것이다. 그 유전자는 신체적, 지능적, 정신적인 것이 포함된다. 그것을 시작으로 생활수준의 차이, 학력, 직업, 소득의 차이가 발생한다. 유전자는 내가 선택할 수 없기에 주어진 사람마다의 차이일 뿐이다. 하지만 노력한다면 상황은 조금 달라질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미리 좌절한다. 시작부터 잘못되었다고 판단하고 주어진 것에 비관하고 잘나든 못나든 스스로 낙인찍는다.

그 좌절감은 오랜 기간 사회 안에서 계급을 형성해 버렸다. 각자의 서열에서 위를 보고 부러워하고, 아래를 보고 멸시한다. 그리고 서로가 넘나들 수 없다고 단정해 버린다. 그 잘못된 계급이 진화되어 작은 사회를 가더라도 계급은 만들어진다. 우습게도 소위 잘난 사람들끼리도 계급이 있고, 못난 사람들끼리도 계급이 존재한다.


우리는 자연이 섭리, 신의 섭리로 만들어졌다.

한마디로 거저 주어진 것이다.

나 자신이 어떠한 모습으로 만들어졌던 부끄러워할 이유가 전혀 없다. 그 부끄러움은 인간들 스스로 만들어낸 기형의 결과물이다.


잘나면 잘난 대로 못나면 못난 대로 주어진 삶에 감사하며 살면 된다. 다른 사람들과 나를 비교할 필요는 없다. 상대적 박탈감은 타인이 아닌 나 자신에게서 시작된다. 선의의 경쟁은 필요하지만, 과욕의 경쟁은 나를 더 열등하게 만들 뿐이다.



그 소녀가 생각난다.

소녀는 눈과 왼손으로 책을 읽고, 기도를 하며 자신의 세계를 펼쳐나갔고, 그렇게 만나길 원하던 수녀님과의 인연도 만들었다. 어린 소녀는 남들의 눈에는 가여운 삶이었을지라도 스스로는 자신을 사랑하고 정성을 다하고 산 것이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축복 속에 하늘나라로 간 것이다.


비록 짧은 인생이었지만...

소녀는 장애인이 아닌 고귀한 생명으로...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인생을 살다 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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