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기억하고 있다
13번째 헌혈을 마치고 헌혈의 집에서 봉사를 하고 있는 고등학생들을 보았다. 그 친구들은 헌혈의 집 바깥에서 홍보를 하고 중간중간에 실내로 들어와 쉬고 있었다.
헌혈을 하면 음료수와 과자를 선물로 준다. 별거 아니지만, 나는 학생들이 고생하는 것 같아 받았던 음료수와 과자를 건네주었다. 요즘은 물건이나 음식을 함부로 주어도 이상한 취급을 받는다. 하지만 그것은 헌혈의 집에서 검증된 간식이기에 준 것이다. 학생들은 잘 먹겠다고 꾸벅 인사를 하였다. 놀란 얼굴로 인사만 한 것인데 그 모습이 너무도 사랑스럽고 귀하게 느껴졌다.
가끔 내가 어린 학생들에게 선의(다정한 말투, 친절한 행동)를 베풀었을 때 그 친구들이 과연 그것을 기억할까? 생각해 본다.
세상의 어른들은 어린 친구들에게 훈육이라는 이유로 함부로 말하고 행동할 때가 있다. 그러한 모습을 겪은 어린 친구들은 바로 대처할 수 없기에 마음속에 겪었던 어른들의 모습을 그대로 기억한다.
그리고 그것을 답습하기도 한다.
문득, 2014년 세월호 참사가 생각난다. 그 당시 운전을 하며 가다가 우연히 현수막을 보았다.
사거리에 걸려있는 현수막에는 하얀 바탕에 '미안하다'는 한 마디가 검은 글자로 적혀 있었다.
한 마디였지만 누구에게 말하는지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것을 보고 나는 울었다.
<세월호 사건이 6년이 지난 2020년에 세월호 참사를 생각하고 쓴 작가의 시이다>
공동체의 규칙
가만히 있어라
자리를 지켜라
그러나 목숨은 지키지 못했다.
발아래 비명을 지르며
허우적대는 친구들
내 발을 잡으라 소리쳐도
잡았던 손들은 하나둘
미끄러져 물속으로
사라지고
남겨진 자에게
공동체의 규칙은
지키고 싶지 않은
약속이 되어
미안하다 한 마디로
사거리에 걸려있는 현수막
모두의 가슴을 통곡게 하고
떠난 친구를 가슴에 묻고
물 가까이 가지 못하는
내 선배의 딸은
어찌 지내는지 궁금하구나
그때의 그 아이들이 지금은 성인이 되어 서른 살이 되었다. 이 사회의 중추 역할을 하는 어른이 된 것이다. 남아있는 아이들은 이 사회를 어떻게 기억하고 어떻게 살아가고 싶을까. 커다란 아픈 기억뿐 아니라 어른들의 작은 행동 하나도 아이들은 학습하고 기억한다. 그렇기에 어른들은 아이들이 디디고 싶어하는 인생의 발자국이 되어야 한다.
단재 신채호 선생님의 말씀("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를 없다")처럼 과거로 이어져 오는 현재이기에, 그 현재가 이어져 미래가 되기에, 어쩌면 우리는 모두가 교육자가 되고 진정한 어른이 되어야 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