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동네에 살다가 이사한 집은 다른 세상이었다.
큰 대로변 옆에 붙어있고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건물이보였다. 양쪽으로 갈라진 시멘트 길을 따라 들어가면 그 끝엔 텃밭도 있었다. 대지가 100평 정도 되었기에 앞마당에서는 줄넘기도 하고, 뒷마당에서는 들마루에 앉아 돈달산을 바라보곤 했다.
이사한 집에서 강아지를 두마리 키웠다. 학교를 갔다 오면 강아지들이 반겨주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훤하다.
그 중 한마리가 기억에 남는다.
흔히들 얘기하는 똥개였지만 달고나처럼 윤기가 나는 긴 갈색 털을 갖고 있었고, 촉촉한 눈망울은 빨려 들어갈 듯 영롱했다. 혈통 있는 비싼 강아지와 비교해도 손색없을 정도로 자태가 뛰어나 밖에서 키우는 게 미안할 정도였다. 그래서였을까? 다른 강아지들과 다르게 '장미'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초등학교 3학년 어느 날. 학교가 끝나고 집에 왔는데 장미가 보이지 않았다. 강아지집에 걸려있던 목줄도 없었다. 엄마에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집에 계시지 않았다. 장미를 찾기 위해 마당을 뛰어다녔다. 혹시 밖에 나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동네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돌아다니다 집에 왔는데 어디선가 낑낑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장미야?"
이름을 부르니 소리는 더 커졌다.
텃밭 한편에는 옆집과 연결된 작은 문이 하나 있었는데 사용할 일이 없어 앞에 나무를 쌓아뒀었다. 나무더미 앞에 오니 낑낑거리는 소리가 아주 크게 들렸다.
"장미야. 어디 있어?"
분명 여기가 맞는데... 나뭇더미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두리번거리다 옆집과 연결된 문틈 사이를 본 순가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문 뒤에는 철창에 갇힌 장미가 맑고 촉촉한 눈망울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너 왜 거기 있어?"
이번엔 엄마를 찾아 나섰다. 동네 아줌마들이 자주 모이는 쌍둥이네 집에 엄마가 있었다. 엄마를 만나자마자 울며불며 얘기했다.
"엄마, 장미가 향어횟집에 있어. 왜 거기 있는거야?"
"팔았어"
"향어집에 왜 팔아. 빨리 데려와!"
알고보니 향어횟집 아저씨는 향어도 판매하셨지만, 개장수이기도 했다.
우는 나를 달랜다며 엄마는 만 원짜리 한 장을 손에 쥐여줬다.
엄마가 준 만원을 손에 쥐고 훌쩍이며 집으로 돌아와 장미를 보러 갔다. 문 하나를 두고 낑낑거리는 장미를 한참 바라봤다.
속상함과 슬픔 그 어디쯤 서 있었지만 내겐 만원도 포기할 수 없는 큰 돈이었다. 일 년 중 유일하게 용돈을 받는 설날에 받는 돈이 만 팔천원이었기 때문이다.
그날 밤. 만원과 장미 사이에서 고민하다 이대로 보낼 수 없어 데려오자며 엄마에게 얘기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장미를 판 돈이 무려 3만원이었고, 그 중 만원을 내게 준 것이었다.
며칠 뒤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날 장미가 떠난다는 말에 우산도 없이 뛰어나가보니 향어집 아저씨 자전거 뒤에 실려있는 모습이 보였다. 비에 젖어 내려앉은 털과 반짝이던 눈이 유독 슬퍼 보였다. 다시는 볼 수 없는 길로 떠나는 장미를 보고 있자니 얼굴엔 눈물과 빗물이 섞여 흘렀다.
그날 이후 우리 집 마당에 강아지는 없었다. 시대가 변하고 문화가 변하면서 장미처럼 개장수에게 팔려가는 강아지들도 없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