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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동안 같은 아이들과 한 반이라니

새로운 학교

by 맑은희망


2층짜리 건물 하나.

앞에는 작은 운동장.

창문에는 1-1, 2-1, 3-1… 과학실, 교무실이 같은 크기로 붙어있다

교실 찾기는 아주 쉽겠네…

6년 동안 같은 아이들과 한 반이라니..

“학교에 한 반 밖에 없대”

엄마가 말하자 언니는

“이번에는 경숙이 전교 1등 한 번 해봐야지?”하고 말하며 피식 웃는다. 가끔씩은 정말 얄밉다.


학교는 걸어서 20분 거리다.

언니가 예상한 대로 버스는 한 시간에 한 번 정도 다녔고 그나마도 시간이 다 달랐다. 버스를 타려면 정류장까지 걸어가는 시간이 10분이라 그냥 걸어서 가기로 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부모님 없이 걸어서 갔다. 가끔 자전거를 타고 가는 남자아이들도 보였다. 작은 산이 하나 있고 그 옆에 난 길로 인도도 없는 길을 걸어갔다. 가끔 큰 트럭이 지나가면 나는 무서워서 구석에 가서 서있었다. '조금이라도 위험하면 아래 논이나 밭으로 뛰어들어야지..' 늘 생각하며 걸었다.


이 특이한 학교는 걸어오는 학생들에게 운동장을 5바퀴 뛰고 들어오라고 하였다. 어차피 계속 뛰어다니며 노는 아이들일 텐데... 걷는 아이도 있고 뛰는 아이도 보였다. 6학년쯤 돼 보이는 아이들이 잘 뛰는지 보고 있었다. 그냥 들어가는 아이들은 다시 불려 나와서 뛰고 있었다. 나는 가방을 메고 뛰는 것도 걷는 것도 아닌 채 운동장을 돌았다.

‘5바퀴를 정말 세고 있는 걸까??’


물으나 마나 1반

빈자리를 찾아서 앉으니 아이들이 쳐다봤다. “쟤 누구야?” “몰라” “네가 말 걸어봐” “네가 해봐” 아이들이 수군대는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못 들은 척 교과서를 펼쳐 보았다.

“안녕? 넌 누구야?”

“나는 김자 경자 숙자라고 해”

나름 나의 유머인데 순간적으로 정적이 흘렀다.

“나는 민정이야” 단발머리를 한 아이가 인사를 했다.

“안녕!”

모두들 자기 이름을 말했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역시 내 이름은 너무 촌스러워’

나른 세련된 이름이 갖고 싶었다. 그래서 인형들 이름을 고를 때면 내 이름을 바꿀 수 있다면 어떤 이름이 좋을까 늘 생각하며 지었었지.

아빠는 집안이 ‘경’ 자 돌림인 줄 알았다고 했다.

그것도 ‘서울 경’ 자라니..

나중에 알고 보니 경자 돌림도 아니었고 친척 언니는 그나마 “동경할 경”자를 쓰고 있었다.

서울 경, 맑을 숙. 맑은 서울인가?

그나마 ‘희’ 자가 들어간 언니 이름이 조금 나아 보였다.


잠시 뒤 “아침 조회가 있으니 학생들은 운동장으로 나와주세요”하는 방송이 나왔다.

아이들은 익숙한 듯 학년별로 차례대로 두 줄로 줄을 섰다.

아이들은 대충 마주 보고는 눈대중으로 키 작은 아이들부터 차례대로 줄을 섰다.

교장선생님은 대머리셨고 키가 작아서 단상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다. 작은 목소리에 마이크가 웅웅대서 뭐라고 하는지 안 들렸는데 끝에 “네?”하는 말을 붙였다.

“또 나이가 많은 교장선생님이 왔네. 얼마나 있다가 가시려나??”

다른 아이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는 시골이라 그런지 나이 든 교장 선생님들이 오셔서 금방 은퇴하고 가시더라고. “

민정이가 나에게 말해줬다.

지루한 조회가 끝나고 선생님 한분이 나오셨다.

“돌멩이를 한 움큼씩 주워 와서 검사받으세요”

아이들은 흩어져서 돌멩이를 주웠다 아이들에게 돌멩이를 왜 줍게 하는지... 나도 돌멩이를 여러 개 주워 선생님에게 보여드리니 고개를 휙 돌리셨다. 합격이란 뜻인가 보다. 손을 씻고 교실로 들어갔다. 물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빨개진 손은 주머니에 들어가서도 한참이나 차가웠다.


엄마는 학교가 어땠냐고 물었다 전체 학년을 합쳐도 전에 학교 한 학년의 수보다 적은 곳. 아빠는 왜 이런 곳으로 이사를 왔을까? 어떻게 이곳을 알고 왔을까?

엄마에게는 “공기는 좋은 거 같아”라고 말했다 사실 학교를 가다 보니 먼 곳은 공장이 수두룩했다 ‘공기가 좋은 건 맞을까?’


언니는 머리를 단발로 잘랐다. 중학교 교복도 맞추고 왔다.

갑자기 언니가 너무 크게 느껴졌다.


어떤 중학교에 갈지 미리 생각했고 교복도 유심히 지켜봤다. 그런데 갑자기 아빠가 이사를 가자고 했다. 나는 엄마, 아빠에게 아무런 티를 안 내려고 했지만 친구들과 헤어진다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게다가 경숙이가 워낙 울보라 나까지 울면 엄마가 너무 힘들 것 같았다. 동생이 한 반밖에 없다고 비웃었지만 우리는 4반이었다.

엄마랑 같이 교복을 맞추러 갔는데 색깔이 너무 촌스러웠다. 서울에서는 딱 달라붙게 입는 게 유행이어서 언니들은 저 치마를 입고 어떻게 걸을까 싶었는데 이곳은 무릎 아래로 내려오는 긴치마가 유행이었다. 나는 차마 둘 다 맞추지 못하고 “무릎정도로 해주세요”하고 말했다. 엄마는 “그래 키가 더 클지 모르니까 너무 짧게는 하지 말자”하고 말씀하셨다.

머리를 단발로 잘랐다. 귀밑 3cm. 층도 없이 잘라낸 머리에, 갑자기 시골에, 교복에 모든 게 달라졌다. 엄마랑 같이 교복을 입고 사진관에 갔다. 눈을 감지 않고, 눈을 크게 뜨려고 노력했다. 카메라 후레쉬에 눈부셔서 눈물이 난 거다.

엄마는 내 반명함 사진을 보며 “우리 경희가 벌써 중학교에 가다니.. 언제 이렇게 컸니”하고 말씀하셨다. 내 반명함 사진은 그 후로 우리 집 거실 거울에 붙여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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