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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영 Aug 08. 2023

슈렉아, 새싹을 부탁해.

감자가 싹이 났어. 싹, 싹, 싹

베란다에 두었던 감자가 제 모습을 감추고 몸통 곳곳에 초록을 내놓았다.


반찬으로 쓰일걸 게으른 주인이 잊고 내버려 둔 결과였다.

초록은 심신을 안정시켜 준다는데, 감자에 생긴 초록은 독이라고 해서 버려진다. 슈렉처럼 변해버린 초록감자를 어떻게 할까 잠시 고민하다,  눈에 들어온 빈 화분의 흙 위에 무심하게 올려놓았다. 모시던 주인은 이미 자연으로 돌아가고, 흙만 남아 새 주인을 기다리던 화분이었다. 


낮에 화분 위에 올려둔 감자가 저녁때가 되어서야 다시 생각이 났다. 괜히 마음이 쓰여 분무기로 물을 조금 뿌려주었다.


다음날 다시 감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냥 저렇게 두었다가는 지난번 주인을 따라갈 것 같 반은 흙속에 묻어 주고 다시 물을 주었다.

다 자란 식물도 좋아하지만, 새싹 올라오는 걸 지켜보는 게 더 좋은 나는, 이러다가 새싹이 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갑자기 의욕이 샘솟았다. 내 손을 거쳐가며 유명을 달리했던 수많은 식물들을 떠나보내며 이제 새싹도 다신 키우지 않겠다고 다짐 아닌 다짐을 했었는데 결국 또 본능을 잠재우진 못했다.

이왕 마음을 쏟기로 다짐도 했으니 이름도 지어 주었다.


이제 슈렉이라 부르며 본격적으로 마음을 쏟았다.

그날부터 아침저녁으로 물을 뿌려주고 사람에게 말하듯 힘내라는 응원도 아끼지 않았다. 평소 물을 너무 많이 줘서 죽어간 식물들과 달리 이 녀석은 하루에 몇 번씩이나 물을 줘도 좋아하는 것 같았다. 외출해서 물 주는 걸 잊고 나오는 날에는 집에 전화를 걸어 누구라도 물을 줄 수 있게 당부했다.


이런 정성이 통했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주 예쁜 새싹이 나와 주었다. 그것도 여러 곳에서 한꺼번에 올라왔다.

새싹이 올라올 때면 어떤 벅찬 감동 같은 게 느껴져서 자꾸 싹틔우기를 반복하는 것 같다. 새싹이 나와주니 나는 더 바빠졌다. 물도 더 자주 주고, 햇빛을 따라 루에도 몇 번씩 화분의 위치를 바꿔주었다.

그동안 과일의 씨앗으로도 여러 번 싹 틔우는 즐거움을 맛본 적은 있었지만, 슈렉 이 녀석은 확실히 느낌이 달랐다.


감자라는 몸통이 존재해서 그런 건지, 새싹 줄기가 통통한 데다 자라는 속도도 월등히 빨랐다. 기특한 녀석이었다.

물만 주었는데도, 에 있던 다른 식물들보다 키도 훨씬 커졌다.


그리고는 끝내 경험해보지 못한 벅찬 감동을 내게 안겨 주었다. 놀랍게도, 꽃을 피워낸 것이다.

아름다운 감자꽃이었다.


감자꽃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자세히 들여다본 적은 없었다.

새하얀 작은 꽃잎들과 딱 어울리는 노란 수술들은 세상 어느 꽃보다 조화롭게 예뻤다.

작고 흰 꽃잎은 노란 수술이 눈에 띄지 않을까 자신을 뽐내지 않고, 수술들은 행여나 흰 꽃잎들이 다른 꽃에 묻힐까 봐 더욱 진한 노란색을 내었다.


감자꽃이 피면, 감자를 더 실하게 키우기 위해 꽃을 제거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꽃에 영양분이 집중되기 때문에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기대했던 것은 새싹이었지 열매를 바랐던 것은 아니었기 때에 나는 꽃을 더 오래 보는 쪽을 선택했다.


새싹만 봐도 좋았을 텐데 꽃까지 보고 나니, 자기  없던 용기가 나서 다른 씨앗에 자꾸 눈길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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