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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란 무엇인가

대학 입시 이후 계속되는 진로 고민 속에서

by 서본


『학교모범(學校模範)』은 율곡이 대제학으로 재직하던 1582년(선조 15)에 왕명을 받고, 스승을 고르고 선비를 기르는 목적으로 관학 교육을 위해 저술한 책이다. 그는 당시 조선의 상황을, 위로는 조정에 인재가 모자라 벼슬에 빈자리가 많고 아래로는 풍속이 날로 퇴폐하고 윤리의 기강이 무너지고 있다고 보았다.


율곡은 교육이 올바로 서지 않아 이런 폐단이 속출한다고 진단했다. 교육을 다시 살리자, 참교육으로 다시 돌아가자. 이를 위해 참교육이 무엇인지 자세히 설명하고, 어떻게 참교육을 세울 것인지 구체적인 방향도 제시하였다. 율곡이 올바른 교육의 요체를 녹여낸 책이 바로 『학교모범』이다. 이 책에서 율곡은 지난날의 잘못된 습속을 제거하고 선비의 기풍을 크게 진작시키자고 외친다.


학교모범(學校模範)王年(선조 15, 1582)에 왕명으로 지어 올림. 事目을 붙임.

모든 세상일이, 배우는 자는 먼저 뜻을 세워야 하며 도(道)로서 자신의 임무를 삼아야 한다. 도는 높고 멀 것이 아닌 데도 사람의 스스로 행하지 못한다. 온갖 선한 것이 다 나에게 갖추어 있으니, 달리 구할 필요는 없다. 다시 망설이거나 기다릴 것도 없으며, 더 이상 두려워하며 머뭇거릴 것도 없다. 곧바로 천지로써 마음을 세우고, 민성으로부터 표준을 삼으며, 옛 성인을 표준 삼아 행하고 있는 것이다. 마땅히 하늘의 법칙(太字)을 열렬한 뜻으로 바라보고 스스로 용맹하게 힘쓰되 한결같이 꾸준해야 하며, 그 밖의 사사로운 것들을 버리고, 사사로운 용심으로 용맹스럽게 버릇을 탈피코자 가슴 속에 채우지 못하게 하며, 덕행과 명예, 영화롭고 부유함, 이득과 손해, 올리고 내린 것들이 마음을 설레게 말아야 하며 분별하고 힘써서 기어코 성인이 되고 말아야 한다.

이이의 『학교모범』 중 첫 번째 조항인 입지(立志)에 관한 부분이다.




나는 4번의 수능을 보고 대학교에 입학했다. 정확히는 4번의 시험을 보고 나서야 성적을 받아들이고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었다. 누군가 나에게 왜 수능을 여러 번 보게 되었냐고 묻는다면, 나는 뭐라고 답할 수 있을까. 취업이 어려워 전문직이 유독 각광 받는 나라, 그중에서도 학군지로 손꼽히던 환경, 날로 과열되는 입시 제도, 교육열이 높은 부모님의 기대, 부족했던 나의 주체성과 메타인지 등으로 얼버무릴 수 있겠다. 이처럼 수능이라는 입시 체제에 얽매여 4년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을 보낸 후, 공부라는 것에 대한 나의 인식은 완전히 달라졌다. 내가 공부하는 목표는 무엇이며, 그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최종적으로 지향하는 인간상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 서술하려고 한다.


대학에 들어온 직후, 학창 시절 내내 그려왔던 미래의 청사진과 완전히 다른 길을 가고 있는 나의 모습에 많은 감정을 느꼈다. 아직 방황 속에 있던 나는 동아리도, 새로운 인연들도, 성적도 모두 제쳐놓고 과거의 꿈을 붙들고 있었다. 그때 나에게 공부란 미래의 안정성을 보장하는 수단이었다. 숫자로 매겨지는 나의 노력을 강박적으로 분석했다. 매너리즘을 애써 극복하며, 배움의 즐거움보다는 행동강령을 체화하고 선지를 암기하는 일에 집중했다. 지금의 나는 더 이상 수능을 위해 공부하지 않는다. 내가 희망했던 전공 혹은 진로가 진정으로 ‘내가’ 바랐던 것인지, 내가 소화할 수 있는 것인지, 더 나아가 해당 진로에서 내가 과연 행복할 것인지 등에 관해 불확실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내가 대학 공부에 마음을 붙인 일은 올해 초, 3학년이 되고 나서부터이다.


그 이유는 새로운 목표가 생겨서이다. 해외에서 공부하고 싶어졌다. 정확히 어떤 길로 학업을 이어갈지는 모르겠지만, 대학원을 진학할 시에 대학교 학점도 중요한 요소라고 해서 뒤늦게 학업에 매진하였다. 수능 공부라는 다른 변명거리가 없어진 것도 그 이유 중 하나겠다. 혹은 내가 다니는 학교 공부를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들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상황이 어찌 되었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가장 마음이 편하고 익숙한 일이기 때문이다. 감사하게도, 지난 학기 학점과 등수가 큰 폭으로 급상승하였다. 이번 학기에는 매 수업의 출결과 과제, 시험에 더더욱 열심히 임하고 싶어졌다.


그런데, 지금까지 언급한 공부가 나에게 ‘진정한’ 의미의 공부였을까? 시험 기간 직전에 열심히 PPT를 외우고 시험이 끝나면 잊어버리는, 과제는 인공지능의 도움을 종종 받으며, 조별활동 및 수업시연은 부담감에 휩싸여 빨리 해치우고 싶어 하는 것을 공부한다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른 학생들과 달리 나는 초등교사가 꿈이 아니었고, 그래서 수업내용이 전혀 흥미롭지 않았으며 공부는 단순 수단이었다.


대학에 와서 내가 공부다운 공부를 하고 있다고 느낄 때는 다음과 같았다. 내가 어떤 학습 내용이나 주제에 관하여 깊은 생각을 하고, 글이나 말로 표현하며,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누군가의 진심 어린 피드백을 받았을 때이다. 대학 교육은 단순히 입출력을 하는 주입식 교육의 연장선에서 벗어나는 면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이 스스로와 세상에 대해 충분한 고찰을 하고, 그들의 인생의 방향을 잡을 수 있도록 돕는 기능을 해야 한다.


대학 공부 외에 공부는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 학생들이 필수적이지 않은 학습을 스스로 자처할 때, 그게 어쩌면 진정한 공부의 의미가 아닐까 한다. 배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동기이다. 내적 동기로 인해 배움의 즐거움을 느끼고, 이를 표현하고 나눌 줄 안다면 그것이 최상의 학습이 아닐까? 꼭 세상살이에 직접적 도움이 안 되더라도 말이다. 예를 들면, 나에게는 오빠가 있는데 시험 성적은 아주 안 좋았고 속히 말해 공부에 뜻이 없었지만, 오빠는 경제/사회/역사/문화 등 다방면에 관심이 많았고 책 읽는 것을 좋아했다. 입시에서 성적은 내가 더 좋았을지 몰라도, 우리가 사는 이 세상 구석구석에 넓고 깊은 관심을 갖고 진심으로 탐구하는 이는 과연 오빠였을 것이다.


나는 현재 토플 시험과 프랑스어를 공부하고 있다. 자아실현의 수단임에도 배움에 진심으로 임하고 학습의 즐거움을 느낀다면, 공부의 의미를 충족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공부 그 자체가 목적이라면, 속도와 방향에는 정답이 없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인간다움’이란, 결함을 인정하고 배우는 삶의 태도이다. 영어로 ‘Imperfect Perfection’이라는 어구가 존재하듯이, 불완전함 그 자체가 인간으로서의 완전함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공부하는 과정에서, 주변 사람을 대하는 데서, 건강하고 성실한 삶을 사는 데에서 우리는 스스로의 결함을 발견하곤 한다. 스스로 자책하고 남과 비교하는 것에서 벗어나 우리 모두가 불완전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타인의 흠을 예리하기 지적하기보다 나 자신의 흠을 돌아보면 좋겠다.


흔히 시험을 위해, 자아실현을 위해, 취미를 위해 기여하는 우리의 시간과 노력을 ‘공부’라고 부르지만, 실은 이러한 불완전한 삶을 인정하고 스스로를 성찰하며 타인의 흠을 보듬어 줄 수 있는 그릇을 키워가는 과정 또한 인생의 공부겠다. 이처럼 끊임없는 배움을 통해, 나이가 들며 내면의 그릇이 차츰 넓어지고 충만해져 긍정적인 영향력을 흘려보낼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지식과 교양은 물론, 겸양의 미덕을 갖춘 어른으로 기억되고 싶다.




출처)http://www.yulgok.or.kr/bbs/board.php?bo_table=books&wr_id=132&page=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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