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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d 채드 Jun 12. 2022

#4. 빛바랜 선명함으로 다시 읽다.

처사랑이라할 수 있을지 모르는 누군가의 소심하지만 세심한 사랑 기억의 색

#1. 오랜 기억의 다시 보


 '우리 지금도 같은 학교..'

 이 짧은 문장을 읽기 전까지는 그건 추억의 한 편에 있었던, 혹은 어쩌면 마음대로 뒤바꿔버린 기억과 상상의 혼합 속에 있 것일 수도 있다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그 어떠한 마음의 움직임을 알아차릴 수는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반경 1km 안에 그 아이가 있다는 사실이,  다섯 해의 시간의 건너뜀을 지나 존재해 있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속은 앞뒤 좌우, 안팎으로 요동을 치면서 알 수 없는 떨림이 심장에서 손끝으로 전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한 번도 못 본 것 같은데'

 그렇게 말하고 다시 추억, 아니 상상 속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이것은 현실인가 아니면 나만의 판타지인가. 나는 어떠한 만남을 혹은 추억 이어가기를 기대하고 있는 걸까.


 '나는.. 저번에 지나가다 학생식당에서 본 것 같아'

 그녀의 말에 나는 그간 지나 내 모습을 꺼내 보려 애썼다. 매일 하루에도 몇 차례 가는 그곳에서의 내 모습을 일일이 다 떠올려 볼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혹시 너무 근사하지 않은 모습으로 지나친 적은 없었나, 애써 기억해 보려 했다.


 '그런데 왜 아는 척 안 했어?'

 '친구들하고 함께 지나가고 있어서..'

 나가는 내 모습을 보았다는 그녀의 말투가 왠지 밝게 들리지 않았다. 분명 글이었지만, 분명 어렴풋이 떠오르는 어린 시절 목소리가 전부이지만, 나는 지금의 그 아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조금은 우울함이 묻어있는 웃음 진 목소리로 얘기하는 것을.  


#2. 빛바램 이어 쓰기

 정확히 열나흘, 간단한 대화를 글로 이어가며 서로의 기억을 맞춰가고, 또 지금 함께하는 캠퍼스의 이야기를 또 맞춰갔다. 그렇게 마음 일부 맞춰져서일까, 오랜 기간의 건너뜀 지나 지금의 친구와 같이 여겨졌다. 아니 그렇게 하고 싶었다. 가장 설레는 부분은 반가움과 기다림이다. 가장 어려운 부분은 대화의 끝에 대한 구상이다. 가장 마음 아픈 건 그 아이의 알 수 없는 슬 목소리 글이다. 몇 번째 날 밤이었을까, 대화를 나누며 그래 좋은 밤, 하며 끝마치는 대화에 언제나와 같이 내일 보자-글로 만나자는 얘기에, 눈앞에 그 아이를 만나볼까, 정말 내일 볼까 하는 생각이 들다. 우리가 본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추억의 색칠? 아니면 이어가기? 새로운 시작? 인연? 어떻게 정의 내리기 어려워서 그 말을 못 하고 있었다.


#3. 두근거림으로 알아채다

 전화를 마쳤다. 나는 그리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나만 들떠있게 된 걸까, 그녀도 들떠있을까? 나만 옷장을 뒤지기 시작한 걸까? 나만 기다림이 시작된 걸까? 알고 싶었다. 물론 그 아이와 만나기로 한 약속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해서 그것이 어떠한 그 아이의 마음의 확인이라 할 수는 없다. 다만, 내 마음은 확인되고 있었다. 특별할 것 하나 없던 하루하루에, 어제와 달리 오늘이 이렇게 가슴이 뛰는 건-실제로 물리적으로 가슴이 쿵쿵 계속 뛰는, 어찌하였던 나의 마음은 막연한 기억에서 반가움을 지나 설레는 기대 넘어가고 있는 것이 맞았다. '그래 그럼 거기서 내일 만나', '응, 너무 떨린다.' 오늘에서 내일로 어떻게 넘어가는지 매초를 느끼며 잠이 들었다.


 '나도 기다리게 되더라.'

 전화 이후 오늘 만남까지, 어떠한 이유였던 어떠한 마음이었던, 기다림이 그 아이에게 있었다는 것은 나의 마음의 뜀이 혼자만의 엇박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아이, 아니 그녀는 이제 추억 속에 있던 모습으로 반 정도 나에게 익숙함으로 다가왔고,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반을 채워서 나의 긴장을 높였다. 멀리 겨우 알아볼 수 있던 교회 성가대 합창단 속에 있던, 그 뒤 조명으로 인해 오로지 그 아이만 보였던 열두살 인생 가장 강렬했던 기억의 그 아이 첫인상과, 한 해 지나 같은 반에서 마주치고 나의 생일 초대에 흔쾌히 응해주던 미소는 여전했다. 그리고 열다섯 해가 지난 지금, 길게 가지런히 찰랑거리는 머릿결과 뽀얀 흰 볼, 그리고 붉으스레 보이는 홍조기, 기다란 손가락과 가는 목은 이제 그 아이가 아닌 그녀로 나에게 새롭게 각인시키기에 충분했다. 아주 전형적으로 옛날 얘기와 그간 지내온 얘기를 통해 서로 불연속으로 그려져 있던 이음새를 다 맞춰가는데 세 번의 만남이 필요했다. 네 번째, 이제는 지금과 내일을 그려가야 하는 것인데 갑자기 머뭇거림이 드러났다. 우리 모두, 둘 사이에 한가운데 그렇게 나타났다. 칠간 이어진 단절이 그 전 열다섯 해 동안의 그것에 이어 붙여질까 마음이 무겁게 내려 붙었다. 그 마음이 한없이 내려갈 수 있다는 것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기에 무작정 그 아이가 살던, 지금은 그녀가 살고 있는 동네로 향했다. '지금 보러 갈게' 한마디 남기고 가는 내 모습은 누가 일으킨 행동인지 알 수 없지만 그렇게 하고 있는 모습이 차창에 비치고 있음을 보고 나는 오히려 안심할 수 있었다. 나의 삶에 그 아이와 그녀의 삶에 이제 어떠한 이음새가 다시 만들어질지 알 수는 없었다. 그리고 도착해서 그녀를 만나 흙먼지에 가려진 어두운 노란 가로등 아래 이어지는 놀이터와 동네 골목 사이의 길을 걸어갔다. 서로 다른 속도와 폭으로 흔들리던 그녀의 오른손과 나의 왼손은, 노란 낡은 가로등을 여섯 개 지나는 동안 그 흔들림이 서로 맞아갔다. 그리고 나의 가슴이 뛰는 소리가 그녀에게 전해지기 전에 나는 그 흔들림 폭에 그녀의 손을 맞췄다. 다시 가로등 여섯 개를 지나는 동안 떨리는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듯한 보드라운 손등을, 다시 돌아오는 여섯 가로등 길에 그녀의 알 수 없는 슬픔을 쥐고 있는 듯한 손을 펼쳐 잡게 된 손바닥, 그리고 놀이터에 다다랐을 때에는 마음과 마음처럼 손가락을 걸어 건너 잡으며 더 견고하게 깍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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