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달할 것 같았지만, 자취 냄새 물씬 나는 신혼일기
2021년 5월, 10여 년 ‘1인 가구’ 생활을 청산했다. 잠만 잘 수 있던 자취방에서 요리도 해먹을 수 있는 부엌을 갖춘 집으로 이사도 갔다. 두 사람이 된 덕분이었다.
커다란 냉장고에 밥솥, 전자레인지, 에어프라이어, 발뮤다 토스트기까지. 집밥 백선생 부럽지 않은 장비도 갖췄다.
그럼에도 내 위장을 채운 건 배달음식이었다. 부엌이 변변치 않아 요리를 해먹지 않았던 게 아니었고, 두 사람이 함께 살다보니 최소주문 금액이 문턱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배달요금은 누워있을 수 있음에 감사하며 기꺼이 지불했다.
6개월 후, 다시 1인 가구가 됐다. 주말 부부가 됐기 때문이다. 습관이 됐는지 처음 몇 번은 배달 앱을 켜 도저히 혼자 먹을 수 없는 양의 음식을 시켰다. 메인요리에 각종 옵션을 추가하거나, 메인요리를 두 개 시키는 방식으로 최소주문금액을 넘겼다. 테이블 가득 점심으로 먹고 저녁으로 또 먹으면 되겠지 싶었는데, 냉장고에 한참 머물다 음식물 쓰레기통으로 가곤 했다.
결국, 한 끼당 2만 원 넘는 금액을 결제하는 호기는 몇 번 안 돼 끝이 났다. 배달앱을 한참 헤매다가도 손가락은 종료 버튼을 눌렀다.
음식을 해먹자 다짐도 해봤다. 다짐만큼 냉장고에 쌓였던 요리재료들은 한 끼만 제 역할을 하고 대부분 음식물 쓰레기로 변했다. 1인 가구에 맞게 소분해서 나온다지만 여전히 1인 가구가 소화하기엔 많은 양이었다.
#. 라면 중독
돌고 돌아 다시 라면이 내 끼니가 됐다. 대학시절 좁은 자취방에서 전기 포트로 끓인 물을 부은 김이 폴폴 나는 컵라면을 먹으며 하루를 나곤 했었는데, 그 시절과 달라진 건 정수기에서 나오는 뜨거운 물 뿐이었다.
가끔 다 귀찮으면 뿌신 생라면에 라면스프를 뿌려 과자처럼 한끼를 때우기도 한다.
그래도 요즘은 컵라면 보다는 되도록이면 봉지라면을 끓여먹으려고 노력한다. 청양고추 2개를 잘라넣고 꽁꽁 언 다진마늘(엄마표)에 후추까지 챡챡 뿌려 먹으면 그날의 피로를 싹 잊게 해주는, 내 입맛에 딱인 라면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렇게 먹다가도 질리면 김치만두를 넣어 먹으면 또 다른 맛이 난다.
라면에 변주를 주면서 먹다보니 결혼한 지 1년이 지났는데도 에어프라이어, 밥솥은 아직 포장도 뜯지 못 하고 있다.
주말에 근무지에서 올라온 남편은 부엌 한 켠에 잔뜩 쌓인 컵라면과 라면 봉지 잔해를 보며 "어찌 자취할 때로 돌아간 것 같다. 그쯤 되면 라면 중독"이라고 경고하지만, 어쩌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