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혼한 10가지 이유 _ 궁합
시어머니에 대한 글을 읽었다.
시어머니.. 불편한 말이지만, 전처럼 끌어 오르거나 눈물이 맺히진 않았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코로나에만 해당하는 말은 아니다. 거리를 두니 밉지 않다.
이혼하고 가장 좋았던 건 시댁이 없어진 것이었다. 정확히는 더 이상 나에겐 시어머니가 없다.
시어머니 없는 내가 현실이 되었을 때 "휴우." 한숨이 나왔다. 속이 후련해서도 아니었고, 마음이 여전히 갑갑해서도 아니었다. 그냥 지난 내 시간에 대한 위로 정도였을까...
연애가 시작될 무렵 데이트 중에 남자 친구는 집에 잠시 가야 한다고 했다. 가지러 갈 게 있다는 남자 친구의 말을 그대로 믿고 집 앞까지만 가기로 했었다. 우리를 기다리는 지인이 차에 앉아 있었고, 물건만 가지고 나오는 거라면 오래 걸리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잠깐 같이 들어가자는 말에 잠시 망설였지만, 집에 아무도 없다고 하니 마음이 흔들렸다.
하지만 집에는 아버님이 계셨다. 곧이어 시어머니도 급히 돌아오셨다. 낮잠을 주무시다 깬 잠옷을 입은 아버님과 목욕을 하다 말고 오셨다는 어머님. 그렇게 만난 지 채 2달이 안된 남자 친구의 부모님을 갑자기 만나게 되었다.
그날 여자 친구를 집에 꼭 데려가야 했던 그 남자에겐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시어머니는 아들 자랑이 즐거움이었는데, 그중 하나는 우리 아들은 참 착하다는 거였다. 어찌나 착한지 마음에 드는 아가씨가 있으면 꼭 친구들과 함께 집에 놀러 올 일을 만들고, 엄마에게 먼저 물었다는 것이었다. 엄마가 별로라고 하면 사귀지 않았다고 한다.
젠장.
그놈의 아들 자랑을 수차례 들으면서 '그중 하나가 나였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어머! 나 선택받은 여자야? 시어머니 면접을 (면접 인지도 모른 채) 통과했던 나는 헤어짐을 당하지 않았고, 3년 뒤 그 착한 남자와 결혼을 했다.
나의 결혼은 참 재미있는 이벤트가 많았는데, 그중 하나는 '궁합'이다. 결혼 전 궁합을 확인하는 일은 흔한 일이고,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에 대한 해석하는 이의 태도와 듣는 사람의 심리 상태에 문제만 없다면 말이다. 우리의 궁합은 이러했다.
1) 둘이 살면 매우 시끄럽고,
2) 집에 큰일이 생길 것이며,
3)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궁합은 좋다.
...... 어느 절의 스님이 봐주셨다는 이 궁합은 - 하나는 맞고, 하나는 어이없고, 하나는 틀렸다.
먼저 '둘이 살면 매우 시끄럽다.'는 맞다. 우린 결혼 전에도 자주 싸우곤 했는데, 여동생은 우리가 결혼까지 하는 것에 대해 적잖이 놀랐다고 한다. 결혼 후엔 나아질 줄 알았던 건 오로지 나만의 환상이었다. '2. 집에 큰일이 생긴다.'라니. 대체 그 스님 한 번 만나고 싶다. 원래 살다 보면 크고 작은 일은 당연히 생긴다. 그걸 궁합 탓으로 만들어 버리는 대단하신 분이다. '3.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궁합은 좋다.'는 아주 틀렸다.
절대로 아들 데리고 살 생각이 없다던 시어머니는 교묘한 수를 써서 우리를 아래층에 주저앉혔고, 언제든 들어올 수 있도록 문을 잠그지 못하게 했다. 말도 안 되는 요구를 남편은 당연하게 생각했고, 우리 엄마가 불편하냐며 오히려 나를 이상하게 생각했다.
이 시점에서 잠시, 아빠에게 원망의 쪼꼬미 화살을 하나 날려 드리고 싶다.
"아빠! 난 아빠 말이면 무조건 따랐는데! 어른들 말씀엔 무조건 네~라고 하라며! 그래서 내가 저런 어이없는 상황에도 좋은 척하고 있었잖아!!"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불편하냐고? 당연한 거 아닌가. 본인은 너무 안 불편해서 장인 장모님이 오든 말든 침대와 한 몸이 되어 있었는지 몰라도. 그래도 인사는 일어나서 해야 하는 거 아닌지? 우리 부모님이 오셔도 방에 누워 있다가 인사마저도 침대에서 하던 쿨한 남자 씨, 미안하지만 난 하나도 편하지 않았어요.
먼 친척 하나 없는 곳으로 시집와서, 나만의 공간도 없는 신혼집에서 나는 한없이 약해져 갔다. 무엇이 옳은 일인지 이상한 일인지 판단할 수 없었고, 그저 나도 괜찮은 척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중 가장 힘들었던 건 무슨 일만 생기면 궁합 탓을 하는 것이었는데, 첫째 아이의 이마에 상처가 있었을 때에도, 시누이가 세상을 떠났을 때에도 모든 건 내 탓이었다.
결혼 10년 차 정도 되던 어느 날 가족 외식을 하던 날이다. 어느 작가님의 말대로 시댁 돈으로 외식을 하려면 대가가 있기 마련이고, 굳이 왜 그 고깃집이어야 하는지 이해는 안 되지만 일단 가서 조용히 고기를 입에 넣고 있었다. 둘째 아이가 할머니에게 묻는다.
"할머니, 언니 이마에 상처는 왜 있는 거야?"
"어~ 엄마 때문에 그래. 엄마가 나쁜 사람이라서 그래."
고기가 명치에 콱 박힌 기분이 들어도 아무 말 못 하고 고기만 씹고 있었다. 에효, 또 시작인가. 시어머니는 엄마가 왜 나쁜 사람인지 친절히 설명하신다.
"언니 태어나기 전에 벽에 못질을 해서 그래. 손 없는 날 해야 하는데 아무 날에나 막 해서"
나도 모르게 한숨이 터져 나왔다. 하아...
남편이 눈치를 보며 편을 들었다.
"엄마! 고만해라 얘 한숨 쉬잖아!"
"어머~ 내가 뭐라고 했다고 한숨을 쉬냐? 무슨 말도 못 하겠네!!"
"못질은 내가 했는데! 그럼 내 탓이지, 왜 얘 잘못인데?"
"그거야 부부는 일심동체니까 며느리 잘못이지!"
거짓말 같은 이야기가 매일 일어났다. 처음엔 궁합 탓이던 일이 부부는 일심동체 탓이 되었다. 엄마가 건강하고 행복해야 자식들도 행복할 수 있다던가. 전남편의 말 줄 가장 슬펐던 말은 이혼 얼마 전까지 했던 "그래도 그런 시어머니 없다."는 말이었다. 악담을 하고 막말을 늘어놓아도 좋은 분이시라는 건 우리에게 준 돈이 많아서인가.
가장 가슴아프고 지금도 용서가 안되는 말은, 궁합 때문에 시누이가 죽었다는 거다. 20년 가까이 시간이 흐른 지금도 너무 아프다. 막말을 꺼내놓으실 때 말머리에 꼭 붙이시던 "내가 이런 말 할 건 아니지만, "이라는 말도 야속하다. 딸 같아서 편하게 말했다는 그 말에 다시 한번 묻고 싶다. 정말 세상 어느 엄마가 딸에게 너 때문에 누군가 죽었다고 말할 수 있느냐고.
대체 누가 누구의 미래를 결정한단 말인가. 미래는 오늘의 내가 만들어 가는 것이다. 관계에 확신이 없는 이들이 불안한 마음을 달래려 알아보는 것이 궁합이다. 좋은 말을 들으면 안심하고, 나쁜 말을 들으면 이별을 고민하는 바보들을 위한 속임수다.
20년 가까이 다른 삶을 살아온 두 남녀가 완벽히 잘 맞는다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안 맞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다른 점을 인정하고 함께 잘 살아갈 방법을 찾는 것과 한쪽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를 만든다. 내가 생각하는 궁합은 두 사람의 서로에 대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두 사람의 미래를 예견하는데 서로 존중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느냐가 핵심이기 때문이다.
양쪽 모두 상대를 존중한다면 그 두 사람의 궁합은 정말 좋은 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