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혼한 10가지 이유 _ 거짓말
그 사람을 만나고 두 달이 지날 무렵 엄마의 촉이 발동했다.
"너~ 요즘 이상한데? 남자 친구 생긴 거 아냐?"
"헙!"
놀란 나는 입을 열지 못했고, 엄마는 훗 하고 웃으셨다. 이런. 걸렸네.
엄마는 뭐가 재밌는지 싱글벙글 웃으셨다.
'이상하네. 이런 건 우리 집 분위기가 아닌데...'
나는 어색한 솔 샵의 톤으로 겨우 말을 내뱉었는데, 사람이 당황하면 지렁이처럼 꿈틀 하는 모양이다.
"어! 왜! 다른 집은 남자 친구 생기면! 머! 불러서 밥도 준다는데! 우리 집은 왜 이래!"
밥 안 준다고 한 사람도 없고, 왜 연애하냐고 다그친 사람도 없는데, 혼자 너무 갔다. 의외의 격앙된 목소리에 엄마는 한번 보자고 하셨다. 역시 이상하다. 우리 집 분위기가 절대 아니다. 과 선배 오빠의 전화도 지나치게 경계하는 우리 집 아니던가 말이다.
당시 나는 7살 많은 남자와 썸을 지나 막 연애를 시작하는 중이었다. 내가 살 던 곳과 5시간 떨어진 저~ 남쪽 나라 어딘가에서 사업을 한다는 아저씨는 사장님 답게 자유롭게 서울을 오갈 수 있었다. 주로 버스를 이용해 올라왔고, 한번 오면 3일 정도 지내다 돌아가곤 했다.
처음으로 집에 바래다주던 날, 결혼하면 무엇을 해 주며 살아갈지를 설계하던 남자를 나는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마음이 갔다. 늘 망설이고 생각이 많은 나와는 다른 사람. 이 사람이 나를 구원해 주고 건강한 사람으로 만들어 줄 것 같았다.
엄마가 우리의 만남을 알게 된 얼마 후, 엄마는 만나고 있는 남자의 신상을 탈탈 털어낼 기세였다. 호구 조사에 이어 부모님에 관한 것, 무슨 일을 하는지. 그리고 생년월일과 태어난 시를 받아 적는 엄마는 행복해 보이기까지 했다.
남자 친구에게 태어난 시를 물어보았다. 목소리에 머뭇거림이 묻어 있다.
"왜?"
"내가 호적엔 2살 어리다."
분명 이어진 변명이 있었을 텐데,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은 늘 자체 편집을 한다. 나는 그 사람의 나이를 그날 제대로 알게 되었고, 실망을 감추려 애썼다. 앞으로 같은 일이 반복될 것 같은 불안을 덮었다. 진짜 생일이 따로 있는 사람은 어디나 있으니까.
7살 많은 줄 알았던 그 사람은 나와 5살 차이다. 오히려 더 좋은 건가? 정신승리를 시전해 본다.
우리는 자주 볼 수 없었다. 서울에 살던 나와 경상도 어느 곳에 살던 그 사람은 주로 서울에서 만났는데, 버스를 타고 왔다. 우리는 택시를 이용해 데이트를 했는데, 서울에서 택시 타기란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무엇보다 소풍 한 번을 가지 못하는 점이 아쉬웠다.
다음엔 차를 가져오면 어떻겠냐는 물음에 그는 운전을 할 수 없다고 했다. 음주 사고가 있었고, 그 일로 면허가 취소되었다는 것이다. 그 사고로 한 집의 가장이 사망했고, 매년 그분의 아이들에게 선물을 챙기고 있다고 했다. 가슴이 많이 아프다고 말하는 그 사람을 위로하고 싶었다.
그는 묻지도 않은 자기 차의 브랜드를 말했다. '파이어 버드'라는 이름을 가진 그 차는 헤드라이트가 본넷 위로 귀엽게 올라오는 스포츠카였다. 한 번은 길에 지나가는 차를 가리키며 저 차라고 알려주었다. 면허가 다시 생기면 저 차를 타고 놀러 간다는 생각에 그날이 오기를 빨리 바랐다.
그의 면허는 처음부터 존재한 적이 없다는 사실은 모든 거짓말이 그렇듯 의외의 순간에 밝혀졌다. 시어머니는 늘 외로운 듯 많은 말들을 쉬지 않고 쏟아내는 분이셨는데, 어느 날 식사 자리에서 면허를 아직도 못 따고 있는 아들에게 게으르다며 핀잔을 주셨다.
'어? 내가 방금 들은 게 무슨 말이지? 면허가 없어?'
한 가정의 가장이 죽었다던 그 사고는 아마도 시어머니의 사고를 각색한 듯했다. 면허시험을 본 적도 없다고 했다. 내가 사람을 판단하기를 포기한 건, 내 삶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번째 사랑은 정말 잘해보고 싶었다.
문득 로미오와 줄리엣이 떠오른다. 누가 사랑을 시작하면 목숨 걸고 끝장을 보라고 했던가. 사랑을 책으로 배운 바보는 셰선생님의 가르침대로 거짓말 따윈 쿨하게 덮고 인생을 걸었다.
그는 아이티 쪽 벤처 기업 대표라고 자신을 소개했었다. 사무실이 크진 않지만 직원이 몇 있고, 홈페이지를 제작하는 일이 주 업무라고 했다.
내가 사무실로 전화한 적도 있었는데, 어떻게 이 모든 게 거짓말일 수 있는지 믿기 어려웠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그날 전화를 받은 직원은 피시방 아르바이트생이었다. 사장님은 잠시 자리를 비웠다고 말 한 건 짜인 각본이었다고 한다.
내가 이상하다고 느낀 건 거의 생활 패턴 때문이었다. 한 회사의 사장이라는 사람이 밤새 게임을 하고 낮엔 주로 잠을 잔다는 게 납득이 되지 않았다. 설마 또 거짓말일까. 확인하는 질문이 늘어나자, 결국 그는 거짓말임을 털어놓았다.
작은 중소기업의 대표인 척했던 몇 달 동안 그 사람은 신용카드를 만들지 않는다고 자랑하듯 말했다. 하지만 신용카드를 안 쓰는 게 아니라 못 쓰는 거라면? 직업이 없으면 신용카드 발급이 어려운 법이다.
묻지 않은 말을 먼저 늘어놓거나 반복해 말한다면 거짓말이 아닐까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그는 서울에서 지내는 동안 현금이나 체크카드를 사용했다. 돈이 떨어지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고, 조금 기다리면 누군가 돈을 보내왔다. 이번에도 그는 회사에서 보내는 돈이라는 말을 반복했다.
회사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돈은 누가 보냈을까? 2년 후 여름 후배가 찾아왔다. 전화 한 통에 이체되었던 그 돈은 후배에게 빌린 돈이었다. 2년이 지나도록 그때 빌린 180만 원을 갚지 못하자 후배는 부모님을 찾아온 거였다. 현금서비스를 받아서 그 돈을 대신 갚았다. 얼마 후 아버님께서 현금 서비스했던 금액만큼 나에게 주시면서 일은 마무리되었다.
나이도, 면허도 거짓인 걸 가족들이 알고 있었다. 이제 직업도 가짜라고 말할 순 없었다. 미안했고 부끄러웠다. 회사를 정리했다고 말씀드렸다. 부모님은 눈치챈 것 같았지만 별 다른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돌아보니 20년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수많은 거짓말이 이어졌다. 한 달을 채우지 못하고 새로운 거짓말이 밝혀졌다. 늘 불안했다.
대체 진짜는 머냐고!!
연인 사이에서 거짓말을 하는 경우는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거짓말을 원래 많이 하는 사람'이거나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이다. 그 사람은 내가 무서워서, 나와 싸우기 싫어서 거짓말을 했다. 집요하고 예민한 나의 성격 때문이라고 오히려 화를 냈다. 그리고 그의 말은 죄책감을 심어주었다. 거짓말을 알게 되면 화가 나는 마음 아래에 미안함이 그림자처럼 따라왔다.
그는 나를 '지나치게 예민하고 까다로운 사람'이라고 했다. 남자들은 그들의 세계가 있다는 걸 이해하고, 작은 거짓말 정도는 웃으며 넘길 수 있는 무던함을 요구했다. 특히 냄새에 민감한 나를 경멸했는데, 언젠가 발을 걸어 내 코를 바닥에 뭉게 버리고 싶다고 했던 그의 말은 아직도 참 아프다.
자신의 거짓말에 항상 당당했던 그는 나름의 논리를 가지고 있었다. 거짓말이 반복되면 믿지 못하게 되고 의심하게 될 것을 염려하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자신의 거짓말은 그 누구를 다치게 하거나 죽게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누구도 죽게 하지 않으니 괜찮다는 그의 거짓말은 허언증으로 이어졌다. 허세를 넘어 자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말들은 사람들이 나와 나의 가족을 오해하게 만들었다.
어느 날 남편과 친한 형님이 조언을 했다. 어깨의 짐을 나눠 지라는 거였다. 세 집 살림하느라 남편이 너무 힘들다고 했다. 세 집이란 우리 집, 시어머니 집 그리고 친정집이다.
"아니 왜 세 집 살림이에요? 친정에 돈 안 드리는데요. 병원비도 엄마 보험금 받아서 하는데..."
기가 막혔다. 그 후로 부부 모임에 더 이상 나가지 않았다. 우리 집과 시어머니의 생활비를 버느라 힘들다는 말은 그래. 이해한다고 치자!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매달 시댁에 200만 원을 드렸고, 어머니의 차 할부금도 남편이 냈다. 아버님의 사업을 이어받기 위해 사업 대출도 그대로 받아야 했다. 빚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상속받은 상가에서 임대료가 나왔지만 예전처럼 어머니 생활비로 쓰였다.
그런데 우리 집에 뭘 했다고?
엄마는 항암을 시작하기 전까지 매일 아침 6시에 집에 오셨다. 아침을 준비하시고 아이들을 깨워 학교 갈 준비를 시키셨다. 일한답시고 8시까지 자고 일어난 나는 겨우겨우 아이들을 학교까지 태워주고 와서 다시 자기 바빴다. 엄마는 점심때가 다 되어서야 청소를 마치고 장을 보러 가셨다.
아빠 퇴근 전에 저녁을 준비해 놓고는 다시 우리 집에 오셔서, 아이들 간식을 챙기고 저녁을 먹였다. 그렇게 주말도 없이 우리를 돌봐주신 엄마에게 3년간 매달 50만 원을 드렸다. 내가 일해서 드리다가 일을 그만둔 후에 남편에게 대신드리라고 부탁했다. 엄마는 그 돈을 받지 않았다. 남편도 알고 있었다.
아빠는 사위한테 빌붙어먹는다는 소리 들을까 걱정되어 우리 집에 자주 오지도 않으셨다. 무슨 그런 걱정을 하냐고 했었는데, 정말 사람들은 그렇게 보고 있었다. 대체 무슨 말을 하고 다니고 있는 건지 묻고 싶지 않았다. 내 현실이었다. 내 옆의 사람이 바로 보이기 시작했다.
철없는 아이들 사이에도 규칙이란 게 있다. '가족은 건드리는 게 아니다.' 처음 암 검사하던 며칠 동안의 병원비 90만 원을 내 카드로 결제했었지만, 엄마는 보험금을 받자마자 그 돈을 돌려주셨다. 결국 엄마의 항암 기간 동안 내가 쓴 돈은 가끔 시켜드렸던 냉면 값 정도다. 어디서 처가댁 모시느라 힘들다는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넌 아웃이야!
두 사람이 관계를 맺으면 눈에 보이지 않는 고리가 하나씩 생겨 둘을 연결하는 것 같다. 사랑, 믿음, 존중의 고리가 걸린다. 고리에 연결된 관계는 서로 멀어지기 어렵다. 설령 한쪽이 다른 쪽을 실망시킨다고 해도 바로 고리가 사라지진 않는다.
관계가 끝나면 고리를 풀고 서로 멀어지게 된다. 이별 뒤에 가슴이 뻥 뚫린 것 같은 이유는 고리가 걸렸던 그 자리에 바람이 지나기 때문이다. 고리를 풀기 전에 끊어져 버린다면 고리는 그 자리에 남게 된다. 잘린 고리를 보면 아픈 기억이 떠오르겠지만, 시리진 않다. 남겨진 고리가 구멍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
고리가 잘린 두 사람은 아프지 않게 반대의 방향으로 걷는다. 잘린 고리를 그 자리에 걸어둔 채 살아간다. 남겨진 고리 조각이 거슬리지만, 나쁘지만은 않다. 새로운 고리를 연결해야 할 때 한층 신중하게 결정하도록 도와줄 것이다.
그리고, 상처가 잘 아물면, 그 때 조심히 빼려고 한다. 더 튼튼하고 예쁜 고리가 걸릴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