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혼한 10가지 이유_시어머니(1)
가스라이팅 gaslighting 이란,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그 사람을 통제하기 쉬운 상태로 만드는 행위로, 연극 <가스등(Gas Light)>(1938)에서 유래된 용어이다. 가스 라이팅은 주로 친밀한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나르시시스트인 부모가 끊임없이 자녀를 가스 라이팅 하면 그 자녀는 무기력과 회피를 학습하게 된다.
나르시시스트와 가스라이팅을 소재로 하는 강연과 영상들이 쏟아져 나올 무렵, 나는 내 결혼이 왜 이렇게 힘든지 알 수 있었다. '힘들다'는 표현보다는 '이해할 수 없다'가 더 정확하겠다.
20년 가까운 결혼 생활 동안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것 중 하나는 자녀의 성장을 인정하지 않는 시어머니의 태도였다. 마흔을 넘긴 아들이 가구나 가전제품을 상의 없이 고르고 구입한 것에 대해 왜 그렇게 분노했는지에 대한 의문도 자연스럽게 해결되었다.
내가 결혼이라는 제도를 거부하게 된 건 한국이라는 문화적 특성 때문이기도 하다. 결혼으로 만들어진 새로운 가족관계에서 유독 며느리의 효도를 강요하고, 시어머니들은 대접받는 걸 당연하게 생각한다. 지금은 많이 달라진 것 같지만, 20년 전의 라떼 시절의 분위기는 매우 불공평했다.
문제는 나 또한 그때 사람이어서, 그 문화를 따르려고 노력했고 상처받았다는 것이다. 엄마와 만나지 않을 방법을 찾아보자던 제안은 매력적이지 않았다. 애틋한 부모 자식 사이를 갈라놓고 싶지 않았다. 그보단 0촌의 관계를 되돌리는 게 남은 시간을 행복하게 사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신민아가 연기한 선아는 우울증을 앓고 있다. 선아가 우울을 느끼는 기분을 표현하기 위해 온 몸이 물처럼 흘러내리는 장면을 보면서 무심코 입을 열었다.
"아.. 저런 기분이구나. 난 혈관에 독이 퍼지는 기분이야."
강한 통제를 받는다는 느낌과 나의 어떤 말도 영향력을 가질 수 없다는 무기력함을 느낄 때 나는 온몸에 독가스가 퍼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지나친 긴장으로 혈관이 수축되기 때문인지 다른 이유가 있는지 모른다. 가스실에 갇혀 독가스가 온몸에 퍼져 죽어가는 나를 떠올리곤 했다.
결혼생활 내내 나르시시스트의 가스라이팅에 저항하며 우울과 무기력을 경험했다. 내 편이 되어 주어야 할 단 한 사람은 저항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자신의 생각이라 여기는 많은 것들이 실은 엄마의 의견이거나 인터넷 댓글의 내용이었다. 스스로 생각하는 건 오늘 저녁 누구와 한 잔 할까를 고르는 정도?
내 의견을 반박하기 위한 그의 단골 멘트 "너희 시어머니에게 물어볼까?"는 나의 전투력을 0으로 만들었다. 시어머니가 무서워서가 아니다. 부부의 대수롭지 않은 문제까지 엄마에게 물어보자는 태도에 실망했고, 엄마가 옳다면 반드시 그렇다고 생각하는 믿음을 꺾을 자신도 없었다.
무기력함은 전염성이 강하다. 그들에게 물들어 가며 나는 삶의 소중함을 잊었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했다. 뭔가 잘 못 되어 가고 있다고 느끼기 시작한 건 엄마가 이곳으로 이사 온 후였다. 다시 엄마와 지내보지 않았다면 나는 아직도 이상함을 정상이라 믿은 채 살고 있었을 것이다.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이 함께 있다는 건 엄청난 용기를 얻게 해 준다. 엄마는 감았던 눈을 뜰 수 있도록 나의 자존감을 찾아 주셨다. 나는 알아챘고, 고민했고, 시어머니와 헤어지기로 했다..
나르시시스트와의 이별 후 나는 진짜 나로 살아가고 있다. 나는 나를 사랑하고. 오늘이 재밌다.
내가 경험한 나르시시스트의 말과 행동을 공유한다. 주변의 누군가 이런 행동을 하거나 낌새를 보인다면, 즉시 도망쳐야 한다.
도망쳐! 지금 당장!!
#1. 나르시시스트 엄마는 자녀와 자신을 동일시하고 부모가 원하는 데로 살아가기를 바란다.
결혼 준비를 하며 이상하게 신경 쓰였던 한 가지는 지나치게 신나 보이던 시어머니의 모습이었다. 마치 자신의 결혼식을 준비하듯 즐거워 보였고, 심지어 친정엄마의 역할까지 하고 싶어 했다.
가슴에 비수를 꽂는 말 앞에 "내가 이런 말 할 건 아니지만.."을 붙이듯 "이건 원래 친정 엄마가 준비해주는 거라고 하던데 내가 하고 싶어서.."라며 이불을 잔뜩 사 오셨다. 친척 어른들에게 드리는 답례 이불과 시할머니와 시외할머니께 드린다는 침구 세트였다.
신혼살림도 사지 말라고 하시며, 평소 백화점 사은품으로 받아 두었던 그릇과 냄비를 꺼내 놓으셨는데, 아가씨 결혼시킬 때 쓰려고 모아두었다고 하셨다. 결국 내가 고를 수 있었던 건 다이소에서 산 컵 정도였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돈 한 푼 모아두지 않고 부모님의 전적인 도움으로 결혼을 준비했던 우리는 시댁에서 작은 아파트를 마련해 주기로 되어있었다. 당시 25평 아파트는 1억 정도 했는데, 5천만 원을 지원해 주신다고 하셨고, 시댁과 같은 동네의 아파트 몇 곳을 둘러보았다.
그렇게 집을 보기 시작한 지 2주 정도 지난 어느 날, 어머니는 갑자기 땅을 사셨다. 시댁은 2층 주택이었는데, 1층에 전세를 빼고 그곳에 들어와 잠시 살라는 말씀이셨다. 이게 뭐지, 25평 아파트에 맞춰 구매한 가구며, 전자제품 등을 어디에 두어야 할 지도 문제였지만, 시댁이 바로 위층에 있을 수 있다는 점이 걱정스러웠다.
지금의 나라면 결혼을 미루더라도 그 집에 들어가는 선택을 하진 않을 테지만, 그때의 나는 싫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아파트 정도는 해 주셔야 결혼하겠다고 말하는 속물이 되는 것 같았다. 게다가 그 돈은 우리 돈도 아니니까 억울할 것도 없었다.
갈등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던 나는 1주일 정도를 혼자 울었다. 그리고 조금 불편하겠지만 예쁜 집에서 잘 살면 된다고 나를 설득했다. 아이들이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을 받으면서 자라는 건 정말 좋은 일이니까 장점이 더 많을 거라고 믿었다.
집을 손 보는 일은 순탄하지 않았다. 페인트를 새로 칠해야 했는데, 오래된 주택은 벽이 나무로 되어 있어 전체적인 색감이 어두웠다. 몰딩을 화이트로 칠하기로 했다. 유행하던 엔틱 가구로 구매했던 터라 가구와 톤을 맞추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페인트는 9시부터 시작하기로 되어 있었다. 9시 반이 채 되기 전에 도착한 집은 10년쯤 유행이 지난 민트 컬러로 칠해지는 중이었다. 얘기한 색과 다른 컬러를 칠하고 있는 페인트공에게 물어보니 시어머니가 화이트 페인트 통에 그린 컬러를 부어버리고 가셨다는 거다.
어머니는 그 후로도 알이 왕만 한 본인 취향의 반지 세트를 2천만 원어치 사셨다. 그냥 돈으로 주시거나, 다이아 알을 키워 한 세트를 사주셨다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머든 주시는 게 어디냐 감사히 받았다. 토파즈라는 노란 파란 보석들은 나중에 팔려고 했을 땐 0원이었다.
어머니의 신나는 신혼집 꾸미기는 욕실에서 정점을 찍었다. 어머니는 핑크색 욕조와 핑크 세숫대야, 핑크 바가지, 핑크 욕실의자, 핑크 비누 받침대를 사 오셨다. 놀라운 건, 이 모든 걸 분명 같이 고르러 가자고 하셨고, 무슨 색으로 할 건지 물어보셨지만 갑자기 혼자 가셨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손녀가 태어나자 엄마가 된 듯 기뻐하셨다. 엄청난 양의 미역국을 끓여 다 먹기를 강요하셨다. 젖을 충분히 먹었다 싶으면 얼른 아이를 데려가 트림을 시키셨다. 기저귀 가는 것도 목욕을 시키는 것도 어머니가 하셨다. 출산 후에 나는 커다란 우유통이 된 기분이었다.
#2. 나르시시스트 엄마는 끊임없이 지적하고 가르친다. 삶의 지혜란 부모만 줄 수 있는 것이며, 나무라는 방법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나르시시스트 (자기애성 성격장애)와 가까이 지내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그들의 무례하고 무지한 행동을 이해하고 참아준다 해도 그들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자신이 이상한지 모르기 때문이다. 계속 참아야 하는 쪽은 우울해 진다.
그들은 스스로를 특별하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의견은 항상 옳다고 강하게 믿는다. 이들은 최고가 되기 위해 주변인을 깎아내리는 전략을 사용한다. 끊임없는 지적과 훈계로 상대의 가치를 끌어나린다. 가스라이팅이다.
어머니는 입버릇처럼 사람은 아래를 보고 살아야 한다고 했다. 나는 이 말을 높은 곳만 바라보고 살면 작은 행복을 놓칠 수 있다는 말로 해석했다. 삶을 소중하게 대하는 그 말씀에 존경심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 말은 전혀 다른 의미였다. 결국 자신을 가장 위에 주변에 자기보다 부족한 사람만 두겠다는 뜻이었다. 어머니는 내가 얼마나 부족한 지,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지 세뇌하는 데 온 힘을 썼다.
결혼 생활 내내 칭찬받은 기억은 없고, 항상 "네가 잘 몰라서 그런다. 사실은 이 방법이 더 좋다."는 지적이 뒤따랐다.
어머니는 육아 부분에서도 지나치다 싶을 만큼 간섭을 하셨다. 아이가 돌이 지날 때까지 목욕은 어머니가 맡아서 하셨다. 이유는 간단하다. 겨우 스물여섯인 며느리는 아기를 물에 빠뜨려 죽일 수 있다는 염려 때문이었다. 손녀를 사랑하는 마음이 지나치신 정도라고 생각한 나는 목욕물을 준비하고 어머니를 모시러 갔다.
우리 집엔 에프킬라가 없다. 어머니는 매일 밤 집에 오셔서 모든 창문을 닫고 에프킬라를 온 집안에 뿌리셨다. 아기를 모기로부터 지키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하셨다. 이러다 우리 아기가 먼저 죽을까 봐 늘 걱정이었지만 멍하니 앉아 그 모습을 지켜볼 뿐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창을 열어 환기를 시키는 것이었다.
아이가 7살 때였던가, 머리를 단발로 자른 일이 있다. 나는 예쁜 머리를 왜 잘랐냐는 말을 수 백번 들어야 했다. 중학교 가면 단발머리를 할 텐데 왜 굳이 지금 단발을 했냐고 혼내시는 어머니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이는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긴 머리로 지냈다.
'저.. 저기요 어머니. 요즘 두발 자유예요..'
어머니는 첫째가 5살이 되자 피아노 학원을 언제 보낼 건지 매일 물어보셨다. 나는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에 보내려고 한다고 말씀드렸다. 어느 날 어머니는 목욕탕에서 어느 피아노 학원 원장님을 만나고 돈을 입금했다. 딸은 7살에 피아노를 시작했다.
엄마가 처음 된 나는 새로운 정보를 찾아보거나, 책을 읽으며 도움을 받았다. 어머닌 사람들에게 며느리의 육아 방식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다. 애가 뭘 잘 몰라서 책에서 본 그대로 하려고 한다고 한심해하셨다. 어머니가 웃을 때 같이 웃고 있는 내가 정말 한심했다. 젊은 애들이 더 잘한다고 편들어주시던 큰어머니의 말씀에 코끝이 시렸다.
"어머니 저 그렇게 한심한 사람 아니에요."라고 말하고 싶었다. 문득 '아마 사십이 되면?'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사십 정도면 우리도 어른이라고 인정해 주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오로지 나만의 생각이었다.
#3. 나르시시스트는 질투가 많다. 또한 타인도 '너무 잘난' 자신을 질투할 거라고 믿는다.
결혼 후 어머니는 '좋은 시어머니'라면 할 법한 일들을 시작하셨다. 딸보다 며느리가 더 예쁘다는 말씀을 달고 사셨고, 며느리 칭찬을 늘어놓으셨다. 집 안팎의 모습이 현저히 다른 전형적인 나르시시스트의 모습이었다.
어머니는 쇼핑을 가면 며느리 선물을 꼭 챙기셨다. 조금 이상한 점은 20대 중반인 며느리가 너무 어려 보이는 걸 걱정하셔서 50대인 어머니 옷을 사는 브랜드에서 며느리 옷을 같이 산다는 점이었다. 심지어 55를 입는 며느리를 위해 66 사이즈를 사 오시고는 '너를 위해'서라고 하셨다.
나르시시스트는 자식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놀라운 것은 자식의 자식에게까지 그 집착이 이어진다는 점이다. 아이들을 키워주셨던 어머니는 아이들이 엄마보다 할머니를 더 사랑할 거라고 믿으셨다.
아이들은 일하는 엄마와 함께 하는 시간이 되면 말이 많아졌다. 유치원에서 있었던 일을 엄마에게 다 알려주고 싶어 했다. 어느 날 외식 자리에서 둘째가 엄마 옆에 바짝 붙어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보통 이런 경우 우리 엄마는 엄마 껌딱지 같은 손주와 딸이 너무 예뻐 눈에 사랑을 가득 담고 흐뭇해하셨다. 그런데 그날의 어머닌 매우 화가 나신 듯했다.
"흥! 할머니 삐졌다!"
오잉? 저 말에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랐다. 어떤 표정을 지어도 될지 몰랐다고 해야 더 맞겠다. 어머닌 할머니보다 엄마와 더 친한 것에 삐졌다고 말하고 있었다. 5살짜리 아이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이는 계속 엄마에게 말을 걸었고, 할머니는 역정을 내셨다.
"그만 말해라! 양반은 밥 먹을 때 말하면서 먹는 거 아니다!"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말을 너무 많이 하느라 사람들이 다 먹은 후에 혼자 식사를 마무리해야 하는 어머니 아니었나. 그리고 양반이라니!!
식사는 어색한 분위기 속에 이어졌다. 엄마랑 이야기한다는 이유로 아이는 혼났다. 혼난 아이는 시무룩해졌다. 나는 아이를 달래고 조용히 밥을 먹었다.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간다면 아이에게 사과하고 싶다. "넌 잘못하지 않았어, "라고 말해주러 가고 싶다.
종종 당황스러운 언행을 일삼는 어머니에게 남편도, 아버님도 어머니의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말하지 않았다. 나는 무표정의 가면을 쓴 채 경멸을 마음속 깊이 숨겼다.
#4. 타인으로부터 관심과 인정을 받고 싶어 한다. 이들은 모든 사람의 관심이 자신에게 쏠려 있기를 바란다.
어머닌 요리를 잘하셨다. 내가 놀러 가는 날이면 상다리가 부러질 만큼 맛있는 음식을 준비해 주셨다. 아들의 여자 친구를 반겨주시는 따뜻한 분이라고 생각했다. 이 부분을 단지 나르시시스트의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위한 과시였다고 치부하고 싶진 않다.
어머닌 초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했다고 했다. 사람들이 자신을 무시할까 봐 늘 걱정이라고 하셨다. 술에 많이 취한 날 "너도 나를 무시하니?"라고 여러 번 물으셨다. '어머니께서 이런 생활을 계속 이어가신다면 그렇게 될 수도요.'라고 생각하고 "아니요!"라고 대답했다.
인정 욕구는 누구나 갖는 기본 욕구이다. 나르시시스트들의 인정 욕구는 '나만 최고'가 되어야 하는 특징이 있다. 가족여행에서 있었던 일이다. 이모님의 시어머니께서 담가주신 장아찌가 인기였다. 시어머니의 반찬이란 걸 안 사람들은 칭찬을 이어나갔다. 실제로 정말 맛있었다.
다른 사람의 반찬에 칭찬이 이어지자, 어머니는 매우 불쾌한 감정을 드러냈다. 이모님께 같은 반찬을 만들어 주겠다고 여러 번 말씀하셨다. 그리고 결국 화를 내셨다. 그 반찬이 그렇게 맛있으면 앞으로 나는 해주지 않겠다고 역정을 내시며 기분 상했음을 드러내셨다.
그리고 몇 초의 정적. 모두가 불편했지만 아무 일 없는 척했다. 우린 무엇이 두려웠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