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산책에 나서다
산책을 나서는 것도 결심이 필요하다니. 거의 10년간 소소한 일상의 나들이처럼이었는데 고작 몇 개월 공백사이 어색한 발걸음이 되어 버렸다. 즐겨 찾았던 장소가 아픈 기억으로 돌변해 버렸으니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녀석의 갑작스러운 부재는 많은 변화를 불러왔다. 오히려 추억하며 기리는 마음으로 걷자는 딸내미의 선동에 다시 나선 산책은 여전한 죄책감이 가슴을 묵직하게 짓눌렀다. 하루를 걷기로 마무리 지었던 즐거웠던 나날이 아득해졌다.
사실 걷기는 딸내미로 인해 시작되었다. 나는 잠깐의 거리에도 차를 이용할 만큼 걷기를 싫어했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매일 한 시간씩 강 둔치로 나가서 산책을 하자고 했다. 걷기 운동이 한창 붐이었을 때였다. 나처럼 운동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던 터라 이참에 운동을 습관화해 보자며 의기투합이었다. ‘어이, 상쾌함은 이런 거란다.’ 몸이 말을 걸었다. 딸내미는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백기를 흔들었다. 아직은 단조롭고 지루한 것에 대한 재미를 붙일 나이는 아니었으니까.
강 둔치 잔디밭은 전날보다 더 많은 사람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초여름에 접어들었으니 시원한 바람이 활명수이겠다. 몇몇 낯익은 사람들이 둘러서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도 저들의 대열에 합류하지 않았던가. “우리 애는요. 얼마나 말을 잘 알아듣고 착한지 천재라니까요!” 집안에 천재 한 명쯤은 존재한다는 자랑질을 서슴없이 남발하곤 했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수다를 떨어가면서 완전한 동지애로 거듭나곤 했었다. 누군가 지나치는 나를 발견한 모양이다. “어머머, 저분이야. 저분!” 했다. 그들은 나 또한 천재 한 명이라고 치켜세웠던 녀석을 찾는다고 혈안이 되어 있을 때 협조와 걱정을 보내왔다.
어제 만났던 강아지 두 마리를 이끌던 아가씨를 가운데 두고 “어쩜 저렇게 귀엽지.” 한목소리를 냈다. 아마 녀석들의 사연을 듣고는 나를 떠올렸던가 보다. 그들은 나의 비교적 긴 칩거에 안타까워했었다. 까만 솜뭉치 녀석은 어느 사이 딸아이에게 재롱을 부렸다. 나는 그들의 청을 듣기도 전에 먼저 선수를 쳤다.
“얘들 어제 봤어요. 그리고 얘들 사연 다 알아요. 근데, 저는 이제 못해요. 안 할래요.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아요. 이제는 정말 절대….” 간신이 누르고 있던 가슴이 또다시 아리하게 즈몄다. 가슴앓이는 지병이 되려나 보다.
“에구, 그 아픔이 어떤 것인지 저는 알아요. 지금 저도 코코로 인해서 치유되고 있다고.” 이름이 같아서 친해진 코코 엄마가 거들었다. 나는 손사래를 치며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얼른 딸내미를 잡아끌며 그 자리를 빠르게 벗어났다. 두 번 다시 안 본 듯 못 본 듯이…. 내처 걷는 것이 정답일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