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왔니

절대는 소용없지

by 김 미카엘라

“와, 우리 엄마가 강아지를 다 안고 있다니!” 딸내미는 나의 반전을 즐기듯 이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어쩌다 이리됐을꼬.” 삶이란 참 모를 일이다. 나는 동물을 만지기는커녕 가까이 오기라도 하면 손사래까지 쳐댔다. 반면 가족들은 강아지 한 마리쯤 집으로 들이고자 소원했다. 나는 “절대 안 돼.”로 막강한 방어막을 쳤다.



나는 농어촌에서 나고 자랐다. 대부분 집에서 소, 개, 고양이든 가축을 길렀다. 내게만은 환경 동화작용이 통하지 않았을까. 동물들이 무서웠고 싫었다. 거기다 집에서 기르던 개에게 물리기까지 했다. 풍족한 시절이 아니었는데도 어째 쥐들은 많이도 들끓었다. 국가적으로 쥐잡기 운동이 벌어졌으니 말이다. 그 한 방책으로 잘 나다니는 구석에다 쥐약을 섞은 쌀밥으로 덫을 놓았다. 엉뚱하게도 그 밥을 탐한 개들이 쓰러지기 일쑤였다. 사람도 먹기 힘들었던 쌀밥이었으니 오죽 구미가 당겼을까. 더불어 그런 개들에게 물린 사람이 광견병에 걸려 날뛰다 죽었다는 소문이 빙빙 돌았다.

우리 집 개도 그만 쌀밥에 유혹되어 버렸다. 뒷집 아이와 마당 한쪽에서 소꿉놀이하고 있을 때였다. 제대로 짖지도 못하던 순둥이가 눈 깜짝할 사이 나를 덮쳤다. 평소 그리 친하지 않았던 내게라도 살려달라는 안타까운 몸짓이었을까. 몹쓸 쥐약 같으니라고. 나는 꽤 오랫동안 엄마 등에 업혀 가서 등허리에다 주사를 맞았다. 분명 등에 물리지는 않았는데 말이다. 내가 물린 부위와 순둥이의 생사는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 이후에도 우리 집에는 개를 길렀는데 하나같이 순둥이들이었다. 개도 주인의 성품을 닮는다고 했는데 글쎄 반신반의다.

내가 초등학교 사오 학년쯤 여름이 시작될 즈음의 오후 한낮이었다. 햇살이 내리쬐는 마루에 걸터앉아서 마당을 거쳐 대문을 나서는 자전거를 바라보다 나도 모르게 울기 시작했다. “야가 또 씰데없이 와 우노….” 핀잔을 주던 엄마도 눈물을 훔쳤다. 아마 나는 학교를 파하고 집으로 막 들어서던 때였나 보다. 자전거 짐칸 철사로 얼기설기 엮은 케이지에 꼼짝하지 않고 앉아 있는 녀석과 마주쳤다. 어째 몸부림 한 번 치지도 않았을까. 미처 대하지 못했던 그 선하고 처연한 눈빛이라니. 나는 순식간에 충격과 연민에 휩싸여 눈물을 쏟아냈다. 내가 어찌 할 수 없는 슬픔이었다. 그 이후로 우리 집은 더 이상 개를 들이지 않았다. 여전사의 면모를 발휘하던 엄마도 녀석의 모습이 애잔하게 눈에 밟혔던가 보았다.



뭐야, 저 모습은? 토요일 반 근무를 마치고 현관으로 들어서는 남편의 모습에 숨이 딱 목에 걸렸다. 자세를 가다듬을 새도 없었다. 참 기가 막힌다는 것이 이럴 경우겠지. 저건 도대체 뭐야. 강아지 리더 줄 대신 이삿짐 노끈으로 동여매 있었다.

“얘가 말하던 그 돌쇠와 같은 종이야. 이름은 코코야. 월요일 출근할 때 다시 데리고 갈 거야. 나만 보면 우우하고 아는 척을 하는데 어쩌고저쩌고~” 남편은 묻지도 않은 말을 줄줄이 늘어놓았다. 나는 하나도 귀에 들지 않았다.

“어머 얘야! 어서 와. 반갑다.” 며칠째 방문을 걸어 잠근 채로 나의 갱년기를 이겨 먹는 딸이 얼른 나와서 반색이었다. 그러더니 잽싸게 현관문을 나서더니 강아지 용품을 한가득 안고 들어섰다. 그 사이 남편은 목욕탕으로 들어가서 강아지 목욕 재개 중이었다. 뒤이어 축구 시합을 시청하려고 비교적 빠른 귀가를 예정하던 아들이 들어섰다. 그들은 아직 시작도 안 한 월드컵 경기에서 우리나라가 마치 승리한 듯 난리법석이다. 누구 맘대로 저들은 축제를 펼치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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