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경우의 수일까
“있지, 돌쇠가 우리 회사에 왔다.”
“뭔, 돌쇠?” 좀체 전화를 걸어오지 않던 남편은 그날을 시작으로 몇 날 동안 전화에다 대고 일방적으로 강아지 이야기를 펼쳤다. 돌쇠는 한동안 시청률 대박이라던 막장 드라마에 등장했던 강아지 슈나우저의 이름이었다. 우리가 언제 시답잖은 대화를 나눌 만큼의 정서가 있었던가. 그는 내가 생활사의 자잘한 얘기를 꺼낼라치면 “쓸데없는 말은 와 하노!” 단번에 면박이었다. 자기 말만 법이고 진리라는 사고는 어떤 뇌 구조를 가졌을까. 간혹 아주 궁금해진다.
“그래서 어쩌라고요.” 그의 “쓸데없이~” 와 대적을 이루는 대답으로 무관심을 나타냈으나 아랑곳하지 않았다. 나도 만만찮은 한 성격이라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도 이미 알고 있는 터였다. 그와 매번 전화 통화에서 나는 쇠귀였고 그는 개(犬)경을 읽는 꼴이었다.
일상에서의 깨달음은 늘 후회와 함께다. 똑똑한 척, 아는 척은 다 하면서 정작 허구한 날 알게 모르게 속아 넘어 가는 내 삶이라니. 늘 ‘한 번 속지 두 번 속을까.’ 후렴구가 된 지 오래다. 어쩌면 내 뒷머리 모양새가 납작한 한 것은 하도 뒤통수를 맞아서지 않을까. 푸시킨의 명언은 결코 나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 누구에게든 속을 때마다 노(怒)와 애(哀)를 폭발시켜 내 감정 밑천을 고스란히 드러내 버린다.
전날 금요일, 딸아이 담임 선생의 전화 한 통으로 감정의 혼수상태가 되어 헤맸다. 무단결석, 멀쩡히 책가방을 메고 등교할 때 ‘잘 다녀와.’라고 격려하지 않았던가. 속절없는 하루가 저물어 어둠을 몰고 온 지 한참이었다. 먹지도 않은 점심밥이 체한 듯한 속앓이가 계속되면서 가출 신고를 할까? 말까로 망설일 때였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개선장군이 저런 품새일까. 가출자가 될 뻔한 딸아이는 거리낌 없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더니 제 방으로 속 들어가 문을 닫아걸었다. 옛말 하나 그런 거 없다고 했던가. ‘방귀 낀 놈이 성낸다.’ 명언이다. 저런 빤빤한 사춘기를 어쩔까. 저만 질풍노도의 첨단 시대를 걷는다고 나의 무자비한 갱년기를 단숨에 제압시켜 버리는 능력이라니.
하여 오늘 2006년 6월 24일 토요일, 간밤에 치르진 월드컵 환호성의 여운은 발도 못 붙이고 바깥공기로 떠돌다 사라졌다. 청소년 시절 학교 축구 선수로 이름을 날렸다는 남편은 여전히 공 차고 놀고 보는 것을 최애로 삼을 만큼 좋아하는데도 말이다. 나의 화(禍)는 어디서 시작되었을까. 답도 없는 문제를 푸느라 애썼지만 좀처럼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나는 두께 3센티미터 남짓한 닫힌 방문을 깨부술 냥으로 수 시간째 눈에 힘을 주고 있었다. 가뜩이나 허술한 이를 갈 수도 없으니 말이다. 또 거른 아침, 점심시간은 한참이나 지나있었다. 오늘은 저녁을 먹을 수 있으려나. 그때 현관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여태 한 번도 직접 문을 따고 들어 온 적이 없었는데 어쩐 일이래.
어머나 저 품새는 또 뭔고. 한 손에 서류 가방을 들고 다른 한 손엔 이삿짐 싸매는 노끈이 쥐어져 있었다. 그 끈을 따라 눈길을 아래로 내리자 거무칙칙한 털북숭이가 묶어져 있었다.
“얘가 나만 보면 고개를 쳐들고 아는 척을 하는데…. 월요일 출근할 때 다시 데려갈 거야. 신경 쓰지 마라.” 평소 강압적인 불온한 말본새는 감추고 어울리지도 않게 다소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어째 이들의 씨족들은 내 속이 속이 아니기를 바라는 참 특이한 체질들이다. ‘그런 당연한 것을 누가 물어봤냐고.’ 나의 활화산을 폭발시킬 듯한 레이저 눈빛에 그는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이런 경우가 바로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세상에나, 평생 방안에서 칩거할 듯 굴던 딸아이가 벌컥 문을 열고 나와 “와아, 강아지다. 너가 코코구나. 예쁘네!” 그 말을 던지고는 다시 제방으로 들어갔다 나오더니 바로 현관문 밖으로 튀어 나갔다. 그는 바로 가방을 내려놓더니 곧장 강아지을 데리고 욕실로 들어갔다. 세상의 깔끔은 혼자 다 떨고 있으니 당연한 행동이다. 예상대로 목욕재계를 마친 강아지를 우리가 사용하는 새 수건으로 둘둘 말고 나왔다. 내 눈살은 더 찌푸려졌다. 나는 강아지를 키우는 시댁에 다녀올 때마다 입었던 옷과 소지품을 탈탈 털어 세탁을 해대며 까칠하게 난리법석을 떨었었다. 그 사이 딸아이는 모아둔 용돈으로 강아지에게 필요한 물품들을 사 들어섰다. 이 번개 같은 상황은 어쩌면 그들 씨족끼리 계획된 시나리오가 아닐까. 나는 그 부녀의 속전속결로 이뤄지는 꿍 짝에 두 눈 뻔히 뜨고 당하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