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일상이 짜증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무언가 되는 일 없이 허망의 그림자가 엿보일 때도 있지요. 그런 날엔 때로 이미 어둠이 세상천지를 덮어버린 퇴근길 포장마차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며 미미한 생의 존재를 어루만져 볼 때가 있습니다.
무덥고 습습한 여름날, 소주 한 잔을 걸치고 새 둥지만한 보금자리를 들어섰더니 시골에서 어머니가 올라와 계셨습니다.
“훌훌 벗어 제치렴, 내가 등목을 해주마.” “괜찮습니다, 어머니.”
한사코 손사래를 쳤지만 손바닥만 한 목욕탕(사실은 조그만 화장실임)으로 잡아끈 어머니는 사정없이 등판에 물을 퍼붓고는 비누칠을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시원하지?”하며 웃음을 지으시더군요. 사실 아내의 손길만큼 부드럽지는 않았지만 푸근한 손길에 시원한 맛이 그만이었습니다.
그 옛날 첩첩산중 시골에 살던 그 시절엔 학교 수업이 끝나면 집에서 제법 먼 산 아래 밭으로 달려가 일을 거들 때가 많았습니다.
“얘야! 숨차지도 않나? 좀 쉬렴.”어머니는 김을 매다 숨가빠하는 저를 바라보며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말씀하시곤 했지요.
“어머니! 좀 쉬세요. 제가 할게요.”
사실 저보다는 그때 마흔을 갓 넘기신 어머니의 모습은 검게 그을린 얼굴에 잔주름과 가라앉은 목소리마저 피곤한 기색을 더해주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애써 힘든 기색을 감추려 하셨지만 열 살도 넘은 제가 그 힘든 속마음을 모를 리가 없었지요.
“아니다. 오늘 해가 떨어지기 전에 이 밭은 다 마쳐야 한다, 내일은 논에 농약 뿌리는 사람들 밥을 지어주어야 해.”어머님은 좀처럼 쉬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쉬었다 하시는 것이 좋을 텐데.”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일을 거들다 가끔 어머니를 바라보면 우연히도 눈이 마주칠 때가 많았었지요. 그럴 때면 어머니는 아무 말씀도 없이 조용히 웃으시곤 했습니다. 아마도 맏이가 잘 되어야 한다고 형을 서울로 유학(?) 보낸 터에 둘째인 제가 아무 불평 없이 (사실 그것은 숙명이었지만) 일을 거들어 주는 것이 속으로 제법 대견하셨던 듯합니다.
크게 가진 것 없어도 별 걱정 없던 날들, 육신은 지쳐 있었지만 마음만은 풍요와 정이 넘쳐흐르던 날들, 밤이면 앞마당에 멍석 깔고 모깃불 피워놓고 옥수수, 수박 먹으며 이런저런 꿈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시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시원하게 등목을 해 주셨던 어머니의 손길은 언제나 은은하고 사랑 넘치는 그런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날 저녁식사는 정말 별미였습니다. 한동안 잊고 있었던 고향의 맛 그것은 분명 어머니의 솜씨임에 틀림이 없다는 걸 느낄 수가 있었지요. 신선한 풋고추를 굵게 썰어 넣고 돼지고기와 두부, 된장을 풀어 넣은 된장찌개에 밥은 쌀 톨을 찾아보기 힘든 꽁보리밥이었습니다.
아늑한 고향의 향기가 온 방 안에 가득 차올랐지요. 살포시 웃음 띤 어머니의 얼굴은, 어릴 적 별들의 속삭임을 들으며 바라보던 보름달처럼 신비롭기까지 했습니다. 그때 아들 녀석이 “아빠, 이게 무슨 밥이야? 맛이 없어.”하며 찡그린 표정을 지었을 때 일순 당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습니다.
“어머니! 죄송합니다. 이 녀석이 제 맛을 몰라서 그럴 겁니다.”
“괜찮다. 보리밥 맛을 모를 거야. 모르지. 암, 모르고말고.”
유년시절 그토록 많이 먹었던 보리밥. 반찬이라야 된장찌개 풋고추가 고작이었지만 땀 흘리며 정말 맛있게 먹었던 그 옛날의 기억들이 가슴 한구석을 메워왔습니다.
어머니께서 다녀가신 후 며칠 동안은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습니다. 역시 많이 부족한 놈이었구나, 가진 것 없고 보잘 것 없는 놈이면서 분수를 지키지 못하며 살아온 못난이구나 하는 회한이 들었습니다. 가진 것 없기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지요. 그런데도 지난날의 순수함을 잃어버린 저 자신의 모습을 아쉬움과 부끄러운 마음으로 오래도록 바라보았습니다.
한여름이 뜨거운 태양의 열기에 따라 익어가는 날엔 꽁보리밥을 먹던 그날, 아무 말씀도 하지 않고 웃고만 계시던 어머니의 얼굴이 떠오를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면, 어머니가 말없이 던지신 무언의 교훈을 생각해보며 살아가는 이유와 의미를 되새겨보곤 하지요. 그런 날에는 뜬금없이 아내에게 꽁보리밥과 된장찌개를 특별 요리(?)로 부탁하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