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가 가끔 정처 없이 길을 나설 때가 있습니다. 사는 일이 버거울 때나 마음이 갈피를 잡지 못할 때 뜬금없이 외출하는 것이지요. 특별히 정한 곳이 없으니 말 그대로 발길 닿는 대로입니다. 가다 보면 여러 갈래 길을 만납니다. 그때야 비로소 멈추어 서서 지금 가는 곳이 어디인지, 어느 길로 가야 할 것인지 망설이게 되지요. 하지만 이런저런 생각 끝에도 결정을 못 해 다시 무작정 발걸음을 옮기게 됩니다. 그 방황이 땅거미가 몰려올 때까지 이어지기도 하고 한밤 중 별을 만날 때까지 계속되기도 합니다. 이러다 보면 마음 갈피가 잡히곤 하지요.
세상에 길은 많습니다. 좁은 길도 있고 한없이 넓은 바닷길이나 하늘 길도 있지요. 길이 좁다고 생각이 좁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넓은 길을 간다고 생각의 폭이 커지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고즈넉한 오솔길에서 생각이 깊어지고 마음이 넉넉해질 때가 많지요. 그런 길에는 자연 그대로의 원형이 살아 있는 아기자기한 모습의 풍경이 많습니다. 물길을 걷는다고 생각이 물에 잠기는 게 아니고 하늘 길을 날아간다고 생각이 날아가는 게 아니듯 내 마음에 따라 길은 의미가 달라지지요. 궁극적으로 길의 속성은 그런 것입니다.
길 위에 길이 따로 없습니다. 그저 해와 달, 바람을 따라 오늘도 어제처럼 길을 나서는 것이 인생이지요. 계절에 따라 잎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추운 겨울이 오면 또 다른 생명의 싹을 틔우기 위해 ‘눈(雪) 이불’을 덮고 숨을 쉬는 모든 것이 길에 있습니다. 내일 일은 누구도 알 수가 없습니다. 나서지 않으면 모르는 일이지요. 우리나라는 어디를 가든지 ‘제주올레길’만큼이나 아름다운 길이 많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저는 뉘엿뉘엿 해가 넘어갈 무렵이면 산길에 들고 싶은데, 그럴 때면 노을을 안주 삼아 술 한 잔 걸치고 싶은 마음이 불쑥 찾아듭니다. 그렇게 나선 길은 처음 가는 곳이어도 낯설지 않습니다. 철새들이 떼 지어 날아가며 인사를 건네는 어스름한 저녁. 마음이 평온해지고 새삼스레 살아 있음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게 합니다. 길은 생각의 깊이와 넓이를 더해주는 넉넉한 여유로운 공간. 살다 보면 많은 길을 만나지만 세상에서 가장 좋고 넓고 큰 인생길은 내 마음속에 있지요. 그 길을 따라 정성을 다해 살면 되는 것. 아무리 세상이 변해가도 오롯이 내 마음의 길을 따라 사는 게 행복의 지름길입니다
길은 많지만 가야 할 길과 가지 말아야 할 길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저마다의 기준으로 제 갈 길을 찾지만, 가지 말아야 할 길을 가는 바람에 잘못되는 일이 생겨나기도 하지요. 자신의 길은 자신이 선택한 것이므로 그 책임도 자신에게 있다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만인에게 모두 적용할 수 있는 건 아니지요. 세상살이가 정말로 자신의 선택으로 갈 길을 정해 그 길로 갈 수 있게 가정이나 사회나 국가가 구조적으로 완벽하게 뒷받침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틈바구니에서 악마적인 타인의 힘에 눌려 원치 않은 길로 가게 되는 일이 있으니까요. 그런데도 자신이 선택한 길로 걸어갈 수 있게 돕는 집단의 구성원 의식이나 시스템이 자꾸 무너지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픕니다.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올곧은 생각으로 올바른 길을 가도록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해야겠지요. 주변에서도 서로 돕는 수밖에 달리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생각입니다만, 그 또한 간단치 않은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