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 술'은 포장마차가 제격입니다.^^

by 홍승표

1970년대, 고향 면서기로 일할 때입니다. 가끔 회식했는데 두부를 곁들인 돼지고기 김치찌개가 최고의 안주였지요. 어느 날 저녁, 의외로 닭볶음탕이 술안주로 나왔습니다. 여느 술자리에서는 보기 어려운 특식이었으니 눈이 번쩍 뜨였지요. 그런데 회식이 무르익을 즈음 좌장 격인 계장이 갑자기 닭똥집을 누가 먹었느냐고 소리쳤습니다. 일순간 분위기가 싸늘해졌지요. 제가 먹었다고 말하니 그 계장은 물어보고 먹어야지, 그걸 날름 먹어버리면 어떡하느냐며 언짢아했지요. ‘그걸 물어보고 먹어야 하는 건지….’ 나중에야 계장이 가장 좋아하는 안주라는 걸 알고 아차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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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닭볶음탕을 먹을 때 닭똥집은 입에 대지 않았지만, 아무리 계급사회라도 심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는 없었지요. 그러다가 입대했고, 전역 후에는 군청에서 병사업무를 맡았습니다. 입대를 앞둔 장정들의 신체검사와 입영 관련 업무인지라 병무청이 있는 수원에 자주 가야 했는데, 당시만 해도 교통편이 좋지 않아 당일 되돌아오기가 쉽지 않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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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출장이었을 때의 일입니다. 수원역 인근에 숙소를 정하고 저녁에 소주 한잔하러 포장마차에 들어갔다가 깜짝 놀랐지요. 닭똥집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내가 들어간 그곳뿐 아니라 수원역 부근의 포장마차에는 닭똥집이 지천이었지요. 소주 안주로 제격인 데다가 생각보다 비싸지도 않고 입대 전의 ‘닭똥집 사건’도 떠올라 배 터지도록 먹었습니다. 그날 이후 병무청 출장을 손꼽아 기다렸고, 물론 그때마다 포장마차를 제집 드나들 듯했지요.


살다 보면 홀로 있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조용히 책을 읽거나 무작정 길을 걷곤 하지요. 그러나 저녁 무렵, 특히 어둠이 내리는 시간엔 포장마차에 들어 술잔을 기울이는 게 홀로 지낼 수 있는 최고의 순간입니다. 낭만이 깃들어 있는 포장마차를 찾는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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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마시는 술을 ‘혼 술’이라고 줄여 말하는데, 포장마차가 제격입니다. 북적거리다 식당에서 혼자 술 마시는 건 처량해 보일 수도 있고, 주인도 반가워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지요. 아무래도 포장마차는 일반 음식점처럼 환경이나 먹을거리가 정갈한 편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걸 뛰어넘는 색다른 매력이 있지요. 어둠이 짙어질수록 깊이 스며드는 달빛을 등에 지고, 더러는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술잔을 기울이는 운치는 세상 최고입니다. 특히, 한겨울 눈 내리는 날, 어둠이 젖어드는 포장마차는 구름 위 천상에 있는 듯 느껴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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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고락을 술잔에 담아 뜨거운 눈물 한 방울 섞어 마시는 시간, 혼 술의 멋을 아는 이라면 인생의 맛을 아는 사람이지요. 어둠이 스며들 무렵, 상대적으로 백열등이 밝아지면 붉어진 얼굴 위로 달빛이 함께 젖어듭니다. 비우고 비워도 비워지지 않는 것 같아 끝없이 이어지는 술잔 위로 허허한 삶의 굴레가 돌고 또 돌아가지요. 별빛도 졸음을 쏟아내면 뼛속 깊이 박혔던 상처가 하얗게 아물기도 합니다. 비틀거리는 그림자가 골목길을 돌아 집으로 향하는 길, 포장마차에서 달게 마신 술이 가끔 쓰게 느껴져도 그것마저 내 것이 되고. 다시 살맛나는 살가운 세상이 되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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