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캐’라는 신조어가 있습니다. 자신의 캐릭터와 다른 캐릭터로 활동할 때, 부가적인 캐릭터라는 의미에서 이렇게 부르지요. 상대적인 용어로 본래의 캐릭터는 ‘본캐’라고 합니다. 부캐 활동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계층은 연예인이지요. MBC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 하니?〉에 출연한 유재석이 대표적입니다. 그는 가수 진성의 공연에 가면을 쓰고 깜짝 등장해 ‘안동역에서'를 부르며 트로트 가수라는 부캐의 시작을 알렸지요. 진성은 유재석에게 ‘유산슬’이라는 이름을 선물했고, 그의 부캐 예명이 됐습니다. 유산슬은 이후 ‘합정역 5번 출구’를 발표하며 가수활동을 시작했고 ‘사랑의 재개발’로 인기를 이어갔지요. 이 여세로 ‘ MBC 방송연예대상’에서 그는 28년 동안 못 받았던 신인상을 수상하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유산슬 이전, 연예인 ‘부캐’의 원조 격은 크리스마스 캐럴을 불러 ‘개 가수’(개그맨 가수)란 신조어를 낳은 심형래입니다. 그때, “달릴까 말까, 달릴까 말까”라는 캐럴의 한 구절은 지금도 크리스마스에 불릴 정도이지요. 가수 조영남은 한동안 '화투그림 대작(代作)논란'으로 큰 곤혹을 치렀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가 그림 그리는 화가라는 걸 세상에 알린 홍보효과를 보았다는 분석도 있지요. 실제로 조영남 작품은 엽서크기인 호당 가격이 70만 원 넘는다고 합니다. 영화 ‘타짜’의 원작자 만화가 허영만도 요즘에는 ‘백반기행’을 진행하는 방송인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본캐를 위협(?)하는 부캐 인기사례는 꽤 많은데, 안정환과 박세리 등 내로라하는 스포츠 스타의 방송 활동이 그 예이지요. 이만하면 ‘부캐 전성시대’라 할 만합니다.
‘부캐’는 유명인들의 전유물은 아닙니다. 다양한 계층으로 확산되고 있는데 용인시청에서 함께 일했던 배명곤 실장은 은퇴 후 서각명장이 됐지요. 공직생활동안 취미였지만 5년 동안 본격적으로 공부해 한국전통서각예술협회 정회원이 됐는데, 초대작가로 등극하는 기염을 토하더니 ‘대한민국 전통서각 한라명장’까지 올랐습니다. 서각 분야에서 최고의 경지에 이른 것이지요. 그가 일했던 용인시청 옆 용인문화원 전시실에서 작품전도 열었습니다. 그는 이제 전직 공무원이라기보다 서각예술가이자 배 작가로 불리지요. 전직 공무원의 행정영역을 넘어선 의미 있는 ‘부캐’입니다.
수원에서 열린 가수화가 조영남의 작품전시회와 공직자출신 서각명인 배명곤의 작품전시회를 보고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공직 외길 40년을 살아온 것을 후회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은퇴 후에 다른 직업을 가질 주특기가 없다는 것이 아쉬운 일이지요.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무슨 일을 해볼 것인지 고민하고 있기는 합니다. 어쨌거나 부캐 열풍은 연예계를 넘어 사회적 현상으로까지 번지고 있는 게 현실이지요. 잡 코리아 설문조사에 따르면 일반인까지 확산하고 있는 부캐 문화에 대한 긍정적 답변이 65%라고 합니다. 부캐를 갖고 싶어 한다는 것이 시대 트렌드라는 걸 방증(傍證)하는 셈이지요.
또 다른 나로 다른 인생을 살아보는 것은 매력적인 일입니다. 좋은 것을 더 갖고 싶은 건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이지요. 세상이 변하는 것처럼 우리의 꿈과 희망도 변해갑니다. 그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 또한 인생이지요. 한 가지 일에 집착하거나 고집할 필요가 없는 일입니다. 세상에 태어나 한 가지 일만하는 것보다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나’를 꺼내어 새로운 삶을 살면 그게 바로 ‘부캐’가 되는 것이고 삶의 의미와 가치를 더하는 게 아니겠는지요. 부캐는 또 다른 삶의 의욕과 새로운 활력을 줄 것입니다. 새로운 일에 도전한다는 것은 그동안 해온 일에 대한 미련이나 집착에서 벗어나 내안에 있는 또 다른 나를 찾는 일이지요.
‘부캐’가 대세인 세상입니다. “당신은 ‘부캐’가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