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주사! 순대국밥 먹지? 일미 집 가봤어?” “아주 좋아합니다.” “잘됐네! 순대국밥에 소주 한 잔 하자”
너른 고을(廣州) 촌놈이 광주군청에서 일하다 청운의 뜻을 품고 82년 경기도청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함께 일하던 형의 권유로 한 달 남짓 벼락치기 공부를 하고 전입시험에 합격한 게 도청직원이 된 연유지요. 화서동에 거처를 마련하고 출퇴근을 했는데 그때부터 이 식당과 인연을 맺게 된 것입니다. 그러다가 7급 승진을 하고 홍보팀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홍보팀장이 소문난 주당(酒黨)이었지요. 그 당시엔 토요일도 오전 근무를 했는데 환영식을 겸해 점심을 먹으로 간 곳이 일미집입니다.
굵은 빗줄기가 제법 세차게 내리는 날, 일미 집 2층 다락방으로 들어섰지요. 이미 3년 이상 드나들며 순대국밥을 먹었는데 명색이 환영식이라서인지 모둠수육이 안주로 따라 나왔습니다. 푸짐하게 맛깔스러운 고기가 나왔으니 두꺼비 파리 잡아먹듯 소주병이 순식간에 비워져나갔지요. 1시간 정도 지났을 때, 벌써 모두 얼굴 불그레하게 술이 올랐는데 밥자리가 아닌 술자리가 끝나지를 않았습니다. 2시간 가까운 환영식이 끝나고 좁은 계단을 내려올 땐, 네발로 내려오는 사람도 생겨났지요.
“제가 승진한 건 여러분 성원덕분이고 추억이 있는 이 집에서 점심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98년에 홍보팀장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1년 반이 지날 무렵, 자리가 생겨 인사부서와 협의해 괜찮은 인재를 신입직원으로 받았지요. ‘성실의 아이콘’으로 불릴 만큼 열심히 일하는 그가 승진을 거듭해 서기관으로 승진을 했습니다. 그런데 올 곧은 성격으로 바른 말을 잘하는 그가 지사에게 밉보여 북부 청에서 떠돌게 되었지요. 마음고생이 많았는지 도의회로 가고 싶다며 조언을 구했습니다. 그때 서두르지 말고 멀리보고 일하라고 권유했고 와신상담 일해서 부이사관이 되자 승진 턱 자리를 마련한 것이지요.
“이제 저희 문 닫아야합니다. 이제 끝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 네! 죄송합니다.”
지난 연말, 손학규 지사께서 전화로 뜬금없이 ‘일미 집에서 송년회’를 하자고 했습니다. 현역시절 총무과장으로 일하던 때, 지사께서 맛있는 국밥집을 찾기에 모신 곳이 ‘일미 집’이었지요. 저의 단골이기도 했지만 수육은 물론 진한 국물이 일품인 순대국밥에 반주를 곁들이면 더없이 좋을 거란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송년회멤버가 한 술 하는 주당들이고 모처럼 만났으니 술잔이 날아다니고 이야기꽃이 만발해 시간가는 줄 모른 것이지요. 쫓겨나면서도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습니다.
일미 집 다락방에 들어서면 누구나 별 수(?)없이 겸손해지지요. 천장이 너무 낮아서 허리를 굽혀야하기 때문입니다. 방바닥에 털퍼덕 앉아서 국밥을 먹어야 하는데 이마저 매력이 있지요. 90년을 넘은 노포답게 잡냄새 전혀 없는 모둠수육과 진한 국물 맛이 일품입니다. 진한 국물을 먹으면서 이순을 넘긴 저는 연륜에 걸 맞는 사람냄새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지요. 그때마다 오래 우려낸 국물처럼 진한 향기 풍기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절감하고 있습니다.
40년 넘게 단골로 이 집을 드나들면서 많은 정이 쌓였지요. 새록새록 떠오르는 다락방에서의 추억들을 따끈한 국물에 말아먹는 시간은 행복 그자체입니다. 무언가 일이 풀리지 않아 기분이 내려앉을 때, 삶에 지쳐 힘겨울 땐 다락방에 올라 고기 한 점에 한 잔 술을 기울였지요. 거짓처럼 기분이 풀리고 찌들었던 삶의 더께가 말끔히 씻겨 내리곤 했습니다. 그런 시간이 겹겹이 쌓이면서 삶의 보약이자 추억이 되었지요. 제겐 그 다락방 시간이 심신을 곧추세우고 감성을 일깨우는 바탕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