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없는 감동의 언어^^

by 홍승표

점심 먹고 설거지하던 아내가 집에 들어온 남편을 맞았습니다. 퇴근시간이 아닌데 남편이 종이박스를 안고 집안으로 들어선 것이지요. 순간 번갯불처럼 스치는 직감으로 남편이 실직했다는 걸 알아차립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망연자실한 남편의 표정이 모든 것을 말해주었지요. 그런 남편을 와락 얼싸안으며 건넨 한마디가 감동이었습니다. “고생했다! 김 부장” 25년을 다닌 직장을 그만둔 남편에게 건넨 눈물 젖은 한마디, “미안해” “미안하긴 뭐가 미안해” 눈물 글썽이던 남편도 서로 부둥켜안고 참았던 눈물을 흘렸지요. ‘서울에 내 집 있고 대기업에 다니는 김 부장’이라는 드라마의 한 장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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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집안 형편이 어려웠지요.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한 이유입니다. 어떤 이는 효심 지극한 ‘자진포기’라 했지만, 어쩔 수 없이 포기한 것이지요. 뒷산자락에서 어둠이 내릴 때까지 넋두리를 늘어놓고, 비를 맞으며 하염없이 헤매기도 했습니다. 허탈한 마음을 달래보려는 것이었지만, 헛헛함이 사라지진 않았지요. 비 맞은 생쥐 꼴로 집에 들어서면 돌아온 건, 어머니 호통뿐이었습니다. 한치 앞도 안 보이는 안개 덮인 길처럼 앞날이 보이지 않으니 암울했지요. 그 때, 비 맞으며 산과 들을 헤매던 일은 지금도 축축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훗날, 운 좋게도 늦게나마 고등학교엘 들어갈 수 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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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후, 처음으로 방3개짜리 아파트로 이사한 날, 아내가 창밖을 보며 우두커니 서 있었습니다. 가만히 보니 눈물을 흘리고 있었지요. “왜 그래?” “너무 좋아서 그래!” 살짝 울먹이며 던진 아내의 한마디가 비수처럼 가슴을 파고들었지요. 당연히 보듬어 안아주고 위로해야하는데 그러질 못했습니다. 저도 울음이 폭발할 것 같았기 때문이지요. 돌아서면서 울컥했고 방으로 돌아와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말은 안했지만 단칸방이나 방2개짜리 아파트를 전전하면서 마음고생이 많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래도 죽을힘을 다해 무언가 이뤘을 때 흐르는 눈물은 삶의 가치를 더해주는 보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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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 녹봉(祿俸)을 먹고 살았으니 봉사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지요. 그런 기회가 생겨 2년간 법정단체 2,600여명의 대표로 열심히 봉사했습니다. 시군 회장님들과 함께 정말 열심히 활동했지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했습니다. 그런데 마무리가 깔끔하지 않았지요. 정말 고생하신 분들을 위해 동분서주했는데 결과는 빈손이었습니다. 너무 화가 나는데 더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절망했지요. 한동안 소리 없이 가슴으로 많이 울었습니다. 산에 들거나 오솔길을 걸으며 집착을 내려놓았지요. 하고 싶은 걸 했으니 후회 없다는 생각으로 자신을 다독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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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보다 자주 울컥하고 눈물이 나는 건, 나이 들었다는 반증이지요. 그래도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리는 건 행복한 일입니다. 눈물은 얼어붙었던 심성이 녹아 흐르는 말없는 감동의 언어이지요. 이런 눈물은 막혔던 가슴을 뻥 뚫어 줍니다. 진심이 스며든 눈물은 감동이지만, 가식의 눈물은 악어의 눈물일 뿐이지요. 사람들은 눈물 속에 담긴 진심을 꿰뚫어보기 때문입니다. 문득, 가슴속 의문부호가 슬그머니 떠올랐지요. ‘나는 다른 이에게 감동을 준 일이 있었던가?’ 부족한 게 많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살면서 수없이 떠올린 화두지만, 사는 게 내 맘대로 살아지는 게 아니라는 걸 또 한 번 절감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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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엔 다른 이에게 감동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불덩이가 끓어오릅니다. 그리 살아야하겠지요. 그 화두를 부둥켜안은 채 울컥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저 아무 말 없이, 떠나는 을사년과 눈인사를 나누며 작별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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