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 웃음이 최고의 보약^^

by 홍승표

오랫동안 함께 지냈던 손주들이 집을 떠나기 전 “고맙습니다.”라며 우리 부부에게 큰절을 올리는 순간, 가슴속에 불덩이 하나가 끓어올라 울컥했습니다. 먹먹해진 마음으로 등을 쓰다듬으며 다독여주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졌지요. 급히 일어나 화장실로 들어갔습니다. 아내도 눈매가 붉어져 있었습니다.

떠나기 전, 손주들이 차창을 열고 “안녕히 계세요!”라고 손을 흔들 때, 다시 가슴이 저려왔습니다. 손주들도 헤어지기 아쉬운 듯 눈물을 글썽이기 시작했지요. 차가 떠난 후 돌아서던 아내가 결국 어깨를 들썩이며 눈물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못 본 채 앞장서 헛기침을 날리면서 집으로 들어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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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결혼한 건 11년 전입니다. 그런데 직장이 아들은 대전이고, 며느리는 수원이라서 주말부부로 지낼 수밖에 없었지요. 그래서 며느리가 시부모 집에 들어와 함께 살기 시작한 것입니다.

손자를 낳고, 손녀도 낳았지요. 손주들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했습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공간이 협소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아파트 같은 층의 마주 보이는 집을 전세로 얻었지요. 마침 앞에 살던 사람이 나라 밖으로 파견을 가게 되어 집을 전세물건으로 내놓은 건데, 운이 좋았던 겁니다.

운 좋게도 앞집에서 4년을 지낼 수 있었습니다. 저도 현직에서 은퇴 한 후라 손녀 손을 잡고 유치원에 함께 갈 수 있었고, 손자와는 초등학교와 태권도 학원 길을 오가며 즐겁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공직은퇴 후에 며느리와 손주들과 함께 지내는 시간은 행복했지요. 아내랑 둘이서만 지냈다면 아마 무료하고 적적한 시간을 보내는 게 힘들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가끔 며느리가 만든 오징어, 제육볶음에 소주잔을 나누는 쏠쏠한 즐거움은 덤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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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흘러 손자가 열 살, 손녀가 여덟 살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혼자 지내는 게 안쓰러웠던 며느리가 직장을 아들이 있는 근처로 옮겼지요. 손주들과 더는 함께 살 수 없게 된 것입니다. 11년 동안이나 함께 지내다 헤어지게 됐으니 정말 아쉬웠지요. 아내와 함께 손주들을 공들여 정성으로 돌보았으니 더 그랬을 겁니다. 사실, 저야 설렁설렁 지냈지만 아내는 밥하고 뒷바라지하느라 무척 힘들었을 것이고 그래서 더 울컥했겠지요.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 보이지 않던 단점도 보이고, 의견 충돌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아무도 없단다. 서로 양보하고 배려하면서 지내면 좋겠다. 손주들이 많이 크고 이젠 생각도 어른스럽지만, 환경이 바뀌어서 다소 혼란스러울 수도 있을 테니 잘 돌봐줘라! 우리 나름대로 잘해주려고 했지만, 부족한 게 있었다면 이해해주기를 바란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진리는 ‘세상은 변하고 사람도 변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족사랑은 변해서는 안 된다. 하나밖에 없는 자식, 하나밖에 없는 며느리, 사랑스러운 우리 손주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늘 기도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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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이사한 날, 아들 내외에게 손 편지와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더 오래 함께 지낼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아들 가족이 11년을 서로 떨어져 지내왔던 터라 이제는 온전히 한 공간에서 함께 지낼 수 있게 됐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하면서 아쉬움을 달랬지요. 다만, 손주들이 바뀐 환경에서 지내게 돼 어색해하진 않을까 걱정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지요.

저희 부부는 물론, 손주들도 오랫동안 함께 지냈으니 불현듯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겠지요. 거리가 가까운 곳이 아니라 자주 보기는 어렵겠지만, 손주들이 보고 싶을 땐 영상통화로 귀여운 얼굴을 보면 피로가 한순간에 봄 눈 녹듯 녹아내릴 것입니다. 그러면 그 어느 보약보다도 약효가 좋아 우리 부부도 힘이 불끈 솟아나겠지요. 아들 며느리와 손주들이 행복하게 지내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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