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움트는 봄날^^

by 홍승표

겨울잠에서 생명체가 깨어난다는 경칩과 낮이 길어지기 시작하는 춘분이 지나고 봄이 찾아들었지요. 죽은 듯 서 있던 가지 끝에 연둣빛 기운이 역력하니 마음이 뭉클해집니다. 나무도 저렇게 다시 살아나는데, 나는 ‘지난 계절을 어떻게 지나왔을까?’라는 화두를 떠올렸지요. 겨우내 마음이 편한 날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작은 일에도 마음이 상하고, 생각만 앞세우고 잡념을 떨치고 내려놓지 못했으니 부끄러운 일이지요. 그러나 봄은 그런 저에게도 다시 시작해 보라고 말해 주는 듯합니다. 잘못을 탓하지 않고, 묻지도 않고, 온 누리에 새 움을 틔우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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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붙잡고 싶은 것은 거창한 게 아니라 일상의 자리이타(自利利他)입니다.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 쉽지 않지만, 그것이 다른 이에게 닿는다는 사실을 자주 잊어버리지요. 가족과 이웃에게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와 작은 배려가 부족함을 깨닫습니다. 그런데 말 한마디에 마음이 불편해져 한동안 화를 내려놓지 못한 적이 있지요. 그때 문득, 상대방도 나름의 인연과 사정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음이 조금 풀렸지요. 완전하진 않지만, 그 작은 변화가 새로운 마음의 싹을 틔운 듯했습니다. 자리이타는 작은 틈에서 솟아나는 새 싹일 수도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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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새 잎을 틔워 햇빛을 받고 동시에 그늘을 내어줍니다. 저 또한 나를 돌보면서 타인을 향한 마음을 잊지 않고 싶지요. 완전하지 않아도 괜찮고, 더디더라도 괜찮다는 생각입니다. 오늘 조금 부드러워지고, 내일 조금 더 이해하려 애쓰는 그 마음이 곧 가치 있는 삶이고 가치관일 테지요. 새 움이 트고 연 초록 물결이 온 세상에 가득할 때, 저는 두 손을 모읍니다. 제 마음에도 새 순 하나 돋아나기를, 그것이 언젠가 누군가에게 희망을 안겨준다면, 그보다 더 큰 기쁨은 없을 겁니다. 봄은 밖에서 오는 게 아니라 마음 안에서 시작되는 것임을 다시 깨닫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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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면 저의 삶 또한 한 줄기 새순이 돋아나는 과정이었습니다. 너른 고을 광주의 가난한 농가에서 여섯 남매의 차남으로 넉넉하지 못한 환경 속에서 자랐지요. 고교시절 문예콩쿠르에 입상해 대학 진학의 기회가 열렸지만, 집안 형편 앞에서 특전을 내려놓아야 했습니다. 마음 한 구석이 무너져 내리던 순간이었지요. 그러나 절망 속에 빠져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여름, 마음을 다잡고 도전했던 공무원 시험 합격은 제 삶에 돋아난 첫 번째 새 순이었지요. 작고 여린 시작이지만, 희망의 싹이었습니다. 이후 부족함을 절감하곤 좌절하기도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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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출신과 대졸인재들이 즐비한 환경 속에서 스스로를 증명해야하는 부담은 가볍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또한 숙명이라 여겼지요. 열등감에 머물기보다,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살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세월이 쌓여 끝내 고위직에 오르고 공기업CEO로 명예롭게 공직을 마무리할 수 있었지요. 그것은 저만의 성취가 아니라 주변의 도움으로 맺어진 열매였습니다. 저는 그 열매가 수많은 인연과 함께 이룬 것임을 잘 알고 있지요. 그게 누군가에게 희망의 씨앗이 된다면, 또 다른 선순환의 시작일 것입니다. 자리이타의 의미를 곱씹는 이유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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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봄은 척박한 땅이나 한겨울 추위 속에서도 생명은 다시 움튼다고 말해 줍니다. 우리 삶이 또한 그러하지요. 잠시 길이 막히고 꿈이 멀어지는 듯 해도 포기하지 않는 마음하나가 새로운 길을 엽니다. 희망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다시 일어서는 마음속에 새 싹이 돋아나기 때문이지요. 각자의 자리에서 죽을힘을 다해 사는 이들이 자신만의 새 순을 찾아내기를 소망합니다. 그 여린 시작을 귀하게 여기고 키워 가기를, 그리고 언젠가 자신만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또 다른 누군가에게 꿈과 희망을 전해 주기를, 새 움트는 이 봄날, 두 손 모아 발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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