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간 장기교육을 받을 때 지리산에 갔었지요. 밤 10시경 수원에서 버스로 출발해 새벽 3시경 중산리 마을에 도착해 곧바로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법계사에서 잠시 김밥을 먹으며 쉰 후 다시 천왕봉으로 향하는 길은 참 험했습니다. 가파른 바윗길, 숨소리가 거칠어지고 땀이 비 오듯 쏟아졌으나 정상가는 길목에 ‘천왕 샘’이라는 약수터가 있어서 다행이었지요. 목을 축인 뒤 다시 오르다 보니 ‘천왕봉’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큰 바위가 보이더군요. 하지만 그보다는 뒷면의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라는 글귀가 제게는 묵직하게 다가왔습니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모두 낮게 엎드려 있었지요.
사람들이 왜 지리산, 지리산 하는지 천왕봉에 서 보니 저절로 느껴졌습니다. 힘찬 기상이 가슴을 쿵쾅거리게 하더군요. ‘장터목산장’에서 잠시 멈춘 휴식은 꿀맛이었지요. 어머니 팔베개를 베고 누운 것 같은, 더는 바랄 게 없는 시간이었습니다. 벅찬 감동을 가슴에 담고 장터목을 지나 백무동까지 계곡을 따라 무념무상의 자세로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돌길이라 험한 데다 거리도 멀어 힘들고 지루했지요. 일행이 많아서인지 12시간도 더 걸려 백무동 식당에 도착했습니다. 지쳐서 아무 생각이 나지 않더군요. 만사 제쳐두고 샤워장으로 달려가 온몸에 물을 뒤집어쓰며 지리산 산행을 마무리했습니다.
산을 찾는 게 이제는 일상이 되었는데, 그 시작은 오래전입니다. 휴일도 없이 참 일에 바쁘게 매달렸지요. 그러다가 공직 20여 년 만의 사무관 승진으로 좀 여유가 생겨 산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시골에서 공을 차고 땔나무 지게를 진 채 산을 오르내리던 기억이 있어 처음엔 가볍게 생각했지요. 그런데 예상과 달리 몸이 말을 듣지 않고 몹시 힘겨웠습니다. 오랫동안 운동을 하지 않았으면서 소싯적 생각만 하고 나섰던 게 불찰이었지요. 함께한 친구 녀석도 안쓰럽고 의외라는 표정을 짓더군요. 이때 이후 광교산을 시작으로 틈만 나면 전국의 산을 찾았습니다. 태백산에는 열 차례 넘게 갔지요. 한라산, 오대산, 설악산, 치악산도 몇 차례씩 찾았으니 웬만큼 유명하다는 산은 거의 만난 셈입니다. 중국의 태산, 화산, 황산도 올라가 봤으니 이만하면 산악인이라 할 만하지요.
사는 것 자체가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고행입니다. 사는 일이 힘겨울 때, 저는 그 무거운 짐을 지고 산에 들어갑니다. 산에 들면 지친 삶의 더께가 말끔히 씻어지기 때문이지요. 막상 산에 들면 산이 보이지 않지만, 힘겨움을 이겨내고 정상에 서면 세상이 정말 작아 보입니다. 저런 세상에서 나는 한없이 작고 초라한 존재라는 것, 저절로 겸손해지고 몸을 낮추게 되지요. 산에서 내려오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다시 현실에 부딪히게 되지만, 그게 뭐 그리 큰 대수겠는지요. 산에 들어 그런 생각을 해보는 것 자체가 행복이고, 그런 마음이 쌓이면 내공도 깊어질 거라 믿습니다.
산에서 참 많은 것을 배웁니다. 말이 없지만, 많은 말을 하는 산. 어떤 이는 산꼭대기에 오르면 산을 정복했다고 하지만, 그건 오만이지요. 잠시 한 구석 자리를 빌려준 것뿐인데 정복이라니 어불성설입니다. 어느 산도 인간에게 정복당할 산은 없습니다. 또 어떤 이는 ‘산은 자연의 철학자이고 우주의 교육자’라고도 하는데, 누가 어떻게 말하든 산을 완벽하게 표현하기란 불가능하지요. 다만, 제 경우에는 살아가는 일이 버거워 힘들고 지쳤을 때 산에 들면 나무가 되고, 돌이 되고, 바람이 되고, 구름이 되어 세상의 근심·걱정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산에 들면 아무 바랄 것이 없어지지요. 없어서 걱정하고 있어서 걱정하는 게 아니라, 없어서 행복하고 있어서 행복하다는 걸 깨닫습니다. 산은 자연이 인간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저는 그저 그리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