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물도 웃음도 씻어버리고
이른 아침, ‘소고기 등심 굽는 소리’에 잠이 깼습니다. 창밖을 보니 굵은 빗줄기가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누구는 창문에 부딪치는 빗소리를 실로폰에 비유하고, 또 누구는 작은북에 비유하기도 하는데, 왜 배가 고팠던 것도 아닌데 등심 굽는 소리로 들렸는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빗소리가 호박전 부치는 소리로도 들립니다.
‘비 오는 날은 공치는 날’이라는 말이 있지요. 눈 비비고 일어나 우두커니 앉아 있으니 너른 고을(廣州)에서 지내던 어린 시절 기억들이 무지개처럼 떠오릅니다. 비가 오면 동네 형들과 작은 어망을 둘러매고 개울로 나갔지요. 물살이 빨라지면 고기들이 얕은 물 가장자리로 나오기 때문에 잡기가 쉽거든요. 보통 때는 대부분 피라미 따위가 잡히는 것과 달리 물이 불어나면 미꾸라지, 붕어, 새우 등 다양한 고기를 잡을 수 있어서 비만 오면 신이 났습니다.
손질한 고기와 새우를 넣고 고추장을 풀어 끓인 매운탕 맛은 시원하고 달콤합니다. 밥을 말아 먹어도 좋고, 국수를 넣거나 수제비를 넣어 끓여내도 좋고, 매운탕은 시원하고 달달한 국물이 끝내줍니다. 장마철의 곤지암 마을에서는 이렇게 고기를 잡아 집집 돌아가며 매운탕을 끓여 먹었지요. 잡히는 어종이 그때그때 다르고 집안마다 양념도 달라 매운탕 맛이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어느 집에서나 정성으로 끓이는 매운탕은 맛있습니다. 어렸던 나는 동네 형들과 함께 어울리고, 어른들과 식사를 같이하며 많은 이야기를 듣고 자랐지요. 세상 돌아가는 일이며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학교에서는 배울 수 없는 인생 공부를 미리 한 셈이니 행복했습니다.
빗줄기 속에는 눈물도 들어 있습니다. 제 부모님은 장남이 잘돼야 집안이 제대로 선다고 늘 생각하셨지요. 그래서 형은 서울에 있는 고등학교에 들어갔는데, 그때의 상경은 지금의 유학 이상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형이 첫 번째 대입 시험에 떨어지고 재수를 시작할 무렵 저는 고교 진학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재수는 어려운 일, 부모로서는 한꺼번에 돈이 들 일이 걱정이지요. 제가 고교 입학보다 농사일을 도우면 좋겠다고 한 것도 그래서였겠지요. 하지만 저는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희뿌연 안개 속에 갇힌 것처럼 앞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았지요. 그날따라 왜 그렇게 억수같이 비가 쏟아지는지, 저는 무작정 빗속을 정처 없이 헤매다 돌아왔습니다.
비가 오는데 집에 돌아오지 않는 아들, 돌아왔는데 온몸이 비에 흠뻑 젖은 아들, 어머니는 얼마나 가슴 아프셨을까요. 하지만 어머니는 걱정을 호통으로 대신하셨지요. 그러고는 부엌에 가 울고 계셨고, 저는 제가 보고 있는 걸아시면 어머니가 더 속상해하실까 봐 숨죽여 눈물 흘리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도 곡절 끝에 뒤늦게나마 고등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으니 다행이었지요. 중학교 교복에 배지만 바꿔 단 고교 생활 시작이었지만, 농사를 도우며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불볕더위 속에서 요란하게 날아드는 새소리, 쓰르라미 소리는 더위에 지친 눈까풀을 내려앉게 합니다. 그러다가 비가 오면 눈이 번쩍 뜨입니다. 온갖 잠자고 있던 것이 한꺼번에 깨는 것 같기도 합니다. 찌든 삶의 더께가 씻기고 새로운 꿈이 나래를 펴기도 합니다. 비가 오는 날, 우두커니 창가에 앉아 있는 시간은 행복합니다. 일이 없어 ‘공치는 날’이지만, 생각의 깊이와 넓이를 더할 수 있는 보약 같은 날이기도 합니다. 살다 보면 지금의 나는 누구인가 의문부호가 떠오를 때가 있지요. 비 오는 날에는 살아가는 이유, 삶에 대한 철학과 가치관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그러기에 비 오는 날은 ‘비 오시는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