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내가 부럽고, 나는 네가 부럽고

by 런펀맨

고등학교 2학년, 3학년을 함께 다닌 친구가 있다. 1년 넘게 짝꿍으로 지냈다. 대학교에 입학해서도 가끔 만났고, 직장 생활을 하는 요즘도 가끔 만난다. 얼마 전, 그 친구와 저녁을 함께 먹었다. 여느 때처럼 삼겹살에 소주 한 잔을 기울였다. 대화하다가 신세 한탄이 나왔다. 나는 결혼 생활이 쉽지 않음을 친구에게 토로했다. 같이 사는 사람과 마음이 맞지 않아 다툼이 일어나면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말했다. 특히 삶의 태도나 문제가 생겼을 때 대처 방식이 배우자와 크게 다르면 여러모로 힘들다는 점을 친구에게 설명했다.

친구는 아직 결혼하지 않았다. 솔로다. 자유롭게 생활한다는 점, 배우자와의 성격 차이를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점, 마음껏 여행을 다니고 삶을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나는 친구에게 말했다.


"네가 부럽다."


친구는 불쑥 대답했다.


"너는 내가 부럽고, 나는 네가 부럽고."


뿅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 들었다. 친구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내게 부럽다는 표현을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배우자로 인해 스트레스받는 유부남이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솔로남을 부러워하는 건 흔한 일이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던지는 말이다. 이 말에 대한 친구의 반응은 사뭇 진지했다. 친구의 말에는 진심으로 부럽다는 뜻이 담겨있는 듯했다. 친구는 내게 부러운 점을 설명하지 않았다. 그래서 추측해 봤다. 친구가 내게 부러워할 만한 점은 어떤 게 있을까.


정답은 '평범한 삶'이 아닐까 싶었다. 친구는 20대 후반부터 신장 관련 질병을 앓았다. 주기적으로 병원에 다녀야 했고, 먹는 음식마다 칼로리를 계산해야 했다. 좋아하던 술을 극도로 줄였고, 집안도 일반 사람들보다 훨씬 청결하게 유지해야 했다. 몸이 좋지 않으니 연애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연애하지 않으니 40대 초반임에도 결혼하지 않았고 당연히 아이도 없다. 친구는 직장 생활을 하며 번 돈으로 여행을 다니고 자유롭게 살고 있지만,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리고 사는 '평범한 삶'은 가지지 못했다. '평범한 삶'의 정의가 우리나라의 70대 어르신이 생각하는 그런 삶이라는 가정하에서 말이다.


반면, 는 아직 크게 아팠던 적이 없고, 일을 마치고 집에 오면 재잘거리는 예쁜 딸이 있으며, 가끔 다투지만 서로 의지하는 배우자가 있다. 주말이면 셋이 맛있는 음식을 먹고 산책하러 다니며 농담을 주고받는다. 높은 곳을 바라보면 내가 가진 게 한없이 부족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나 자신과 내 가족에만 집중하면 충분히 가졌다고 느껴진다. 가족 모두 건강한 몸과 마음을 가졌고, 사회에서 각자 본인의 힘으로 만든 자리를 가졌으며, 서로 믿고 의지하고 대화할 수 있는 가족을 가졌기 때문이다.


미치 앨봄은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에서 모리와의 대화를 아래와 같이 옮겼다.


“24시간만 건강해진다면요?”


“아침에 일어나서 운동을 하고 롤 케이크와 홍차로 멋진 아침 식사를 한 후에 수영하러 가겠어. 그런 다음 찾아온 친구들과 맛 좋은 점심 식사를 함께하고. 아, 한 번에 한둘씩만 찾아오면 정말 좋겠군. 그래야 그들의 가족과 관심사에 대해 온전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테니까 말이야. 또 우리가 서로에게 얼마나 소중한 사람들인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어.”


모리 교수님은 상상만 해도 즐거운 듯 환하게 미소 지으며 말을 계속했다. (중략)

“그게 다예요?”


“그래, 그게 다야.”


정말 소박했다. 너무도 평범했다.


친구의 말 한마디가 내게 수많은 생각을 불러일으켰다. '평범한 삶'의 소중함을 일깨웠다. 가지지 못한 것을 부러워하지 말고, 이미 가진 것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는 점을 느끼게 했다. 또한 친구는 내게 부럽다고 했지만, 그 말과 관계없이 본인의 상황에 맞는 행복을 찾아 누릴 것이라고 믿는다. 실제로 친구는 솔로든 유부남이든 본인의 친구들과 자주 만나고, 같이 여행도 다니는 삶을 살고 있다. 나와는 다른 카테고리의 행복을 누리는 것이다. 문득, 그 친구와 또다시 술 한 잔 기울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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