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Lee Sujin
Jul 10. 2024
주부 생활 13년 차. 청소도 빨래도 설거지도 영 서툴다. 서툰 것에 더해 도통 할 마음도 없다. 그나마 내가 잘하는 게 하나 있다면 아침밥 차리기이다. 아이들 이유식 시작할 때부터 나에겐 밥상 차리는 원칙이 있으니, 매 끼니마다 채소 세 가지, 단백질 한 가지, 버섯 한 가지를 맞추어 낸다. 덕분에 아가들은 가리는 음식 없이, 새로운 맛에도 호의적인 편이다.
처음부터 밥 차리기를 잘했던 것은 아니다. 고등학교 시절까진 어머니 해주신 밥을 잘 먹기만 했다. 대학교 오면서 어머니 품 떠나 자취를 시작하고선 4년 내내 밥을 해본 적이 없었던 듯하다. 늘 식당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하던 차, 문득 집 밥이 그리워 밥을 안치고, 찌개인지 국인지 하나를 끓였을 터. 그렇게 시작된 요리가 썩 취미에 맞았다.
스물넷, 다섯 시절, 대학을 갓 졸업해 이제 직장생활을 시작한 우리는 넉넉치 않은 주머니 사정을 핑계로 1차 혹은 2차 후, 헤어지기 아쉬운 마음을 안고 늘 우리 집으로 향했다. 제일 만만한 어묵탕을 몇 번을 끓였는지 셀 수조차 없다. 그때는 그게 즐거움이었다. 서툴지만 무언가를 요리해서 친구들과 편안하게 하하 호호 웃으며 유쾌함을 나누고 또 나누었다. 그때 친구들과 여전히 20년이 훌쩍 넘은 시간을 함께 하고 있으니 어묵탕에게 감사할 일이다.
안주에서 식사로 나의 요리 세계가 전향한 것은 아마도 결혼과 함께였으리라. 신혼의 패기와 3년만 지속된다는 연애 호르몬의 영향으로 한때는 식단까지 짜서 아침저녁을 부지런하게 차린 시절도 있었으니,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그 식단은 철저하게 아이의 식판에 맞춰지게 되었고, 여전히 우리 아침메뉴는 우리 집 막내의 입맛을 따르고 있다.
아침밥으로 우리 집 식탁에 가장 빈번하게 오르는 메뉴는 떡만둣국이 아닐까 싶다. 국이나 반찬이 따로 필요 없이 계란지단 부쳐내고, 채 썬 당근 들기름 소금에 볶고, 표고와 소고기는 진간장에 다글다글 졸이고, 대파만 썰어서 푸짐하게 얹어낸 후, 잘 익은 김치만 하나 송송 썰어내면 간편하기도 하거니와 든든하기까지 미안함이 없는 아침밥이다.
문득 우리 엄마의 아침밥 생각이 난다. 생일날마다 끓여주시던 미역국, 묵은지 한번 살짝 씻어 돼지고기랑 푹 끓여주시던 김치찌개, 소풍날 아침이면 유난히 이른 새벽부터 참기름 냄새 고소하게 말아주시던 김밥. 내가 제일 좋아하는 조기가 지글지글 익어가는 소리. 눈을 뜨기도 전부터 따각따각, 탁탁탁 경쾌하게 들리던 도마소리와 코끝을 간지럽히던 냄새들..
그 시절, 엄마가 해주신 아침밥에 대한 기억들은 아직 소화되지 않고, 여전히 내 마음에 영양분을 공급해주고 있다. 그 에너지로 힘든 시간들 잘 버틸 수 있었다. 나도 한 번 상상해 본다. 훗 날, 내 아기가 힘든 시간에 맞설 때, 전화 한 통 걸어와서 "엄마, 떡만둣국 어떻게 끓이는 거야?" 물어볼 날이 있겠지. 그럼 나도 울엄마처럼 무심하게 얘기해야지. "대충 끓여 그냥! 비비고 사골 육수 사다가. 계란지단 부치고, 당근은 있으면 넣고, 없음 말고. 김치는 있어?"
그렇게 그냥 모르는 척, 힘든 시긴에 맞서고 있을 내 아가에게 무심하게 답을 해줘야겠다.
아, 내일 아침밥은 또 뭘 하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