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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람바 Jan 23. 2024

바람만 불어도 아픈 날

통풍이 걸린 나는 다음날 일어나 습관처럼 거실로 물을 마시러 나갔다. 그러고 물을 마시는데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 내가 어떻게 걸어왔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왼발이 움직인다는 사실이 너무 신기했다. 하루 전만이라도 바닥에 발을 딛지도 못했거니와 누워있는 내내 고통이 몰려왔는데 어떻게 하루 만에 나았다는 사실이 너무 신기했다. 의사가 평생 조심해야 한다느니 수술에 부담이 크다느니 하는 말은 어느새 까먹어버리고선 '요즘 약 잘 나오네'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전과 다를 것 없이 밥을 챙겨 먹었다.


평일이 되자 학교에 가면서 친구들한테 할 말이 생겼다는 사실이 신이 났다. 아픈 게 자랑은 아니지만 뭐든지 남들과 달라 보이고 싶고 특별해 보이고 싶었던 학창 시절 이것 또한 지루한 수업 시간을 이겨낼 하나의 이야깃거리가 되었던 셈이다. 그렇게 수업이 시작되고 나는 소곤소곤 내 옆자리 짝꿍에게 "내 발에 통풍 있다?"라고 말하는데 그 친구는 나 통풍 뭔지 안다면서 "바람만 불어도 아프다며?" 하고 내 왼발에다 입으로 바람을 불어댔다. 그게 그때는 왜 그렇게 웃기던지 나는 "으어엌 아읔" 하며 아픈 연기를 했고 서로가 빵 터져서는 결국 선생님께 혼이 나고 말았다.


한바탕 혼이 나고 선생님께서는 무슨 이야길 했는지 물으셨다. 그때는 혼이 나도 왜인지 혼내시는 것 또한 정감 있게 들렸다.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신 게 아닌 걸 알지만 공부는 못하지만 착하기는 했던 나는 선생님께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내 통풍 사실을 알렸다. 선생님은 웃으시면서 "네가 술을 잘 마시나 보구나" 하시며 말하시는데 그때 내 친구들은 또 웃어댔다. 왜냐하면 나는 180cm에 90kg인 체구에 비해 술은 반 병도 마시지 못했기 때문이다. 수학여행 때 내 주량이 소주 3잔이라 놀려댔던 친구들과의 회상은 잠시 접어두고 변명을 하려던 찰나 선생님께서는 마침 울린 종소리에 얼른 좋아하시던 매점빵을 사러 가셨고 나는 반친구들과 모여 또 아까 짝꿍과 하던 연극을 계속 해댔다.


다음 수업 시간이 되고 한바탕 연극을 즐긴 관객들은 다른 교과목 선생님이 들어오시자 다시 학생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선생님께서 들어오시고 바로 하시는 말씀이 "여기 통풍 걸린 아가 있다는데 누고?" 이러시길래 반친구들은 다 나를 봤다. 나인걸 눈치 채신 선생님은 "술 좀 작작 처무라" 이러시곤 바로 수업을 시작하셨다. 뭔가 대답을 하길 바라시며 물어보신 것도 화가 나신 것도 아닌 그 말에 기분이 상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지금도 그때도 통풍에 걸린 어른들을 보면 애주가가 많다 좋게 말해 애주가지 술꾼들이 많다. 선생님들 주변에는 그런 아는 사람, 친구, 가족 얘기가 많이 들려왔을 것이고 자연스럽게 나를 그렇게 보신걸테다.


왜일까? 나는 왜 내 아픔을 희화화하려 했을까? 그런 생각들을 접어두고 나는 웃었다. 친구들이 웃으니까 선생님께서 기분이 상하시면 안 되니까. 친구들의 웃음은 더 이상 재미가 아닌 비웃음처럼 들렸고 그날은 정말 바람만 불어도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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