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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람바 May 31. 2024

뭐 먹고살지? (상)

한참을 이런 고민을 할 때가 있었다. 아니 어쩌면 지금도 하고 있는지 모른다. 학창 시절에는 그저 어느 대학을 갈지 정하는 게 뭐 먹고살지에 대한 고민의 답을 찾아줄 거라 믿었다. 그런데 막상 졸업을 하고 보니 그런 것도 아닌 거 같더라. 세상은 자신의 전공을 살려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 30%도 안된다고 하니 말이다. 여하튼 이 고민은 고등학교 졸업을 하고 나서 점점 더 커지더니 군대를 제대하고 나서 폭발하고 말았다. 뒤돌아 보니 졸업을 하고 이룬 게 없었다. 남들처럼 대학을 가지도 않았고 자격증 하나 없이 모아둔 돈이라고는 군대를 제대하고 받은 돈뿐이었다. 20살 졸업하고 바로 취업을 한 뒤 벌어둔 돈이 있지만 그 돈은 내 소중한 가족을 살리는데 썼다.(이 이야기는 중편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무튼 한참을 고민했다. 뭐 먹고살아야 할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렇게 반년이 지나갔다.


6개월이 흐르는 동안 내가 한 거라고는 내가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사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자각과 함께 뭐 먹고살아야 할지에 대한 고민만 남았다. '아직 젊으니 대학을 다시 가볼까?'라는 생각이 든 건 이력서를 준비하면 서였다.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바로 취업을 했지만 경력 취급을 못 받는 막일이었고 힘든 만큼에 돈은 벌었지만 어디 가서 경력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일이다. 물경력인 것이다. 고등학교도 인문계를 나온 나는 이력서를 쓸 때마다 쓸 말이 없었다. 가진 자격증이라고는 운전면허와 급하게 딴 중장비 자격증뿐 고졸, 상근이라는 내 학력과 군생활의 마침표들은 마치 나를 넓은 도화지에 점하나 찍은 듯 작고 초라하게 비쳐냈다.


'왜 인문계 고등학교 나왔으면서 대학교는 안 갔어요?', '상근이면 어디 몸도 안 좋은 거 같은데 어디 아파요?' 이런 말들을 매 면접 때마다 들었다. 무슨 말을 하랴 그 앞에서는 '아 제가 대학 갈 성적이 안 돼서 안 갔어요', '아 제가 통풍이라 발목에 무리가 가면 종종 아픕니다' 하며 솔직히 말하면 그들이 어떤 시선으로 나를 볼지 아는 것을. 나는 급하게 둘러대며 상황을 넘기고 내가 가진 젊음과 패기만을 어필할 뿐이었다.


당연히 면접 결과는 안 좋았다. 더 이상의 이력서는 의미가 없었다. 세상에 내 모습을 비출 때면 고졸, 상근이라는 꼬리표가 드러나고 그렇게 면접관들 앞에 서면 바코드 찍히듯 낙인찍혀버렸다. 결국 그 자리에서 허둥대며 둘러대기 바쁜 내 모습이 거울에 비치듯 스스로에게 비치더니 나는 점차 자신감을 잃어갔다.


그동안 잘못 살아왔나 싶었다. 남들은 젊으니까 뭐라도 해봐라, 경험을 쌓아라 했지만 정말 뭐부터 시작해야 될지 모르겠더라. 결국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은 정해져 있었다. 이력서가 그저 개인정보 확인용인 형식상 필요한 그런 곳으로. 그렇게 공단들이 모여있는 시골에서 한 공장에서 면접을 봤다.


한 조선소 부품을 제작하는 곳이며 젊은 사람들은 아무도 안 가는 곳이었고 둘러보면 전부 외국인 노동자뿐이었다. 회사 건물 2층으로 가서 면접을 보러 왔다고 하니 부장이라고 소개하는 50대 중년 남성이 나를 데리고 이사라고 적혀있는 명패 적힌 책상으로 안내했다. 그 자리에는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한 남성이 있었고 내 이력서를 보더니 '아니 뭐 차라리 적혀있지도 않구먼 뭘 보고 뽑으라는 겁니까' 하며 내 면전 앞에 대고 그렇게 이야기했다. 내 면전 앞에서 그 말을 했지만 그 말은 나를 보고 하진 않았다. 그러니까 그 이력서의 주인이 나니까 나한테 하는 말이 맞긴 한데 시선은 부장의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말의 뜻을 나는 바로 알 수 있었다.


나는 그 말이 너무 직관적이라 무슨 말을 하는지 바로 알아들었다. '뭐 이런 놈을 데리고 왔어' 하는 말이다. 뭐 틀린 말은 아니었기도 하고 그런 취급을 받은 지 오래라 익숙해 별로 연연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이사와의 면접은 흡연구역으로 장소를 옮기며 이어졌다.


나보고 담배는 피우냐고 물었는데 안 핀다고 하자 별로 신경 쓰지 않고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담배연기와 한숨을 몰아내 쉬며 입을 열었다. 우선 내 나이가 젊으니까 일은 시켜주겠는데 1년도 안 하고 나갈빠에 우리는 일을 시켜줄 이유가 없다고, 일 다 가르쳐났더니 도망갈빠에 우리가 왜 뽑냐고 그렇지 않냐면서 따져 묻는데 정말 뭐라도 해야겠다 싶었던 나는 그저 웃으며 '네 맞는 말씀입니다.', '열심히 할 수 있습니다.' 하며 고개 숙이는 게 다였다.


정말 주변에서 내 젊음이 무기라길래, 젊으면 모든지 다 할 수 있을 것처럼 얘기하길래 다 되는 줄 알았다. 겨우 23살이었던 나는 정말 젊기만 했다. 젊음은 시간이 지나면 닳고 녹슬어버리는 무기었고 그 자리에서 나는 젊은 거 빼고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으니 그저 웃으며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면접이라고 부르기에는 사담과 담배연기만 가득했던 면접이 끝나고 면접 결과는 문자로 알려줄 거라고 하고선 집으로 나를 돌려보냈다. 시골에 공단들이 줄 서 있는 외진 곳이라 버스가 잘 다니지 않았고 택시를 불렀고 그렇게 얼른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 채운 채로 멍하니 택시만 기다리고는 집으로 향했다.

ㄷㄷ

집으로 도착하고는 왜인지 녹초가 되어선 잠에 들었고 일어나 휴대폰을 확인해 보니 내일부터 출근하라는 문자가 와있었다. 합격되었다고 봐야 하나? 밥벌이도 못한다는 꼬리표까지 달기 싫어서 죄책감에 본 면접이라 전혀 기쁘지 않았다. 그렇게 눈을 감으며, 눈을 감으면 그런 내 모습이 흐려지니까, 나는 현실에서 꿈속으로 도망칠 수 있으니까, 그렇게 벗어날 수 있을 것만 같아서 눈을 감으니 문자 내용도 흐릿해져 갔다. 그렇게 마주하기 싫은 아침이 오고선 내 잠을 깨우고 창틈으로 비춰지는 햇빛이 내 모습을 다시 세상으로 비췄고 그 모습이 들킬세라 얼른 부랴부랴 출근 준비를 했다. 정말 뭐라도 하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다.


출근을 하고서는 아무도 나를 반겨주지 않았다. 처음 보는 사람이니 눈이 갈 텐데 잠시 힐끔 쳐다보더니 그들은 다시 제 업무로 돌아가 먹고살기 바빴다. 그 모습이 부러웠다. 당장에 자신들의 밥벌이를 하고 있다는 것과 대리, 과장, 부장 등 직급들을 달고 바삐 움직이는 그들의 모습을 다시 보니 이상한 존경심이 생겼다. 그리고 멀리서 이사라는 직책을 단 어제 본 그 사람이 걸어오고 있었다. 사회와 군에서 박힌 수직적인 갑을 관계는 자연스럽게 내 고개를 숙이게 만들었고 이사라는 직책을 보자마자 큰소리로 '안녕하십니까' 인사하는 나를 본체만체하더니 이사는 내게 처음으로 하는 말이 '왜 안전복 안 입었어요?'였다. 참 이렇게 안전하게 인사받으시는 분은 또 처음 봤다.


나한테 안전복을 준 적이 없는데 뭘 입으라는 거지 했지만 1층에서 급하게 뛰어오는 부장님께서 내 작업복을 들고 계셨다. 그렇게 그 옷을 주고선 1층에 탈의실에서 갈아입고 오라고 하셨고 나는 빠르게 환복을 했다. 다시 올라가 보니 사람들은 없고 급하게 뛰어가는 직원분을 보고선 나도 따라나셨다. 모두 국민체조를 하러 공장 한가운데 모여있었고 나도 쭈뼛대며 자리를 잡았고 그렇게 국민체조를 끝내니 또 사람들이 사라진다. 다들 제 밥벌이하러 가셨겠지 하는 생각을 하며 또 부장님을 찾아 헤맨다. 뭐부터 해야 될까 하며 머리를 굴리며 말이다.


이럴 때는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찾아다녀야 한다. 뭘 해야 될지 물어봐야 된다고 생각한 나는 가만있지 않고 부장님께 가서 어떤 걸 하면 될지 여쭤본 뒤 부장님이 시키시는 잡일을 도왔다. 부장님 책상에 둔 서류를 가져다 드리기도 하고, 몇 시인지 재깍재깍 말해드리기도 하고, 잃어버린 볼펜을 찾아드리기도 하니 내게 아주 긴 시간 할 수 있는 업무를 주셨다. 바로 공장 돌아다니기다. 어? 공장으로 나들이 가라는 말씀은 아니실 테고 그냥 내가 옆에 있는 게 신경 쓰이신 건지 안 보이는 데로 가라는 말씀인 거 같았다. 그때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공장 주변을 걸어 다니며 생각했다. 갖고 온 수첩을 들고 내가 한 일들을 복기하다가 갑자기 20살 때가 떠올랐다. 그때도 참 힘들었는데..


중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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