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 호스트의 설명은 홀딱 빠져들기에 충분했다. 몇 년 동안 가족 여행을 참아온 탓도 그 이유에 한몫했다. 당장 결정은 하지 않더라도 전화번호를 남기면 상담 예약이 가능하다는 말에 전화기 버튼을 누르고 말았다. 이틀 후 걸려 온 전화에 원하는 날짜와 인원수를 말했고 사람이 많아 일단 가예약을 해놓는 걸 권유하기에 그러마고 동의했다. 그런데 저마다의 사정과 처지가 다른데 의견 통일이 어디 그리 쉬운가. 날짜 조정이 필요했고, 괜히 다른 사람 예약도 못 받게 열 좌석을 맡아놓은 게 마음에 걸려 연락을 시도했다.
기진맥진이었다. 고객 응대 보호법에 따라 통화내용은 녹음된다는 연결 멘트를 시작으로 팔이 아플 정도로 수화기를 들고 있었다. 통화량이 많아 연결이 지연된다는 기계음만 반복해 듣다 보니 점점 지쳐갔다. 틈나는 대로 수화기를 들었다 내려놓으니 어느덧 상담원 퇴근 시간이 넘어있었다. 다른 날짜로 예약하려고 해도 먼저 해놓은 가예약을 취소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되었다. 보내 준 링크는 상품소개와 일정일 안내였고 그 와중에 예약문자와 안내문만 쉬지 않고 날아왔다. 날짜 변경이 다급해 꼭 통화를 하고 싶었지만 하늘의 별 따기였다. 사람 목소리 들을 수 있었던 통화는 처음 딱 한 번 뿐이었다. 기계 음성 듣다가 지칠 무렵에 통화량이 많아 답변이 지연되니 카톡 친구추가 후 상담 진행이 가능하다는 문자에 끝내 굴복하고 말았다. 침침한 눈을 가늘게 떠가며 액정을 두드리고서야 내 상황이 전달되었고 문의 답변은 일사천리로 진행될 수 있었다. 다행이었지만 사실 나는 사람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싶었다.
요즘 이와 비슷한 경험을 많이 한다, 친절하고 다감한 음성으로 궁금증을 해결해 주던 상담원이 마냥 감사하던 시기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공공 기관뿐만 아니라 생활에 밀접한 어느 곳이건, 뭔가 문의할 사항이 있으면 녹음된 기계음을 마냥 기다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전화를 걸어야 한다. 인터넷이나 모바일로도 물론 가능하지만 이용이 난처한 상황이란 의외로 많다. 여러 인증 절차나 회원가입이 생각보다 성가실 때도 있고, 꼭 집어 원하는 상담이 제시된 보기에 없을 수도 있다. 게다가 다른 사람과 같이 있기라도 하면 계속 전화기만 들여다볼 수도 없다. 바쁠 땐 음성통화를 하면서도 몸을 움직이며 다른 일을 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잖은가. 정보의 전달만이라면 대화보다는 문장이 더 명확하겠지만 오가며 전해지는 이해의 깊이는 찾아보기 힘들다.
사람의 목소리는 참으로 섬세하고 다양해 그 문양과 결이 모두 다르다. 듣는 순간 꽃봉오리 벙글 듯 미소가 열리는 음성이 있다. 내가 갖지 못한 풍부한 매력이 전해지기도 하고 호감과 신뢰가 느껴지기도 한다. 굳이 얼굴을 맞대지 않아도 무방하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요즘도 매일 듣는 라디오 프로가 있다. 그 방송은 처음부터 끝까지 놓치기 아쉽지만 마지막까지 들어야 할 이유가 있었다. 안개 낀 것처럼 불투명한 하루를 매일 맞이하던 시기에 마무리 인사가 얼마나 든든했는지 모른다. “내일도 당신의 아침과 함께할게요.”라며 끝을 맺었는데 이심전심 내 마음 다 안다는 듯해 목소리만으로 위로받았다. 통화 음성도 그렇다. 가장 편한 자세로 듣고 싶은 목소리가 있는 반면, 마음속으로 예를 갖추고 싶거나 깊이 존경하는 분이라면 절로 자세가 정돈되고 어느새 무릎까지 꿇고 받게 되는 전화도 있다. 물론 개중에는 들으면 긴장이 되다 못해 심지어 불안해지는 목소리도 있지만 이는 뭔가 조금이라도 불편했던 기억 탓이라고 생각한다. 그럴 경우 예민해진 나의 성대에서도 평소와 다른 목소리가 나올 것이다. 이처럼 목소리는 많은 감정을 내포함과 동시에 소통을 대신하는데, 오늘날 목소리 듣기 어지간히 힘든 시대에 살고 있다.
머리를 떠나지 않는 기사가 있다. 1인 1 스마트폰 시대인 요즘, MZ세대 직장인 중에는 전화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고 한다. 그들은 전화 공포증(Call phobia)으로 통화 자체를 기피하는데 어려서부터 문자나 이모티콘, SNS에 익숙해 긴 글을 좋아하지 않는다. 줄임말이나 기호만으로도 감정을 표현한다. 가족이나 또래와도 아무 문제 없이 소통해 왔기에 오히려 일 대 일로 이뤄지는 전화 예절이 어렵다는 것이다. 스마트 폰 안에서 능숙하던 소통이, 상사와의 대면이나 통화에서는 불통이 되는 바람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집 전화가 없어서 동네에 전화 있는 집 신세를 져야 했던 세대와, 집 전화 따위는 필요 없이 각각의 스마트폰 세상 속에서 자란 세대가 어찌 같겠는가. 공중전화 부스 앞에서 줄을 서던 세대와 손가락 하나로 세계 소식을 접하는 세대가 다름은 당연하다. 그 젊은이들이 보기에 내가 얼마나 답답할까? 일찌감치 메신저 친구나 맺고 일사불란하게 계약 체결할 것이지, 연결되지도 않는 전화나 주야장천 해대는 나 같은 사람은 얼마나 비합리적으로 보일까? 인정은 하면서도 씁쓸하기 이를 데 없다. 통화 연결일랑 일찌감치 포기하고 그들의 요구에 굴복해야만 상담이 이뤄지는 현실이….
새로 생긴 바람이 있다면 나는 더 많은 목소리를 접하고 싶다. 저마다의 분위기와 성격, 기분, 감정을 음성으로 파악하는 건 흥미롭고 신기한 작용이 아니던가. 특히나 젊은이들의 푸릇푸릇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