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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윤이 Jan 27. 2024

백두대간(신풍령에서 부항령까지  10시간 30분 산행기

금요무박 세 번째 산행이다.

신풍령에서 눈이 조금 쌓인 길을 걷는데

눈밑은 얼음이 얼어있었다.

우리 일행은 아이젠을 착용하고 걷기 시작했다.


신풍령 빼재



이번산행은 1200 고지여서 부담 없이 걸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마음 가볍게 출발했다.

야간산행의 묘미는 어둠 속에서는 보이지 않아

힘든 것을 조금은 줄이고 올라간다는 이점이 있다.



신풍령상고대



흐려서 밤하늘의 별조차 보이지 않는 밤

머리에 아프게 부딪히는 것이 있어 해드랜턴을 들어본다

해드랜턴 앞에 펼쳐진 겨울왕국

마법에 걸린 듯 꽁꽁 얼어붙은 나무는 말이 없고,

1400 고지에서 발생하는 상고대가

이곳 1,200m를 올라가는 곳에서 만나게 되었다.


선두에서 밀리면 잠시 쉬어 주변을 둘러본다.

하늘을 바라보면  깊은 바닷속에 들어와

산호초 숲을 걷고 있는 기분이 든다

다래나무의 상고대는 축제에 달아놓은 리본 같다.


마냥 감탄만 할 수 없는 것은

얼어붙은 길 위에 눈이 내려서

비탈길은 미끄러워 넘어지기 일쑤다.


신풍령


어둠이 사라지는 순간은 찰나와 같다.

해드랜턴을 켜고 발밑만 보고 걷다가 잠시 멀리 바라보니

흐려서 보이지는 않지만 동이 트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눈에 풍경이 보이는 시간부터 몸의 무게를 느끼게 된다.



백두대간길에 상고대


낮은 산에서 상고대를 보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

축제에 초대받은 것처럼 마음이 설레기 시작했다.

자연과 함께 하는 것이 힐링이 된다는 것은 이런 기분이다.

산에 오르면 내 마음은 20대의 아장 아름다운 순간으로 돌아간다.



대덕산상고대



대덕산상고대

20대의 여린 마음으로 눈꽃 축제를 즐기고 있다.

고개를 숙이고 요리조리 눈꽃이 만발한 숲을 즐긴다.

누구나 할 것 없이 그들도 20대의 청춘으로 돌아간 것 같다.

환호성을 친다.

" 한라산의 상고대보다 더 아름다운 것 같아요."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으며 우리 일행밖에 없는 이 공간이 너무 좋다.





코로 흠~음 거리며 맑은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시고

폐를 넓힌다음 입으로 길게 후우~하고 내뱉는다.

이렇게 맑은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시면 기분이 좋아진다.





산정상의 표지판도 꽁꽁 얼어붙어 이정표를 볼 수없다.

산정상에서는 사진한컷 찍고 빨리 내려가는 것이 찬바람에 대한 예의다.



갈길이 지체된다.

정해진 시간이 있는데 아름다운 상고대를 보면서

감탄하고 환호하며

그러나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없다.

왜냐하면

비탈길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겨울왕국이라는 표현이 맞는 것은

나뭇잎도 나무도 꽃들도 모두 꽁꽁 얼어붙게 만들어 놓았다.

"나무는 춥지 않을까?"

라고 말하면, 누군가는

" 나무는 감각이 없어요."

그래, 감각이 있다면 나무들이 살려달라고 소리칠 것이다.

그런데 바람소리조차 없이 살포시 내리는 눈을 소리 없이 맞으며 가만히 서있다.







우리 일행들은 내려가는 길이 미끄러워

쉴 새 없이 넘어지고 일어나고를 반복했다.

아이들이 아니라 웃는 이들은 없다.

혹시 다칠까 걱정을 하게 된다.




사진 찍으며 딴짓을 하다 일행을 놓쳤다.

혼자서 눈 내린 숲을 걷는 것은 좋기도 하지만

외롭고 무섭기도 하다.



어디선가 환청이 들리는 듯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뒤를 돌아봐도, 옆을 봐도 아무도 없다.

후미에 나의 버스파트너가 오고 있는데 중간에 내려갔는지

천천히 걸어도 따라오지 않고 있다.


발자국을 따라서 걷는데 눈이 점점 많이 내려서

땀이난 장갑이 얼어버렸다.

장갑을 바꿔 끼려고 배낭을 열어봤는데 장갑이 없었다.

다시 언장갑을 끼고,

눈 내리 숲이어서 느끼는 외로움을 떨쳐보려고 뛰려고 했다.

아이젠을 한 발에 눈덩이가 붙어서 발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오른쪽발은 발 앞부분이 아프고, 왼쪽은 발 뒤꿈치가 아파오고 있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천천히 걸었다.


부항령까지는 2,800m라는 이정표를 보고 산을 오르고 또 내려가고 있는데

머릿속에서는 대장님이 덕산재에서 식사하자고 할 때 나는 배가 고프지 않다고 걸어왔는데

'그곳에서 택시 타고 갈걸 그랬나.'

내 뒤에 아무도 안 온다면 나는 혹시 눈 위에서 얼어 죽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엄습해 오면

'빨리 걷자'

'그런데 발바닥이 너무 아프다. '

'아이젠을 뺄까? '

'그러다 미끄러져서 다치면 어떻게 해.'

이런 생각을 하며 최대한 부지런히 걷고 있는데 내 눈앞에 세 남자가 서있는 것이 보였다.



부항령가까이


너무 반가웠다.

대장님 하고 두 분의 남자분

선두에서 내가 없어졌다고 연락이 왔고,

후미에는 없다고 해서 중간에 대장님이 기다리고 계셨다.


함께 걸어서 내려오는 길은 끔찍했다.

바람이 불기 시작해서 앞에 걸어간 사람의 발자국이 보이지 않았다.

그분들이 기다리지 않았다면

나는 길을 잃고 헤매었을 것을 생각하니 끔찍했고, 그분들이 너무 고마웠다.


덕산재에서 부항령까지는 높지도 힘들지도 않은 눈 내리는 아름다은 숲 구간이었는데 10시간이 넘는 산행에서 너무 지루했다.

아름다움도 너무 길게 오랜 시간 보게 되는 것은 정말 지루한 것이라는 것도 이번 산행에서 느끼게 되었다.

아래링크를 클릭하면 생생한 동영상으로 눈꽃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V9WkpjPr8T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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