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노인일자리 박람회에서

by 해윤이

10월 어느 날,
지난밤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책상 앞에 붙여놓은
‘노인일자리 박람회’ 일정이
오늘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였다


비가 주룩주룩 쏟아져
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11시쯤,
‘도대체 어떤 일자리가 있나’
확인하고 싶어 집을 나섰다.


비바람에 기온은 뚝 떨어져
쌀쌀했다.
조금 두툼한 옷으로 갈아입고
우산을 들었다.


신발이 젖는 걸 보며
문득 생각했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왜 이렇게까지 일자리를 찾고 있는 걸까.
무엇 때문일까.


집에 가만히 앉아 있어도 될 텐데,
집안일도 쌓여 있는데
나는 왜 비를 맞으며 일자리를 찾아 나서고 있는 걸까.


마음이 착잡했다.


박람회 장소는
집에서 멀지 않은 광장이었다.
금방 도착했다.


노인일자리 박람회는
넓은 광장 한가운데

볼품없이 작은 규모였다.


정사각형 모양으로
하얀 천막들이 둘러쳐져 있었고,
한쪽에는 흰 천 위에
A4용지로 일자리 공지가 붙어 있었다.


경비와 청소도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기업 채용은

고작 한두 개뿐이었다.


또 한쪽에는
구청별 접수 공간이

네 개의 천막으로 설치되어 있었고

각 구청 담당자들이
서류를 접수하고 있었다.


다른 한쪽에는
여성회관, 키오스크, 인지능력 등
뭔가를 ‘배워야 하는’ 기관들이
세 개의 천막을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가운데,
하늘만 겨우 가린 커다란 천막 아래에는
접수도 못한 남자 노인들이
일자리 공지를 올려다보며

고개만 든 채 말을 잃고 서 있었다.


몇몇 노인은

고개를 든 채 오래 공지를 바라보다,

그냥 돌아서는 이들도 있었다.


한 무더기의 노인들이

고개를 들고 공지를 읽고,
마음에 드는 일을 적어
구청 접수대로 향했다.


내가 늦게 온 것인지
접수된 서류는
이미 한 뼘이 훌쩍 넘는 두께가 되어 있었다.


나는 여성회관 천막옆

키오스크 연습하는 곳으로 갔다.


연습을 해보려 했지만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아
그냥 돌아서려던 순간,


디지털배움터에서
안내장을 들고 막 도착한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디지털배움터’를 알고 있었다.


아이들을 가르치며
온라인으로 배워보고 싶었지만


온라인은 수업이 쉽게 열리지 않았다.
오프라인으로 가르치는 곳은
찾지 못하고 있었기에
그 순간, 가슴에 작은 벅참이 올라왔다.


나는 가방 속에
여성회관 프로그램과
디지털배움터 프로그램을 넣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비에 젖은 신발보다
더 무거웠던 건
‘일자리가 없다는 사실’보다
‘일자리를 찾고 있는 나 자신’이었다.


다음 글에서는

이 박람회에서 만나게 된

‘디지털배움터’에서의 시간을

기록해보려 한다.


그것은 일자리를 찾기 위한 배움이었고,

동시에

내가 아직 멈추지 않았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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