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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e Oct 23. 2023

패스트푸드점의 우울, '한국 돌아갈까?'

2016.12.23.

두시 반? 방 보러 오셨죠?


 끝나지 않은 방 인스펙션, 백패커 근처였던 건지 아니면 내 걸음이 빨랐던 건지, 생각보다 일찍 도착한 탓에 건물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세네 명의 사람이 우르르 몰려오더니 선두를 지키던 인상 좋은 사람이 인사를 건네며 "따라오세요!"라길래 냉큼 엘리베이터에 따라 탔다.


 채스우드만이 답이 아닐 거란 생각에 시티 주변 방도 찾아보고 있었다. 광고에는 2인 1실이라 했었는데, 서울 부동산처럼 오늘은 사정상 볼 수 없다 하여 다른 방을 보여준다는 곳이 그곳이었다. 그런데 방을 보자마자 멍한 기분이 들었다. 애초에 4인실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다지만 방마다 이층 침대 두 개에다가 싱글베드(혹은 매트리스)까지 빼곡히 들어차있었고, 거실 한구 석에 잠자리는 물론, 화장실은 총 두 개인데 최대 12-14명 정도 산다고 했다. "대략적으로 이 정도입니다."라는 말이 출발 신호처럼 들리더니 냉큼 신을 신고 밖으로 나왔다.

 시티로 갈수록 환경이 열악하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눈으로 본 현실은 더 안타까운 기분이 들었다. 물론 그 접근성을 잘 활용해서 잘 살면 그만이겠지만, 셰어생으로 살 거라지만 나는 주거에 큰 비중을 가지고 있기에 나에게는 영 아닌 것처럼 보였다. 이렇게까지 지내야 할까 생각도 들었지만, 아마도 시티의 살인적인 방세와 시티 라이프를 꿈꾸는 수요가 어떻게든 앙상블로 유지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짐작만 해볼 뿐이다.


 멀리 간 것도 아니요, 많이 걸은 것도 아닌데 그 방을 보고 나니 유난히 피로감이 몰려왔다. 오랜만에 이른 아침에 나오니 들뜬 기분에 신기한 빌딩 사진도 찍고, 들어가는 길에 점심이나 먹고 갈 겸 근처 패스트푸드점을 찾았다.


지나가다가 본 신기한 건물. 빌딩에 식물이 자라고 있어서 눈에 띄었던 Central park ave.


(giggling) What???


 성난 마음에 나도 한 번 더 크게 'WITHOUT POTATO'라고 소리쳤지만, 주문대 너머 직원 둘이 날 보며 키득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무시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아니, 내가 저쪽 말을 못 알아듣는 것이나, 저쪽이 내 말을 못 알아듣는 것이나 피차일반일 텐데, 돈을 내는 내가 왜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나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애들이 버르장머리가 없구나 싶다가도, 외국에 나와서 영어 하나 잘 못하는 내가 문제지 하는 생각이 들자 깊은 한숨과 함께 고개가 숙여졌다. 이럴 때 생각나는 얄미운 말, '억울하면 잘하든가!'.


 사건은 근처 KF*에서 터졌다. 우리나라로 치면 감자튀김, 음료를 포함한 세트 메뉴를 여기서는 Meal로 불렸는데, 여기서 파는 Meal은 치킨 조각까지 더해져 좀 과하게 풍성한 메뉴였다. 원래 감튀를 즐기지 않았는데 버거에 치킨까지 오니까 그날따라 potato chips를 빼거나 다른 메뉴로 바꾸고 싶어졌다. 외국이니까 커스텀 주문이 활성화되어 있을 거란 왠지 모를 기대감에 안 되는 영어지만 'potato change'라든가 'without potato'를 외치며 메뉴 구성을 바꿔보려고 말을 걸어봤다. 내 의중이 잘 전달됐을 리 만무했고, 학생으로 보이는 남자 점원 둘이서 머리를 맞대며 내 말을 들었지만, 도통 알 수 없다는 제스처와 고개만 갸우뚱거릴 뿐 영 반응은 없어서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손으로 가리키며 meal을 주문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버거랑 콜라만 달라고 했어도 될 일인데, 세트메뉴가 더 저렴할 거란 생각에 그 생각까진 못했던 거 같다.


 박스로 나온 Meal을 우걱우걱 해치우고 나가려는데 또 다른 난관에 봉착했다. 결국 남긴 음식물 쓰레기를 어디다 버려야 할지 모르겠는 것이다. 호주 와서 두 번째 패스트푸드점 방문이다 보니 쓰레기 버리는 것 하나도 왠지 조심스러운 상태였는데, 고민하는 찰나 다른 사람이 그냥 중앙의 쓰레기통에 한꺼번에 버리는 걸 보고 따라 해야겠단 생각했다.

그냥 버리고 가도 될 텐데 왠지 모를 오기가 생겼다. 나를 비웃은(-다고 여겨지는) 직원에게 한 마디라도 더 걸어보고 나가자는 마음이 생긴 것이다. 급하게 영어사전으로 '어디 버려요'라는 예문을 찾아봤다. 가장 위에 뜬 지문을 보고서 몇 번을 입으로 외운 뒤에 아까 주문받던 직원 앞에 가서 당당히 물었다.


Excuse me, where should I put this trash?

 어색한 표정으로 나를 보더니 중앙에 쓰레기통을 가리키며 뭐라 뭐라 말했다. 뭔 말 인지는 모르겠지만 소심한 복수를 마친 나로서는 아주 당당한 모습으로 "Thank you!"를 날리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쓰레기를 버렸다.


 '달링하버 맥날 콜라 투척사건'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번 더 패스트푸드점의 악몽이 시작된 것이다. 패스트푸드를 줄이라는 신의 계시인 걸까? 하필이면 이제야 두 번 가본 패스트푸드점 모두 하나씩 일이 터졌으니 말이다. 누군가는 별 일 아니라고 할 수도 있지만, 세상 앞에 쭈구리가 된 상태에서는 아주 작은 일도 어마어마하게 크게 느껴지는 법이다. 부끄러움 창피함이 올라오더니 불쑥 화도 나고 아무것도 하기 싫어졌다. 방에 도착하고는 베개에 머리를 박고서 그대로 누워있었다. 생각을 비우려고 하면 할수록 희한하게 더 또렷이 떠오르는 게 참 힘들었다. 방도 Job도 가망 없어 보이는 지금, 하물며 내 돈 주고 사 먹는 식당에서조차 이렇게 무시당하고 살아야 하나 싶고, 진짜 '나만 왜 이렇게 안 되는 걸까?' 하는 자조 섞인 생각만 맴돌았다.

톡으로 푸념을 친한 친구들에게 쏟아냈다. 친구들은 '처음에 적응하느라 그래' '악센트, 억양 때문에 그럴 거야' 같은 말과 미국에 반년 있어본 친구는 '나도 적어도 한 달은 걸렸던 거 같아' 같은 말을 남겨줬다. 평소 같으면 위로받고 나서는 불만도 싹 가시는 편인데, 이 별 것 아닌 일에 이렇게 반응하고 있는 나 자신이 문제란 생각과 모든 근원은 내가 호주에 와있기 때문이란 잠정 결론이 나고 나서는 마음속으로도 꺼려왔던 그 생각이 불쑥 튀어나왔다.


한국, 돌아갈까?


 아마 포기 세계 신기록이 있다면 나도 지역 예선 정도는 참가할 수 있지 않을까? 일주일도 아니고 무려 나흘 만에 한국에 돌아갈 생각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집 나가면 고생, 외국 나가면 진짜 고생할 줄은 알고 있었다지만 이런 사소한 일에도 스트레스받을 줄은 몰랐다. 물론 진짜 고생은 시작한 것도 아니겠지만 왜 그렇게 '구장이 명장'이란 말이 떠오르던지, 여태껏 살아온 한국에서의 삶이 그립고 간절해졌다. 그런데 '돌아갈까?'생각 이후 마음 반대편에서는 다른 소리가 들려왔다.


'일주일 만에 돌아왔다며 동네방네 소문나진 않을까?'
'한국에서 답이 안 나와서 와놓고 돌아간다고 뾰족한 수가 있을까?'
'아니, 당장 가더라도 여기까지 와놓고 뭐라도 해보고 가야 하는 게 아닐까?'


 나는 결정에 많은 시간이 필요한 고민계의 킹, 킹 고민남이었지만 포기에 있어서는 부리나케 잘 결정하는 거 같았다. 불현듯 돌아가긴 가더라도 시드니 랜드마크인 Sydney Harbour Bridge라도 가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 홀리데이 시즌에는 어디든 엄청 붐빈다. 점심, 저녁시간대 패스트푸드점은 전쟁터 같았다. 나는 저 일은 진짜 못하겠다는 생각을 한 적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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