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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e Nov 05. 2023

성냥팔이아재의 성냥, 크리스마스 모임, 꿈인가?

2016.12.25.


크리스마스 당일, 정작 아침이 되자 걱정이 됐다. 혹시라도 사이비 같은 곳에 잡혀가는 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컸고, 게다가 종교를 가지지 않은 내가 가서 종교활동 하시는 분들 사이에서 민폐 끼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컸다. 그래도 약속했는데 안 가기도 뭣해서 일찌감치 나서기로 했다. 아참! James 할아버지는 점심 즈음 나선다고 하셨다. 사진도 찍고 작별인사를 나눴다. 감사한 James 할아버지.


.

익숙한듯 익숙하지 않은 Central station plaform. 사전에 목적지와 열차 시간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는다면 생각과는 영 다른 곳으로 가게 될지도 모른다.


'분명 여기가 맞는데…'


 어제 받은 주소를 구글맵 목적지에 넣고서 둘러보는데도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평소 교회라고 하는 이미지는 전혀 보이지 않고, 기껏해야 불 꺼진 텅 빈 사무실만 보였다. 그냥 혼자 찾아보려다가 안 되겠다 싶어서 연락을 드리니, 아까 지나쳤던 큰 창고 같은 건물에서 인스펙션 때 만났던 남편분을 만날 수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나누며 그때 하지 못한 통성명을 했다. 내 생각에 0호씨가 적어도 동갑일 거란 예상을 뒤엎고, 나보다 두세 살은 어린 나이라기에 서로 놀라며 어색한 미소만 짓는 상황이 펼쳐지기도 했다. 그분을 따라나서며 그동안 알던 교회의 모습과 다른 것 같다고 말씀드렸더니, 예배가 있는 날에 장소를 빌려서 사용하고 있고, 딱히 교회의 겉모습에 치중하기보다는 이렇게 예배드릴 수 있고 더 많은 사람에게 맛있는 밥을 대접할 수 있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한다는 답을 들을 수 있었다. 종교를 가지진 않았지만 예배시간을 보내면서 오랜만에 나만의 시간을 갖게 된 거 같고 마음 정리하는 순간이 되었다.

 드디어 기다리던 점심시간, 이번에도 내 예상과는 달리 이곳에서 식사 자리가 펼쳐지거나 근처식당을 가는 게 아니라, 크리스마스 기념으로 장소 대여해 준 분이 계셔서 그곳으로 이동해서 식사하고 행사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선물교환식도 있을 예정이라고 했는데, 어제 듣긴 했지만 준비하지 못해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는데, 0호씨 부인 00씨가 핸드로션을 여분으로 챙겼다며 포장지와 챙겨주셔서 간신히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워홀러다 보니 호주에서 처음인 게 참 많은데, 대중교통만 이동하다가 이번에 자가용을 처음 타보게 됐다. 뒷좌석에 타고서 '언제 출발하지?' 하며 멀뚱멀뚱 있는 내게 "뒷좌석도 안전벨트 필수예요"라고 알려주셔서 헐레벌떡 냉큼 벨트를 맸다. 요즘에는 우리나라도 정형화되어 있지만 그때는 정말 몰라서 그랬었는데, 이후로는 뒷좌석에서도 미리미리 벨트 사수를 하게 됐다. 차에는 0호씨 부부와 지인, 나까지 총 네 명이서 탔다.


차가 출발하고 왔던 길과는 다른 처음 보는 길로 멀어져 가기에 당장 파티에 대한 기대감보다 '밥 먹고 집에 어떻게 가나?' 하는 걱정이 앞섰다. 바깥의 무더위를 날려주는 빵빵한 에어컨 바람을 쐬고 있으니 방금 전의 걱정은 무안할 정도로 금세 사라졌다. 며칠 전 워홀 선배인 친구와 통화에서 차가 있으면 호주생활을 훨씬 더 편해질 거란 얘기에 콧방귀를 뀌었었는데, 역시 먼저 겪은 사람은 다르구나 하고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차에서는 워홀러 필수 질문인 '호주에 온 지 얼마나 됐는지' '한국에서는 무얼 했는지, 어디에 살았는지' 등등 질문이 서로 오갔다. 일주일도 안된 워홀 생초보인 내 얘기는 호주보다는 한국에서의 삶에 초점이 맞춰지곤 했는데, 한국에서 내 직업인 물리치료사를 듣고서 관심이 모아지기도 했다. 이유인즉 호주에서는 'Physiotherapist'라고 하면 높은 연봉은 물론, 삶의 만족도도 높은 편이라며 '호주에서 Physio 공부하세요!'라는 말을 듣게 됐다. 한국에서도 호주에서도 잘 살고 있는 Physio(물리치료사)가 많은데, 나는 그 대열에서 도망쳐 나온 거라고 말은 못 하겠고, 괜스레 뿌듯하면서도 어색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몇 개의 터널과 몇 개의 교차로를 지나고 나니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여러 대의 차량이 주차하고 사람들이 내린 곳을 보니 그동안 인스펙션에서 본 적 없는 드라마에서 미국 중산층이 살 것 같은 단아한 주택들이 줄지어 있었고, 그중 한 곳으로 향하는 0호씨 부부를 따라나섰다.

어서 오세요! 어여 들어와요. 반가워요.


 환한 웃음으로 반갑게 맞이해 주시는 집주인 가족분들의 환대에 놀랐고, 못해도 백 명은 족히 돼 보이는 사람들이 이미 들어가고도 남아 있는 저택의 규모에 더 놀랐다. 순간, 앞으로 호주 생활하면서 이런 곳은 절대 살 수 없으리란 생각과 함께 이런 집에 살려면 대체 돈이 얼마나 많아야 할까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들어오고 나가는 인파에 떠밀려 집 안쪽으로 들어가게 됐다. 안에는 가족 단위의 사람들이 많이 보였고, 그만큼 더 많은 아이들이 보였다. 호주에서 이렇게 많은 아이들을 한꺼번에 본 것도 처음이었지만, 영어로 의사소통하는 아이들 모습에 신기한 마음이 들었다. 아 맞다, 여기 호주지?

 주방과 거실에는 음식 준비에 분주했고, 차려진 음식도 뷔페 정찬에 가까울 정도로 모양새를 갖추고 있었다. 모든 상황이 처음이라 어색해하는 나를 0호씨가 웃으며 안쪽 자리로 안내해 줬고, 거기서 앉아서 분위기를 살피고 있었다. 곧이어 옆에서 식사 이후 있을 선물교환식 접수대가 차려졌고, 나도 줄 서서 기다리다가 아까 얻은 선물을 내고 번호표를 받았다.

선물 교환식에서 아이들에게 줄, 어른들끼리 교환할 선물과 변호표를 교환하는 사람들.
풍선과 해맑은 아이의 모습.
성냥팔이아재의 재림, 두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가 않았던 정찬. 벅찬 마음에 진심으로 감사함을 느꼈다. 민망함 따윈 없다!
대체 이게 꿈이야? 생시야?


 꿈인지 생신지 헷갈려서 오른쪽 볼을 꼬집어 봤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호주에서 삼겹살이라니…, 일을 구하고 정착하고 나면 그때서야 먹을 수 있을 거 같았던 삼겹살. 바비큐 파티라고 들었지만 야외 그릴에서 조금씩 구워 나르는 정도로 생각했는데, 이건 뭐 사람 숫자만큼 거의 공장 수준으로 규모 자체가 달랐다.

 삼겹살, 김치, 연어, 새우 등등 휘황찬란한 뷔페 음식 앞에 허겁지겁 담다 보니 내 플레이트만 음식이 수북이 쌓여있었다. 것도 그런 것이, 요 며칠간 돈 좀 아껴보겠다며 자발적 1일 1식을 자처하던 나였기에, 이 맛있는 음식 앞에 이성이 풀린 것도 당연했다. 민망함도 잠시 후딱 점시를 비웠더니 음식을 준비하시던 여성분 중 한 분이 새우튀김을 또 덜어주셨다. 그 옆 삼겹살 구워주시는 분도 고기를 덜어주셨고 이건 뭐 정말 지상낙원이 따로 없었다. 적응과 정착만 떠올리던 내게 이런 꿈같은 일이 벌어지다니…. 이게 진정한 크리스마스 선물구나 싶으면서도, 이건 마치 성냥팔이소녀가 켠 성냥불은 아닌가 싶을 정도로 환상처럼 느껴졌다. 아, 성냥팔이소녀 말고, 성냥팔이아재.  슬슬 식사는 끝이 나고, 자리가 치워지면서 다음 차례인 선물 교환식 차례가 되었다.




P.S

 나의 일상이 상대방에게는 기적처럼 다가올 때가 있다. 타국, 타지에서의 삶에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손 내밀어준 J호씨 부부에게 다시 한번 감사인사를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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