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2.26.
나의 여행 동료는 칠레 청년 Mariano. Company의 어원이 '함께(com-), 식사(-panis)'를 나누는 것이라고 했던가? 같이 Free hotdog를 타러 간 덕분에 금세 친해졌다. 핫도그 말고도 친해진 이유라면 둘 다 영어 실력이 고만고만해서 오히려 서로에게 부담을 덜어준 영향도 있었다. 어쨌든 Tronga Zoo에 같이 가기로 했는데, 급하게 맞춘 일정이다 보니 둘 다 오전 일정은 이미 차서 점심때쯤 보기로 했다. 나는 시티 쪽 방 인스펙션을, Mariano는 시드니 시티투어를 하고서 말이다.
일정을 무리하게 잡은 탓에 결국 일이 터졌다. 내가 약속 시간을 맞추지 못하고 늦어버린 것이다. 시간은 벌써 12시, Mariano는 벌써 Circular quay station에 도착한 상태이고, 나는 Hyde park근처를 지나고 있었다. 방이야 후딱 보고 가면 될 것 같았는데 박싱데이(Boxing day)로 몰린 인파까지는 생각지 못한 탓이었다. 쇼핑하러 온 사람과 여러 행사들까지…, 인파가 얼마나 몰렸던지 발 디딜 틈이 없다는 걸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인파에 밀려 길까지 헤매다가 같은 길을 두 번이나 돌게 됐고, 예정했던 12시 반은커녕 12시 40분이 되어서야 도착했다. 타려던 페리는 진작에 놓쳐버렸다. 십 분도 아니고, 무려 삼십 분이나 기다린 친구에게 너무 미안했다. 연신 미안하다고 하는데 이 친구는 싱긋 웃더니 이렇게 말해줬다.
Hah, don't worry. :) We can take a next perry.
진짜 미안하면서도 고맙고 그랬는데 다음 페리 일정을 보니 무려 한 시간 뒤에나 있는 게 아닌가?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 한국인에 대한 신용을 깎아먹는 내가 부끄러웠다. 그런데 한 삼십 분 정도 지났을까? 다행히도 예상 시간보다 일찍 Tronga zoo행 페리가 도착한 것이다. 시간표에 적힌 시간과는 달랐지만 Mariano도 타면 될 거 같다고 하길래 나도 같이 탔다.
페리를 타고나니 페리가 일찍 도착한 이유를 알았다. 우리가 탄 페리는 Taronga zoo 직행 편이 아니라 Darling harbour - Circular quay를 모두 들리는 순환형 페리여서 좀 더 일찍 도착한 모양이었다. 어쨌든 목적지인 동물원에 올 수 있어 다행이었다. 미리 구매한 패키지는 '고속페리(24시간)+타롱가 주 입장권+케이블카 사용권'이었는데, 그 덕분에 오르막으로 시작되는 코스를 맨 위에서부터 내려오며 구경할 수 있게 되었다.
기대가 컸던 탓일까? 신기하고 재밌긴 했지만 생각보다 즐겁지는 않았다. 엄청 활동적인 동물의 모습을 상상했었는데, 정작 현실은 축 늘어져 휴식을 취하는 모습만 볼 수 있었다. 호주를 오기 전 해보고 싶은 것을 '사소한 버킷리스트'라며 써둔 적이 있는데, 그때 '호주 동물과 셀카 찍기'를 벌써 해낸다는 기대감이 컸는데, 누워서 자고 있고, 심지어 캥거루는 누워서 똥까지 누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됐다. 사실 셀카의 대상도 쿼카였는데 서호주가 아니다 보니 여기서는 힘들었고, 동물들도 엄청 피곤하겠다는 생각이 들고나니 셀카 생각도 잠시 접어두게 되었다. 하기사 이 더운 날에 사람도 못 배기는데, 동물이라고 오죽할까? 아니다, 도착한 시간이 동물들 낮잠 시간이었을까? 알 수 없다.
구경을 마치고 Mariano는 Manly beach에 갈 예정인데 같이 가도 되고 안 가도 된다며 물어왔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앞날 걱정으로만 치면 당장 숙소로 돌아가는 게 맞는데, 희한하게도 또 지금 아니면 언제 가보겠냐는 호기심도 생겨서 가겠다고 하고 따라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