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2.27.
마치 아이가 부모에게 학교에서의 일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나 또한 종민 아버님을 보자마자 인사와 함께 말문이 터져버렸다. 나갔더니 공휴일이라 터미널과 은행이 닫혔던 일, 결국 버스도 기차도 아닌 브리즈번행 비행기표를 예약한 일까지…. 쉴 새 없이 쏟아내고 나니 겨우 하루이틀 본 게 전부인 사람에게 이렇게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다 하는 게 옳은 일인가 싶다가도, 매번 친구들에게만 토로할 수도 없다는 생각과 얼마 만에 우리말로 이렇게 실컷 떠드는 건가 하는 생각에 상대방의 의사 따위는 생각지 않고서 계속 말을 이어갔다. 내 이기적인 모습에도 불구하고 '잘된 일이다' '고생했다' 하시며 리액션해 주시는 아저씨의 모습을 보자 그제야 민망함이 들었는지 말고리를 끊을 수 있었다.
엉킨 실타래 속에서 우연히 실마리를 발견한 것처럼 단 하나의 결심이 그동안의 문제를 이렇게까지 단 한 번에 자유롭게 만들어줄 줄 알았더라면 진작에 몇 번이고 결심을 했어야 했는데 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런데 내가 간과한 것은 그 선택지가 없던 것도 아니었고, 그보다 더 나은 실타래를 찾으려 했던 것, 그리고 그동안의 시간은 나머지 실타래를 놓아주기에 필요했던 시간이라고 생각하니 피식하고 웃음이 새어 나왔다.
당장 내일 브리즈번으로 떠나게 된 나, 호주에서의 처음 일주일을 함께한 시드니에서 마지막 밤이 되었다. 어떤 단어든 앞에 '마지막'이란 단어가 붙고 나면 왠지 모르게 더욱더 싱숭생숭 해지는지, 그 어색함에 고개는 천장을 향하고 절로 한숨이 새어 나오기도 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일주일, '기왕이면' 하고 떠올린 생각은 항상 아쉬움이 살짝 묻어 있어서 그간 시드니에서 일들이 휙휙 지나갔다.
새해가 되기 전 시드니를 떠나게 되면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전 세계 사람들이 찾아온다는 시드니에서의 'New Year Fireworks'를 목전에 두고서 떠난다는 점이었다. 한국에서 불꽃축제니 하며 한강변이 가득 차는 것도 뉴스로 봤는데, 그보다 규모가 크다던 불꽃놀이를 직접 두 눈으로 볼 기회를 놓치게 됐으니 말이다. 사실 비행기를 예약할 때도 보고 갈까 하고서 고민 안 한 것은 아니었지만, 12월 27일에 연휴가 낀 것처럼 1월 1일 또한 연휴가 많아서 일정을 늦췄다간 시드니에서 한 2주는 더 묵어야 할 상황이 되어버리는 게 불가요소가 되었다. 얻는 게 있으면 또한 잃는 게 있는 법, 어쨌든 시드니야 언제든 다시 올 수 있을 것이고, 이런 아쉬움조차 없다면 무엇으로 이곳을 그리워하나 하는 생각에 이르자 그제야 좀 더 브리즈번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끝과 시작', 불과 일주일 전에 한국에서 호주를 걱정했던 나였는데, 이렇게 호주 안에서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있다니…. 온통 걱정뿐일 줄만 알았는데 나도 모르게 들뜬 것을 보면 설렘과 기대감도 조금씩 섞여있음에 분명했다. 출국 전부터 시드니에서 반갑게 맞이해 준 영준이처럼, 브리즈번에는 대학교 실습 때 함께 했던 동산이가 살고 있어서 걱정을 덜어낸 것도 있었다. 남에게 먼저 의존하려는 건 잘못된 일이지만, 상황이 극에 치달으니 어떻게든 지푸라기도 잡고 살고픈 게 사람 욕망이구나 싶었다. 호주를 오고 나서 이런 다짐을 많이 하게 됐다. '나도 꼭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짐정리도 하고 잔잔한 저녁을 보내고 있는데 갑작스럽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지난 크리스마스 파티에 초대해 줬던 주호 씨로부터 걸려온 전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