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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이 아직 남의 불일 때' 나의 산불 재난일지 01

'산불이 아직 남의 불일 때'

by 영이

나의 산불 재난일지 01

- '산불이 아직 남의 불일 때' (25.03.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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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불이 아직 남의 불일 때

2025년 03월 23일 일요일


일요일 아침, 왠지 모르게 방 안으로 매캐한 냄새가 들어오는 것 같아 바깥을 나갔더니 온 세상을 뿌연 연기가 뒤덮고 있었다. 코 끝과 목구멍에 들어찬 연기는 절로 헛기침이 나오게 만들었고, 남일인 줄만 알았던 산불이 이렇게 가까워졌다는 사실에 살짝 섬뜻해지기도 했다. 아마도 의성 산불의 여파가 연기로써 여기까지 닿은 게 분명했다.

산청과 의성 산불, 그중 관심이 가는 건 역시 의성 산불이었다. 위치상 의성과 안동의 남쪽 접경인 우리 동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불씨라지만 튈 거면 가까운 곳에 튈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땐 거기까지 생각이 닿지 못한 탓에 '아직 우리 동네는 괜찮네' 정도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2025년 3월 24일 월요일


오후 4시 즈음, 근무 중에도 계속해서 울려대는 재난 문자에 산불이 진짜 지독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나 아직 남일인 산불이기에 확산세가 어떤지 궁금해서 네이버 지도에 들어가서 CCTV 보기를 했다. 이 지역 산불 발원지로 알려진 의성군 안평면 쪽 도로를 보니 아직도 불꽃이 일렁이고 연기는 자욱했다. 또다시 울리는 재난 문자에는 의성에서 동안동, 영덕 방면으로 이어지는 곳에 산불이 확산되었단 이야기 적혀있었다. 드디어 안동에도 오는구나 하는 생각에 문자가 말한 근처 도로 CCTV를 틀었더니 산에는 불꽃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그러고 나서 몇십 분 뒤 다시 켜보니 다행히도 산기슭에 붙은 불은 금세 잡혔으나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자욱한 연기 때문에 화면이 잘 보이지 않았다.

공용 컴퓨터로 보고 있으니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문자로만 보다가 직접 불난 곳을 보고 있으니 그 위험이 좀 더 체감되는 모양인지 다들 큰일이네라는 말만 연신 내고 있었다. 우리 집도 마을 두어 개만 지나면 바로라는 말에 남자 친구가 소방관인 후배가 선배집은 괜찮냐며 ‘불씨가 날아가면 3-4킬로도 훌쩍 넘어간대요’라는 말에 ‘그럼 안되는데..’ 정도 답하게 되었다.


밤 9시를 넘긴 시간, 문득 오후에 봤던 CCTV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한 생각에 다시 네이버 지도 CCTV보기를 켰다. '분명 아까까진 괜찮았는데..? 같은 장소 맞나?' 싶을 정도로 눈앞에 펼쳐진 산불 모습에 이게 될 일인가 하며 일이 점점 더 심각해짐을 느꼈다. 안평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붉은색 띠를 형성한 것처럼 보이는 산 능선을 따라 번지고 있는 불꽃, 밤이면 헬기도 못 뜬다는데 이게 될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걱정은 됐지만 위협적이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사람은 정말 코앞에 일이 닥칠 때까지 아무것도 알 수 없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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