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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초의 머뭇거림, 선을 지키는 시간

by 영이

2초의 머뭇거림, 선을 지키는 시간


SNS를 둘러보던 어느 날, 친구들의 프로필 사진이 하나둘 바뀌어 있는 걸 봤다. 편안한 분위기에 익숙한 그림체, 본래 사진이었던 모습이 지브리 스타일로 변해 있었다. 뉴스에서도 '지브리 프사 열풍'이라는 제목으로 유행을 보도하고 있었다. 신기하기도 해서 '나도 해볼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막상 해보려다 왠지 모르게 선뜻 내키지 않아 주저하게 되었다.


며칠 뒤, 한 인터넷 기사를 보며 그때 왜 찝찝한 기분이 들었는지 알 수 있었다. 일본 인기 애니메이션 <원피스>의 감독 이시타니 메구미는 이렇게 말했다.

"(AI를 활용한 지브리 화풍의 이미지 생성은) 지브리 가치를 떨어뜨리는 행위이며, 지브리가 싸구려 취급당하는 걸 견딜 수 없다."

더불어 <이웃집 토토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 등 지브리 대표 감독인 미야자키 하야오도 AI로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것에 대해,

"삶에 대한 모독, 이 기술을 내 작업에 쓰고 싶지 않다"라고 말한 바 있다.


누군가의 창작물을 너무 쉽게 소비하고 있는 건 아닐까. 오랜 시간과 정성이 담긴 결과물을, 우리는 얼마나 가볍게 다루고 있었을까.


'지브리풍 이미지' 이전에도 저작권이라는 단어가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던 경험이 있다. '폰트(글꼴) 업체의 저작권 사냥' 이슈가 터졌을 때였다. 여러 커뮤니티에 폰트 디자인사의 법무법인으로부터 저작권 침해 소송을 당했다는 글이 쏟아졌다. 놀라웠던 건, 프레젠테이션 프로그램 안에 기본 제공되던 특정 폰트조차 프로그램 외 사용 시에는 라이선스 침해가 될 수 있다는 점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무료 폰트를 찾아 사용했지만, 그마저도 기간 제한, 영리/비영리 구분 등 숨겨진 조건들이 있었다. 저작권은 창작자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라 여겼는데, 그때는 마치 덫처럼 느껴졌다.


저작권은 일상에서 조금 먼 개념처럼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사례들을 마주하면서 자연스럽게 생각이 달라졌다. 좋아하는 것과 사용하는 것 사이에는 분명 경계가 있다는 것을. 그 경계선을 지키는 일은 누군가의 창조물에 대한 존중으로 볼 수 있다. 그 선을 무심코 넘어서는 순간, 우리는 작품뿐만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시간과 마음마저 침범하게 된다.


저작권은 마치 '거리두기'와 닮았다. 다가가되 함부로 넘지 않는 것. 마음을 담아 만든 누군가의 결과물 앞에서, 조심스럽게 한 걸음 물러서며 그들의 시간과 노력을 존중하는 것. 누군가 내 시간을 가볍게 여기지 않기를 바라는 것처럼 우리 역시 타인의 창조물 앞에서 그 거리를 지킬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기술의 발전과 함께 우리는 점점 더 쉽게 누군가의 결과물에 손을 뻗을 수 있게 되었다. 마우스 클릭 한 번, 스크린숏 한 장, 복사와 붙여 넣기. 우리가 잊기 쉬운 그 짧은 순간, 존중과 침해가 갈린다. 그 찰나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그것을 만든 사람을 떠올릴까.


넘을까 말까?

그 순간의 선택이 우리를 만든다.


저작권을 단지 지켜야 할 규칙으로만 바라보면 다소 딱딱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신호를 지키는 것을 떠올려보면, 단순히 처벌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나 자신과 타인에 대한 존중에서 비롯되기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저작권 또한 같은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저작권에 대해 알게 된 뒤, 요즘은 어떤 결과물을 마주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스스로에게 조심스레 묻는다.

'이건 누가 만든 걸까? 어떤 마음으로 만들었을까?'

단 2초의 물음과 머뭇거림. 그 잠깐의 고민이, 창작을 존중하는 시간이 되어준다.

저작권을 지킨다는 것은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선을 넘지 않는 조용한 배려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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