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피소 아비규환, 희로애락' 나의 산불 재난일지 04

'대피소 아비규환, 희로애락'

by 영이

나의 산불 재난일지 04

- 대피소 아비규환, 희로애락, 25.03.25.(화)



| 한적한 대피소, 대피소 맞나..?


원치 않았지만 가라고 하는 곳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이미 불길이 덮쳤을지도 모를 집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강변 쪽 대로에 차를 올리니 꽉 막혔던 그 도로는 없고 아까보다는 이동 차량이 줄어든 것처럼 보였다. 그렇지, 이건 모두의 피난이 아니라 우리의 피난이었지. 씁쓸하면서도 받아들여야 했다. 이 밤을 보내려면 다른 수가 없으니 말이다. 네비가 알려준 구석길을 따라 곧 용상 길주초에 도착했다.


한적한 입구, 그 주변 몇몇 사람들, 실내체육관에서 보던 풍경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에 아직 준비 중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차 창문을 내리고 건물 앞 불빛 아래 있는 공무원으로 보이는 직원에게 여기로 오는 게 맞는지 물었다. 말을 묻기 전에도 계속해서 전화통화를 하던 그는 몇 번 고개를 끄덕이며 맞다고 하며 손짓으로 안쪽을 가리켰다가 이내 통화에 전념했다. 차로 좀 더 안으로 들어가니 운동장이 있었고, 앞선 건물은 체육관이나 강당으로 보였다. 내가 차를 댄 곳 옆에 아버지도 곧 트럭을 대고서 내리셨고 아까 몇 사람이 보였던 입구 쪽으로 향했다.

불빛이 켜진 1층 입구 쪽에는 계단과 엘리베이터가 보였고, 그 사이에는 생수와 두유, 과자 상자 같은 게 쌓여있었다. 몇몇 모인 사람들은 2층 강당이 대피장소라고 했다. 계단을 올라 2층으로 가보니 먼저 도착한 사람들이 의자와 맨바닥 등등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이 보였다. 텐트는커녕 의자조차 설치되지 않은 모습을 보고서 뭔가 잘못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미심쩍어하고 있는데, 아버지는 고되셨는지 입구에서 가장 먼쪽 구석에 의자 쪽에 가서 앉아있겠다고 하셨다. 탐탁지 않은 상황에 1층으로 내려가 여전히 통화 중인 공무원으로 보이는 남자분에게 여기가 대피장소가 맞는지, 제대로 준비되고 있는지 물어보니, 그 직원분은 체념한듯한 모습으로 여기가 대피장소는 맞는데 여기 있는 직원(공무원)은 자기 혼자뿐이라는 게 아닌가?

여기 혼자시라고요??!


| 얼떨결에 주차요원(+우여곡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 안동초에서는 여기로 가라고 했는데..? 아무리 경황이 없다손 치더라도 아무런 준비도 안된 곳에 사람들을 대피시키는 게 맞는가 싶었다. 그 말을 나누는 사이에도 자동차가 하나둘씩 학교로 들어오고 있었다. 바로 옆 승용차에서는 차 창문이 내리더니 아저씨 한분이 여기가 맞냐며 내가 물었던 질문을 내게 하고 계셨다. 나도 피난민인데... 일단은 여기가 맞다고 말씀드렸다. 차량이 자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한두 대씩 밀리는 느낌이 들었는데, 알고 보니 오는 차마다 강당 입구 근처에다가 차를 데려고 해서 밀리고 운동장 안쪽으로 들어가는 차는 없었던 것이다. 이러다간 운동장 쪽 들어가는 통로마저 막히겠다 싶어서 직원에게 이러다가 길 막히면 더 이상 차도 못 들어올 거 같다고 말하니 곤란한 표정으로 그럼 혹시 잠시라도 봐줄 수 있느냐고 말했다. 상황이 상황인 데다가 이런 건 보고도 모른 체할 수 없는 성격이라 바빠 보이는데 혼자뿐이라는 저 공무원의 말에 조금이나마 일손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장 대피소 주차요원으로 변모하여 아까 안동초에서 차량 통제하던 사람처럼 들어오는 차량을 안쪽으로 안내하게 되었다.

여기 휠체어는 없나요?
거동 불편한 분이 계세요!


안내를 체 하기도 전에 입구 근처에 차를 세운 승합차, 운전석에서 아저씨 한 분이 내리시더니 휠체어는 없느냐고 거동이 불편한 분이 계시다며 물어왔다. 나는 상황을 모르니 옆에 공무원에게 물으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고, 없는 것 같다고, 다만 엘리베이터는 있다고 말씀드렸다. 실망한 모습으로 다시 차로 향한 아저씨는 백발의 노인분을 어깨부축하며 입구 쪽으로 데려오셨다.

한 마을에서 피난 오셨다는 트럭 짐칸에 여럿이 앉아서 오신 어르신들, 시골 부모님을 태워오셨다는 차량, 노인재가센터에서 온 차량까지, 시간이 지날수록 들어오는 차량은 많아졌다. 차량이 하나둘 들어오며 하나같이 묻는 것은 '여기가 대피장소가 맞는지' '차를 입구 쪽에 대면 안되는지'였다. 졸지에 안내요원이 된 나는 대피장소는 맞다고 말씀드리고 차량이 곧 막힐세라 차를 안쪽으로 대야 다음 차량이 들어올 수 있다고 설명드렸다. 문제는 대피 오신 대부분의 어르신의 연세가 많은 편이었고, 거동 또한 좋지 못하다는 점이었다.

차량 운전자 분 한 아주머니는 미간을 세게 찌푸린 채로 왜 입구 쪽에 대면 안되냐고 내게 따져 물으셨다. 앞서 설명한 대로 차량이 막히면 다음 차가 못 들어온다고 말씀드리니 "거동이 불편해서 여기서 안 내리면 안 된다고요!"하고 소리를 치셨다. 이거 뭐 민원 부서도 아니고, 할 수 없이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니 "잠시 댄다고요! 잠시!"라고 하시더니 자그마한 소리로 '공무원도 아니면서 말이야'하는 말이 얼핏 들렸다. 실제로 공무원이 아니기에 안내할 때부터 "저도 대피온 거고 공무원은 아닙니다"라고 설명드렸기에 맞는 말이긴 한데 일을 도우려다가 욕을 먹은 게 뭔가 씁쓸함이 남았다.

그러는 찰나 공무원 관리팀 차량도 몇 대 보였다. 트럭에는 한쪽이 은박지처럼 반짝이는 단열재로 보이는 롤 덩이를 싣고 와서 내렸고, 다른 차에서는 안경 쓴 중년의 여성 공무원의 지시에 따라 뭔지는 모르겠으나 박스를 내리고 옮겼다. 내리는 동안 입구 쪽 차량 진입도 소강상태라 나 또한 2층으로 짐을 옮기는 데 도왔다. 알고 보니 담요 박스였는데, 한 박스당 10개, 그러니까 총 100개 분량의 담요가 들어온 것이다. 이제 좀 공무원이 충원되나 싶었는데 짐을 옮기러 온 것일 뿐 모두 돌아가며 상주하는 직원은 여전히 처음 본 직원 혼자였다. 경황을 차리며 위에도 직원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물으니 한숨을 내쉬며 자신 또한 여기로 배치된 게 아니라 무얼 확인하려고 왔는데, 대피하는 사람들이 몰려서 다시 돌아갈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잠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우린 산불에 대피온 사람인데 이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사람들


혼자 뿐이라며 여기저기 연락하고 있는 공무원을 안타깝게 본 건 나뿐만은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고 대피 온 사람들은 늘어났지만 통제할 인원은 없었는데, 어떤 아저씨와 아주머니께서 그 직원에게 오시더니 이렇게 물으셨다.

"저희가 혹시 여기 카스텔라랑 두유를 나눠 드려도 괜찮을까요? 어르신들이 식사도 못하고 오신 분이 많은 거 같아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보기엔 그분들이 그랬다. 통제하는 직원(공무원)은 없고, 주어진 물자를 그냥 가져다 써도 모를 판국에, 이렇게 물어와 확인하시다니... 직원은 그렇게 해도 괜찮다고 돌려보내고, 또 어딘가에 전화를 받고 통화를 계속했다.


시간이 좀 더 흐르고 학교에도 공무원 인력이 보충됐다. 두세 명씩 두어 번 왔는데, 먼저 도착한 이들은 앞서 가져다 둔 단열재롤을 들고 가서 2층 강당 바닥에 길게 펼쳐 깔아주셨다. 이제 실내체육관의 텐트까지는 아니지만, 대피 장소의 격은 갖춘 꼴이 되었다. 그리고 그중 한 사람을 붙잡아서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전달했다. 여기 주차도 좀 봐주셔야 된다고, 아니면 통로가 막혀서 들어오는 차도 나가는 차도 못 나간다고 말이다. 이제야 내 몫을 다 했나 싶어서 2층에 계신 아버지께 가니 뭐 하다 들어오냐고 그래서 주차정리하다가 왔다고 말씀드렸다. 조금 쉬나 싶다가 아까 주차 얘기를 드렸던 직원분이 강당 안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모습에 주차는 제대로 되고 있냐는 생각에 그분이 아닌 윗 분으로 보이는 이곳저곳 지시하는 공무원 분에게 아까와 같은 주차 이야기를 드렸더니 크게 동의하는 제스처를 취하며 내게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선생님 말씀이 다 맞으시고요! 그런데 아까부터 자꾸 세부적인 것만 이야기하고 계셔요. 큰 것도 정리가 안된 상황입니다.."


어이가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이해가 갔다. 동시다발적으로 터진 산불과 이재민, 이 상황에 이것저것 물어오는 게 나뿐이겠는가? 사람도 없는 판국에 자발적으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다 생각했는데,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돌아서며 혀를 한번 차고서 아버지 옆으로 가서 나 또한 다시 대피온 이재민 모드로 돌아왔다.


| 주차충과 담당이 아닌 자


다이소에서 방한재로 팔던 그런 것을 강당 마룻바닥에 깔고서 앉아있기도 하고, 누워있기도 했다. 내가 나가있던 차에 담요는 일차 분배가 끝난 것인지 아버지는 하나를 가지고 계셨고, 내것은 챙기지 못했다며 가서 물어보라고 하셨다. 간밤을 지내야 한다는 생각에 곧장 아까 내가 물어본 공무원에게 가서 말을 걸었다. "저기요"하는 물음에 "주차요?"라는 답을 들었다. 그렇다. 이곳 공무원 직원 사이에 졸지에 나는 주차만 이야기하는 주차충이 되어 있던 것이다.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고서 다시 담요에 대해 물으니 지금 수용인원이 못해도 200명이 넘는데 보급받은 건 100명분뿐이었다는 설명을 들었다.

다시 자리로 돌아가 지인들에게 받은 안부연락에 답을 하며 시간을 때웠다. 사촌형님부터 오래된 고향 친구, 직장 동료까지.. 괜찮냐는 물음에 괜찮다고 말은 했지만 집이 탈까 봐 걱정된다고 답했다. 친구 중 한 명은 정 안 되겠으면 자신의 집으로 부모님을 모시고 오라며 배려해 줬지만, 부모님은 대피소가 나으며 하루빨리 집으로 돌아가는 것 외엔 관심이 없으셔서 가지 않기로 했다. 또 다른 친구는 담요가 없다는 말에 이불을 가져다줄까 하며 당장이라도 가겠다고 그랬지만 마음만 받겠다고 했다. 안타까운 소식도 들렸는데, 나의 대한 걱정도 있었지만 의성에 본가가 있는 친구는 자신의 부모님 집은 전소되었다며 어떡하냐며 소식을 전해왔다. 뭐라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사람이 참 이기적 이게도 저 집도 안되었지만 우리 집에는 불길이 붙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은 또한 지울 수는 없었다.

시간이 열 시를 넘어가다 보니 제법 쌀쌀해짐을 느꼈다. 바깥에 온풍기처럼 불던 강풍도 밤이 깊어지니 조금은 잔잔해졌지만 차가운 공기로 변모한 모양이었다. '우우우우'같은 소리를 내며 바람을 내뿜는 강당 한쪽 천장에 달린 공조기가 이곳 난방을 책임지고 있는 것으로 보였는데, 희한하게 내가 앉아있는 쪽 천장에도 같은 기계가 있었지만 여기에는 바람도 우우우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밤을 새울 걱정이 앞서다 보니 다시 입구 쪽 공무원에게 다가가서 책임자가 있으신지 여쭤봤다.

"저도 여기 담당이 아닙니다."


당장 한숨부터 나왔다. 책임자든 아니든 상관없었지만 돌아오는 답이 그랬으니 말이다. 아까부터 가진 공조기에 대한 의문을 말씀드리니 학교 관계자분이 알려준 대로 난방 모두 작동하고 있으니 가 계시면 알아봐 드리겠다고 했다. 좀 짜증이 났다. 순식간에 대피소도 달라 가족이 생이별을 한 것도 짜증 나는데, 텐트도 간이침대도 없는 이곳에서 좀 더 덜 추우려고 난방을 알아보는데 담당이 아니라는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답이라니.. 이런 상황을 친구 단톡방에 토로하니, 그 사람들도 모두 이런 상황이 처음이니 그러지 않겠냐며 내 편은 안 들어줘서 또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돌아가 앉아 있어도 해결되진 않았다. 후에 제어장치에 우리 쪽 공조기를 켜는 장치는 없다는 설명을 들었다.



갑작스러운 대 혼란의 상황이지만, 정부 부처에서 이렇게까지 매뉴얼이 없는가 싶었다. 그래, 백번 양보해서 동시다발적으로 터진 상황에 주먹구구 식으로 밀어 넣었다고 치자. 문제는 당장 센터를 만들기에 급급해서 모든 물자며 인력이며 처음 실내체육관에만 다 때려 넣었으니 추가로 신설된 대피소는 열악할 수밖에 없었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 실내체육관 대피소에는 저녁 식사 나눔 배식라인도 있었는데, 여긴 열 시 열한 시가 넘어가도록 주어진 건 카스텔라와 두유, 생수뿐이었으니 말이다. 몇몇 어르신은 식사하러 나가신 분도 계셨고, 집이 타는 걸 보고 온 어르신은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눈물만 흘리고 계신 분도 계셨다. 그러니 담당이 아니라는 말이 더 사무쳤다. 그러면 이분들은 대체 어디에 토로하고 물어본단 말인가?



| 아비규환, 희로애락


담요 하면 또 다른 에피소드가 있었다. 조금 쉬다 보니 추가로 담요 보급이 되어 분배한다는 마이크 소리가 들렸다. 한꺼번에 사람이 몰리면 위험할 수도 있으니 앉아 계시면 나눠준다는 것이다. 그 말이 흘러나오고 있는 도중에도 입구 쪽으로 사람들이 엄청 몰렸는데, 나도 안 되겠다 싶어서 입구 쪽에 갔더니 이미 분배할 담요가 동이 나 버렸다. 지나오면서 보면 앞에 온 사람 중에 담요를 두어 개 챙긴 사람도 보였고, 늦게 줄을 선 사람은 하나도 챙기지 못한 것이다. 망연자실한 공무원 직원들과 담요를 받지 못한 화가 난 사람들, 어디서 본 장면이다 싶었는데, 현실판 <오징어 게임>이 따로 없었다. 영화에서도 그런 장면이 있지 않았던가? 빵과 우유를 배식하는데 껄렁한 패거리가 자신의 몫 이상을 챙겨서 뒤에서 하나도 받지 못하는 사태가 말이다. 눈앞에 펼쳐진 아비규환 앞에서 한숨만 나오고 두 눈을 질끈 감을 수밖에 없었다. 저 사람들에게 따진 들 무엇하나 싶었다. 그래도 답답한 마음을 풀 데가 없으니 늦게 온 어르신 중에서는 가만히 있으면 준다고 해서 안 나갔더니 이게 뭐냐며, 두 개, 세 개 가진 사람 걸 뺏어서 나눠줘야지 하고 소리치셨다. 나도 반대편 계단에 걸터서서 직원에게 "여기에 경찰관이 배치돼야겠는데요"하고 거들었다. 질서가 사라지니 경찰이라도 있으면 저 담요를 나눠가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빈손으로 제자리에 돌아왔더니 내 자리에 왠 얇은 담요 하나가 보였다. 아버지께 여쭤보니 옆자리 분이 두 개 있었는데, 하나를 주셨다고 했다. 그렇게 얇은 담요를 덮고 백팩을 베개 삼아 누워있다 보니 몇 십분 뒤에 또 다른 담요 분배가 있었다. 이번에는 자리에 계신 분만 나눠준다고 톡톡히 공고했다. 새로 주는 담요가 더 두꺼워 보였다. 이럴 거면 옆사람이 주는 거 받지 말 걸 생각이 들었다가 '에잇! 없는 거보다 낫지'하고 포기했다.



강당 안에는 인간삶의 여러 모습이 보였다. 미처 함께 나오지 못했던 마을 주민을 다시 만난 어르신들이 부둥켜 우는 모습, 이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웃고 떠들고 있는 부모 따라 나온 아이들의 모습, 그 작은 틈 가지고 전세 냈냐며 또 싸우는 모습까지.. 삶의 아비규환 안에서도 또한 얼핏 희로애락이 보이는 듯했다.

열한 시를 넘어 자정 사이되는 시간 즈음에 소등한다는 마이크 공고가 들렸다. 소등을 해도 난방은 끌 수 없으니 건너편 천장에서 울려대는 '우우우우' 소리에 불은 거도 당장 잠이 오진 않았다. 게다가 마이크가 켜졌을 때 들리는 '위잉 삐익' 소리가 한 번씩 들릴 땐 자던 잠도 깬 판국이었다. 아까보다 한기가 더 올라오는 바닥 위를 이리저리 뒹굴며 몸을 뒤적이는데, 유일하게 설치된 텐트동쪽에서 웬 할머니의 비명소리와 호통치는 소리가 들렸다. 병원에서 다년 근무한 느낌상 노인재가센터에서 모셔온 치매 할머니가 난동을 부리는 모양이었다. "집에 가야 돼!!! 가야 돼!!! 막지 마!!!"같은 게 주된 골조였다. 여태껏 본 치매할머니는 막을 수 없는 존재이기에, 그려려니 싶다가도 두 눈은 꼭 감았지만 한편으로는 빨리 어떤 조치가 되길 바랐다. 상황이 지속되다가 한방에 마무리되기도 했는데 근처에서 못내 참지 못한 아저씨 한 분이 "쫓아보네라고!!!!"하고 역정 섞인 소리를 친 게 주변 사람을 다급하게 만든 모양이었다. 탈출을 꿈꾸던 치매 할머니의 목소리는 점점 잦아들었고, 그렇게 대피소에서의 한 밤이 계속되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여긴 안된다고요?' 나의 산불 재난일지 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