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긴 안된다고요?'
안동 실내체육관, 인파가 향하는 곳을 졸졸 따라가다 보니 체육관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내부는 텐트로 가득 채워져 있었고, 어디로 가야 할지 갈팡질팡하는 모습에 안내하는 분이 바로 옆 의자가 즐비한 곳인 안쪽으로 오시라며 우리를 불러들였다. 입구 쪽 근처 탁자에서 행정을 보는 것 같았고, 그 옆 앉아있던 사람들을 차례차례 텐트 배치를 하는 모양이었다. 빈자리가 보여서 아버지와 함께 앉았는데, 동물 숨소리가 들려서 보니 어떤 사람은 개를 안고서 앉아있었다. 아까 피난 오면서도 트럭에 묶여서 같이 탈출하는 개를 보며 우리 집 개가 생각났는데, 이곳에서도 개를 보니 우리 집 개한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잠자코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을 보는데, 익숙한 얼굴인 중학교 동창이 몇몇 보였다. 손짓하며 여기 있냐며 괜찮냐며 물어보니 시골에서 피난 나온 부모님 모시러 들렀고, 안동 시내 쪽에 집이 있어서 그쪽에 모시려고 한다고 했다. '아, 나도 진작에 독립했어야 했나'하는 자조 섞인 생각을 할 찰나에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떻게 됐냐며 물으시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고, 기다리고 있다고 말씀드렸다. 일찍이 듣기로 엄마는 동네 아주머니 한 분과 길안에서 피난 온 모르는 아주머니와 함께 텐트를 배정받았다고 하셨다. 참 의문인 건 피난민을 동네별로 묶는 것도 아니고, 가구별로 묶는 것도 아니고, 모르는 사람과 섞는 게 맞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구나 가족으로 묶질 않으니 뒤늦게 도착한 가족은 생이별을 하는 상황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러다 먼저 온 몇 사람이 공무원에게 안내를 받고 따라가더니 갑자기 책임자로 보이는 사람이 주목해 달라더니 큰 소리로 안내방송을 했다.
"아, 아, 지금 실내체육관에 준비된 텐트가 모두 배정된 상태입니다.
저희도 너무 갑작스럽게 한꺼번에 사람이 몰리다 보니,
여기서는 더 이상 수용을 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차량으로 이동이 가능하신 분들은 안동초등학교로 이동해 주세요!"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겨우 실내체육관에 도착해서 가족과 상봉은 몰라도 텐트 대피만 바라고 있었건만... 게다가 이 파국에 가장 정상적인 지원이 이뤄질 것 같은 체육관에서 퇴거라니... 답답함이 위장 깊은 곳에서 울컥 올라오려는 순간, 아버지는 벌써 몸을 옮기시며 얼른 가자고 부르셨다. 어차피 여기서 해결될 상황이 아니니 차라리 얼른 거기로 이동하는 편이 낫지 않겠냐는 생각이셨을 것이다. 한숨을 내뱉고 실내체육관을 나서 서는데 그때도 안으로 들어오는 인파가 꽤 많이 보였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여기 자리 다 찼대요!'라고 소리를 칠 수 없었다. 당장 우리 가족이 우선이란 생각이 들었고, 혹시라도 혼란을 야기시켜 인파가 뒤섞여선 안될 거란 생각에 그랬다.
차를 대놓은 곳은 체육관에서 걸어서 오분 남짓 거리, 아까 보다는 주춤해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강풍이 심했다. 나무 사이 걸려있던 플래카드가 파드닥 펄럭이다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고, 바람 때문인지 이곳도 연기는 좀 더 자욱해진 느낌이 들었다. 주차장에 도착한 후 아버지의 포터가 먼저 출발했고, 나는 뒤따라 안내받은 초등학교 대피소로 이동했다. 신호 몇 개를 지나 초등학교 정문에 도착했더니, 안내요원이 아버지 차를 세우고 창문을 내리더니 뭐라 뭐라 하는 모습이 보였다. 신원확인인가 싶었던 그 모습이 내 차례가 되고 나니 금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지금 차를 빼주시고요. 길주초등학교로 이동하셔야 할 거 같습니다.
실내체육관에서 이리로 가라고 했다고 말해봤자 자리가 없다는데 더 이상 항변은 소용이 없었다. 아니 이게 무슨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없으면 빨리 돌려야지 답답한 행정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길주초등학교, 평소 시가지 외엔 들를 일이 없던 곳이기도 하고, 못해도 동을 두세 개는 지나야 할 동네라 네비가 시원찮은 아버지는 나보고 먼저 가라고 손짓을 하셨다. 나 또한 가보긴 가봤지만 정확한 길은 헷갈려서 네비에 안동 용상 길주초등학교를 검색한 후 도로에 차를 올렸다. 곧장 따라오는 아버지 차를 보며 잘 따라오시나 살폈다가, 부디 다음 대피소에는 텐트가 있기를... 뭐라도 있기를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가장 큰 걱정 하나가 툭하고 튀어나왔다.
'거기서 또 안 된다 하면 다음은 어떡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