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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무 Jun 10. 2019

지금 바다를 보러 가지 않을래?

우리 영영 손을 잡을 수 없다 해도


  어제는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통영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해와 물을 보고 싶었다. 그러면 누구와 가야 하지?

  내가 언제나 못내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이 있다면 단연 지금 바다를 보러 갈래 하면 그러자고 대답하는 사람이다.


물과 빛. 아주아주 좋아하는 조합이다. (2018.12. 여수 오동도)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 주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 또한 그런 걸 바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나는 나에게도 나 같은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고 반복하여 말해 왔으나 그건 결국 오랄 때 오고 가랄 때 가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떼쟁이 같은 소리와 다르지 않다. 아무렴, 점잖은 사람이 되고 싶다면 그럴 수야 없다.


  나에게도 나를 먹이고 살린 사람이 여럿 있고 도려내면 오래 자국이 남을 것이 분명한 사람도 몇몇 있으나, 그러나, 그러나 우리는 정말로 손을 잡을 수 있을까요? 얼마 전 메모장에 써둔 글에서 나는 (지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져도 괜찮기 위해) 우리는 손을 잡아야 한다고 썼다.


  그러나 우리는 정말로 손을 잡을 수가 있을까요? 우리 모두는 일 인분의 균형에 너무나도 익숙해졌다. 사소한 계량의 오차만으로도 반죽이 부풀어 오르지 않을 수 있다는 걸 다들 아는 거지요. 술을 담글 때야 설탕을 쏟아부어도 괜찮지만 언제까지나 주정뱅이로 살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고향 집에서 아빠와 동생에게 만들어 준 카레. 집에 내려가면 아무리 쉬라 해도 꼭 부지런 떨며 따뜻한 걸 만들게 된다. (2019.01. 청주)


  혼자 사는 방에서는 카레를 만들어 본 적이 없다. 머릿속에서는 몇 번이고 양파를 썰어 볶아 단맛을 낸 다음 카레와 좋아하는 채소를 그득 넣고 묽게 끓여 따뜻한 밥 위에 얹어 후루룩 먹곤 하지만 (나는 토마토를 뭉근히 끓여내 짜지 않고 상쾌한 맛을 내는 카레를 좋아한다) 아무래도 내 일 인분의 식탁에 카레는 너무 버거운 음식이다.

  그렇지, 눈치챘겠지만 나는 찬바람 부는 저녁 카레에 맥주를 곁들여 먹은 후 내일 통영에 가볼까 말을 건넬 사람을 못 견디게 원하고 있다. 이인용이라곤 하지만 결코 둘이 앉는 일이 없는 나의 소파에 함께 앉아 춘광사설을 볼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열세 살이 끝나가던 무렵, 졸업을 맞아 초등학교 문집에 글을 쓴 적이 있다. 거기서 나는 친구들에게 ‘같은 시공간에서 몸을 부딪는 것만으로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사람들’이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한때 문학소녀였던 어머니들의 심금을 울린 바 있는데, 어린애가 맹랑하게도 시니컬한 소리를 (그렇지만 꽤나 다정한 방식으로) 직직 써 내려간 걸 보면 아마 사람은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는 게 맞는 모양이다(실제로 그 상태에서 키가 단 일 센티도 안 자라긴 했다).


  손을 잡는 행위는 무게중심을 바꾸지 않으면서도 균형을 나누어가지는 일, 나는 아마 영영 손을 잡는 것보다 몸을 부딪는 게 편리하다고 여길 테다. 비록 덜 아름답다고 해도 그게 진실에 가까울 거다. 그렇지만, 누군가 나에게 통영에 가자 남부터미널에서 새벽 버스를 타고 내려가 동이 트기 전에 소매물도 가는 배를 타자 우리 거기 가서 짠 바람과 더운 볕을 맞고 오자 하면 그러자 오래오래 걸어서 버석버석해지자 하겠지. 버석버석 나의 건조한 다정에 물을 그득 끼어주고 오자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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